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창조한 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과 어둠을 나누어 밤과 낮, 물과 뭍,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땅에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있게 하고…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남자가 되었다. 이 남자에게 배필이 없어 그를 깊이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 내어 여자를 만들었다.

구약 창세기의 기록이다. 이레만에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신의 기록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든 뱀이 인간을 유혹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인류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돼 시기와 음란, 질투, 살인., 전쟁 등 더 이상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사람의 몸 요셉과 마리아 아들로 태어난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처녀가 낳은 아들 예수. 그를 신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다.

구세주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이 담긴 유대인의 역사. 이것이 구약성서요,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나 33년간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고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한 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해 승천하면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서가 신약성서다. 이 신구약 66권 성서를 과학적으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말씀’으로 세상을 만든 신, 흙으로 사람을 빚고 빚은 남자의 갈비뼈 하나로 여자로 만들어 후손들이 태어나게 하고… 그 정도가 아니다. 십자가라는 형틀에 달려 죽은 예수는 3일만에 부활에 승천한다는 이야기… 과학 눈으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기독교라는 종교(宗敎, religion)다. 한자로 으뜸 종(宗) 가르칠 교(敎)... ‘으뜸 가르침’이라는 종교(宗敎)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 역 앞에 서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선교 한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고, 믿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나 남자의 갈비뼈 하나로 여자를 만든 이야기나 처녀가 아이를 낳은 얘기면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는 이야기는 원시시대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신이 있다(有神論). 아니다 신이란 없다(無神論).... 는 주장의 대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신의 존재’ 여부를 놓고 또 ‘누가 진짜 신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조용한 날이 없는 종교간의 분쟁의 역사였다. 처음 종교는 자연의 위력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연신숭배, 샤머니즘, 애니미즘. 조상숭배..와 같은 다신교에서 유일신으로 진화(?)한다. 이런 종교가 다시 구복신앙, 기복신앙으로 진회(?)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인간의 욕망이 종교의 본질을 왜곡시킨 게 아닐까?

기독교라는 종교는 개신교만 해도 무려 347개 종파요, 천주교를 비롯한 종파를 다 합하면 2천개가 넘는다. 요즈음 코르나 19 바이러스로 언론의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신천지교도 그 중의 하나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는 네 몸처럼 하라’는 가르침을 뒷전이 되고 누가 더 진짜 하나님을 믿는가의 여부를 놓고 살인과 방화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게 인류의 역사요 종교의 역사다.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신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이런 철부지 짓을 뭐라고 할까? 왜 그 전지전능의 신은 이런 모습을 방관하고 있을까? 이런 물음도 그런 건 다 ‘신의 뜻’라고 하면 끝일까?

위의 그림 파일에서 본 열가지 계명과 오늘날 서로 헐뜯고 죽이며 싸우는 교파간 전쟁(?)은 이 계명을 지키고 있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기독교의 기도(祈禱)란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행위라고 한다. 의례에서 행하는 기도를 신자들을 예배라고 한다. 예배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도 모자라 기독교인들이라면 찾아 죽이던 로마에 죽음으로 선교하겠다는 신자들의 결단의 시간이었다.

아마 ‘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기도가 왜 구복이나 주술로 변했을까? 부자되게 해 주시고, 선거에 당선되게 해 주시고, 아들딸 일류대학 합격하게 해 주시고, 우리가족 건강하게 해주시고… 이런 기도란 없다. 진짜 신이 있다면 그런 기도를 들어 주기나 할까? 오늘날 기독교 종파간에는 이단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단 논쟁에 매몰되기 앞서 성서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여부가 진위(眞僞)를 가리는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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