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박근혜의 편지와 ‘후진정치’를 보는 단상

유영하변호사가 박근혜의 편지를 전하며 기자회견하는 모습 ⓒ 뉴스프리존
유영하변호사가 박근혜의 편지를 전하며 기자회견하는 모습 ⓒ 뉴스프리존

옥중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 정치권’에 보낸 편지 한 통이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주요 내용은 ‘성에 차지는 않지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래통합당으로 모여 문재인 파를 꺾으라’이다.

때문에 이 편지를 두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오랜 고초에 시달리면서도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고 크게 환영했다.

그는 특히 “무능 정권의 폭정을 멈추고, 이 국민을 지켜달라는 애국심이 우리 가슴을 깊이 울린다”고 말하는 등 보기 민망할 정도로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또 태극기 부대와 2년 넘게 아스팔트 투쟁을 하고 있는 조원진 자유공화당 공동대표는 “태극기 국민에 대한 말씀을 두 번이나 하셨다”며, 미래통합당 공천중단과 통합작업 추진 및 지분요구 의사를 밝혔고, 홍문종 의원 또한 “미래통합당에 달려 있다”며 통합당의 양보를 요구하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 등 박근혜 탄핵 주도세력은 이 편지를 두고 “정치개입이며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 선관위 고발을 말하고 선관위 또한 선거법 위반 조사에 나설 뜻을 비추고 있다.

우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는 최악의 정치 재개 선언”이라며 “국정농단을 반성하긴커녕 다시 국민을 분열시키는 선동에 나선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정농단 주범으로 속죄하는 시간을 보내야 할 사람이 노골적 선거개입에 나선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만큼 선관위에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힌 뒤 실제로 정의당은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선관위도 사건을 살피고 있다. 선관위는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중 일부 혐의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선거권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법 위반 여부를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지난 2016년 4월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에 불법 개입한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확정 받았다.(이는 국정농단 사건과는 별개다) 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3호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벌을 확정 받은 선거사범은 확정일로부터 5년 간,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으면 그 형이 종료된 날로부터 10년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리고 선거권이 없는 자가 선거운동을 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1항 제2호는 선거권 없는 자의 선거운동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정의당은 5일 박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이 조항에 의해 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선거권이 없이 특정정당 지지발언을 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되어 검찰로 송치되었으며 기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이런 공방과는 별도로 박 전 대통령의 편지가 오는 4월 총선에서 효력을 발휘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태극기 부대가 미래통합당으로 뭉치면 이들 세력에 플러스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일단 보수진영은 단일대오로 총선에 나선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호한다. 반면 박근혜 탄핵 주도세력들은 현재 통합당에 가담한 중도층은 물론 관망 중인 중도층의 이탈을 희망한다. 즉 스스로 탄핵한 박근혜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선에 임한다는 손가락질을 견뎌내기 힘들 것이란 추측이다.

한편 편지정치가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회자되는 사례는 다수의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링컨 사후 발견된 링컨의 편지가 그렇고, 김대중의 옥중서신이 그러하며, 2009년 공개된 정조의 편지가 그렇다.

사진 좌, 정조의 친필편지… 사진 우, 김대중의 친필편지… 자료사진
사진 좌, 정조의 친필편지… 사진 우, 김대중의 친필편지…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필 메시지… 유영하 변호사 회견 중 제시 ©임두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필 메시지… 유영하 변호사 회견 중 제시 ©임두만

지난 2009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정조대왕이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첩(御札帖)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개인이 소장해오던 이 어찰첩은 모두가 정조의 친필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인 당시 공개된 편지 중 다수의 편지 수신자가 심환지였기 때문이다. 심환지는 정조시대에 우의정을 지냈으나 노론 벽파의 핵심으로 정순왕후와 함께 정조와는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후 김조순에 의해 정조의 치적을 파괴한 역적으로 단죄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공개된 편지를 통해서는 그동안 학자이자 어진 군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정조가 노회한 정치가였음을 알게 한다. 정조는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상의했으며, 때로는 서로 각본을 짜고 정책을 추진할 정도로 고단수 정객이었다.

또 술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즉 심환지의 장남이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뒤 정조는 “300등 안에만 들면 합격시키려고 했으나 심히 안타깝다”고 쓴 편지에서 보듯 정적의 아들에게 특혜를 주며 회유하려 했음이 드러난다. 또 부인의 병환을 염려하며 삼뿌리를 보내고, 전복과 조청을 선물하기도 했었음에도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생각 없는 늙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조는 편지로 매우 노회한 정치력을 내보였다. ‘편지정치’를 통해 반대파를 회유하고 측근을 견제하는 통치술을 펴 당파와 정략이 지배했던 당시 개혁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가 쓴 옥중서신은 인류의 심금을 울린 명저로 남았다. 그의 편지는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절절이 묻어 난다.

그런데 박근혜의 옥중서신은 정치적 유불리를 놓고 세력간 진흙탕 싸움을 붙이고, 자신 스스로도 다시 법정에 서야 하는 피고발인 신세를 자초했다. 후세의 평가가 어떻든 지금은 그렇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성이 묻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편지로 상대의 감성을 불러 더 원활한 소통을 이루기도 하고 관계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정치인의 정치적 편지는 자기편 보다는 상대를 감동시키고 회유하는데 쓰는 것이 더 유효한 수단이다.

정조가 편전에서나 대전에서 직접 심환지에게 편지에 담은 말을 할 수 없으며 우의정을 지내고 있는 노론벽파의 수장이 또 면전에서 왕의 그런 대우를 당하고 벼슬길에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정조는 이런 부분을 모두 감안, 편지를 통해 노회한 신하, 겉으론 신하이지만 내심은 반대파 수장을 요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또 그 반대다. 당시의 김 전 대통령은 정치권을 향해서나 무도한 권력을 향해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즉 당시 그의 정치적 발언은 곧 ‘나를 사형시켜라’라는 뜻을 직간접으로 밝힌 것이 되므로 정치권을 향해 정치적 발언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익히 일고 있었다.

이에 김대중은 검열이 심한 교도소에서 자신의 근황과 생각을 가족에게 편지로 전하며 그 편지 안에 짙은 인간애를 담아 가족은 물론 인류 전체에 감동을 줬다. 이런 김대중의 행위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지식인들을 움직여 전두환에게 김대중을 ‘사형시키지 마라’는 압력적 탄원을 보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박근혜의 편지를 보면 화가 난다. 국민과 정치권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실정법으로도 유죄를 받은 ‘죄수’가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작용하려 했다는 것, 편지로 상대를 감동시키고, 자기 편이 과오를 돌아보게 하기보다 양측을 더 격동시켜 편가르기를 극렬하게 하도록 종용한 행위, 이를 그대로 따르는 정치권의 후진성들이 유권자인 내게 ‘똥칠’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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