아버지는 딸이 고2때 실종된 딸 혜희 18년 동안 찾고 있는 송길용씨"아이 살아있길 바란 마음이 메르스 이겨낸 힘"

[뉴스프리존=안데레사기자] 서울 한남대교 북단이나 경부고속도로, 혹은 종로나 명동 등을 지나다 보면 수년 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란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무려 18년 간 실종된 딸을 찾아다닌 아버지 송길용(64)씨의 사연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 18년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는 송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평택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몰라도 "실종된 송혜희를 좀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18년' 동안 잃어버린 딸을 찾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송씨의 단칸방 곳곳에서는 딸아이와 14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침대와 식탁이 비좁게 자리하고 있는 방 한 쪽 벽면은 액자에 끼워 넣은 두 사람의 사진과 둘에게 보낸 편지들로 가득했다. 방 입구엔 딸아이를 찾는 전단지가 잔뜩 쌓여 있다.

이런 아버지의 사연을 들은 평택시는 지난 17일 1999년도에 실종된 딸 송혜희 양을 찾아 18년 째 전국을 찾아다니는 사연으로 잘 알려진 송길용씨 자택을 방문하여 이웃돕기 성금 200만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송길용씨는 ‘99년도 집에 귀가하다가 실종된 딸 송혜희 양을 찾기 위해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6년 전에는 현수막을 걸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 척추수술을 받고 뇌경색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재광 평택시장은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희망을 잃지 않고 딸을 찾는 마음에 감동했다”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송혜희씨를 찾는 현수막

송씨는 지금도 딸아이가 사라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1999년 2월13일 사건 발생 당시 혜희 양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고3 진학을 앞두고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집을 나선 혜희 양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 초동 수사 결과, 혜희 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낯선 30대 남성이 뒤 따라 내린 사실이 확인됐지만 더 이상 수사에 진척은 없었다.

송 씨 부부는 딸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혜희 엄마에게 우울증이 찾아왔고 결국 딸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가슴에 안은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송 씨는 아직도 딸을 찾기 위한 전단지를 뿌리고 다닌다. 하루에 뿌리는 전단지 양은 400장에서 800만 장. 지금까지 그가 나눠 준 전단은 400만 장, 현수막은 5000장에 달한다고 한다.

송 씨는 집에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는 글이 적힌 액자를 걸어놓고 있다. 한 쪽 벽에는 온통 혜희 양 사진으로 도배가 됐다. 

당시 시내버스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친구와 헤어진 혜희는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술 냄새를 풍기는 오리털 파카를 입은 30대 남자가 혜희를 따라 내렸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가로등도 제대로 없던 시골이었다. 딸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하고 버스에서 자택까지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며칠 동안 이 잡듯 뒤졌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전단지 1000만장, 현수막 7만장 걸었지만...

딸이 사라진 후, 매일 딸을 찾아 헤매느라 녹초가 된 몸은 쓰러질 법도 한데,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입에도 못 대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부인은 우울증으로 술과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 딸아이의 빈자리는 송씨에게 큰 회한으로 남아 전국을 떠돌게 했다.

그동안 송씨는 혜희를 찾는 현수막을 가까운 송탄출장소부터 서울 도심 여러 곳과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 목포와 진도, 통영, 속초 등 대한민국 곳곳에 걸어놓았다. 지금까지 A4 크기 전단지는 800만 장, 좀 더 큰 전단지는 300만 장을 전국에 뿌렸고, 현수막은 7만 장 가까이 내걸어 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관심 갖고 전화 연락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감기 한 번 안 걸렸다고 자부하던 건강인데, 뇌경색과 허리 디스크가 한꺼번에 왔어요. 그래도 난 쓰러지지 않아요. 딸아이 생각하면...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 있는데 어딘가에 갇혀서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찾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는 건 아닌지..."

혜희를 찾는데 모든 것을 걸었던 송씨는 18일 메르스 완치 환자로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3년 전 혜희를 찾는 현수막을 걸려고 전신주에 오르다 다친 허리통증이 심해진데다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었다.

메르스 수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째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던 탓에 퇴원 후, 자가 격리되었다가 5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39번 환자로 굿모닝병원 음압병동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전단지 못 만드는 것 때문에...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그 생각만 했어요"라고 말하는 송씨.

딸아이 향한 집념이 메르스도 이겼다

▲ 딸아이 앨범을 보고 있는 송길용 씨 메르스 완치자 송길용씨가 고2때 실종된 딸아이 앨범을 보고 있다.

18일 평택굿모닝병원 음압병실에서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송씨는 뼈만 앙상하다. 약간 귀가 어두운 그가 털어놓는 한마디 한마디는 뱃가죽이 등에 붙은 사람처럼 힘이 없다. 하지만 눈동자에 만큼은 자식을 찾겠다는 아빠의 간절함이 여전히 절절하다.

"20일 동안 입원했는데 잠은 안 오고, 이불 뒤집어쓰면 눈물만 나요. 차라리 죽었으면 이런 고통 안 받고 좀 더 편했을 걸 하다가도, 애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버텼어요."

지병인 허리 통증과 치통에 메르스로 인한 고열과 기침은 송씨의 기력을 다 앗아갔다. 그래도 실종아동전문기관과 딸아이를 찾으러 다니며 인연 맺은 미아찾기, 경찰서 관계자들의 '힘내라'는 격려와 '혜희를 찾기 전엔 눈 못 감는다'는 송씨 자신의 의지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스무 날을 버틴 송씨는 뇌경색 약과 진통제를 잔뜩 싸들고 퇴원했다. 사랑하는 딸 혜희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는 송씨는 "혜희가 나를 살렸어요"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포기했으면 다 잃었겠지요. 아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메르스를 이겨낸 힘이었어요."

송씨는 퇴원하자마자,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 인근 송탄출장소 앞 현수막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부터 살폈다.

송혜희 양 실종사건은 지난 방송된 K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공소시효'에서도 다뤄 반향을 일으켰다. 해당 방송에서는 송혜희 사건 발생 3년 후인 2002년 같은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발생한 전옥분 씨 실종사건 역시 동일범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이런 사연에 평택시는 2005년도에 기초수급자로 책정하여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사랑의 리퀘스트 후원연계, 척추디스크 무료수술연계, 민간후원단체 후원성금 지원 등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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