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좌우명 가운데 하나가 무위도식을 불명예로 여기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이 아무리 고달프고 고생스러워도 땀 흘려 일해서 번 정재(淨財) 가지고 비록 넉넉하지 못하나마 마음 편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늘 감사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정치판에서 상처투성이로 물러난 아버지가 오래 동안 낭인처럼 사시느라 가족이 애옥한 삶에 시달리고 가세가 처량하게 기우는 것을 사춘기에 뼈저리게 체험한 내게 일하지 않고 먹거나 번 것보다 더 푼푼하게 쓰고 살려는 사람은 경멸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기업의 과장시절에 과원들과 함께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사전에 개인별로 준비해올 것들을 일러두었는데도 한 남자 직원이 달랑 숟가락만 들고 왔다.
그는 자취하는 총각임을 은연중에 흘려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난 내심 화가 났으며 그날의 리더로서 묵과할 수가 없었다. 두고두고 치를 당당한 협동의식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무거운 먹거리 짐을 나눠지고 올라가게 했다.

넓게는 정치의 경우 창조적인 개혁이나 변화를 가로막고 공복사회를 부패시키는 게 다름 아닌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한갓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국민 혈세로 주는 녹만 받아먹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정치인들이나 철 밥통 공무원들 때문이다. 지금 곳곳에 쌓인 여러 가지 적폐나 불의 가운데 저런 ‘시위소찬의 자리’가 천문학적인 혈세를 잡아먹는 숫자로 불어났다는 비정(秕政)이 너무나 심각하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철두철미한 책임정신으로 소임을 다 해야 할 사원, 특히 간부들이 무사안일하게 시위소찬의 길을 간다면 그 기업이 병들 것은 불을 보듯 번한 것이다.

정부에서든 기업에서든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권한을 행사해 지위를 누리고 또박또박 보수를 챙기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혈세나 남이 땀 흘려 번 돈을 훔치는 죄다. 그런 불의한 차지란 권력자나 강자일수록 더 자연스럽고 의당한 것처럼 챙기고 누리는데 그 때문에 교묘한 권력의 남용이 끈질기게 자행되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시위소찬하는 것은 무책임한 이기적 행동이며 아주 비루한 짓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저들은 권력자에게 아부를 해야 할 것이고 자리보전을 위해 무사안일을 꾀해 창조적 도전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며 남의 공을 훔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갓 이순을 넘긴 나이에 한 중소기업 규모의 벤처회사 창업에 간여하면서 다시 시작된 회사생활이 올해로 만 십 년이 된 때였다. 그 전년까지만 해도 대표이사 상담역으로 출근해 일하면서 보수를 받았는데 감사에 선임되면서부터는 정기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도 보수는 변함없이 받았다.

아무리 회사에 끼친 공을 인정받아 보수를 받는다 해도 기업하기 어려운 시기에 애쓰는 임직원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시위소찬의 존재로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하고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여름 휴가비를 받고서는 요새처럼 이익 내는 경영하기가 어려운 때에 그런 상여까지 줄 정도로 이익경영을 하는 회사가 대견하면서도 다시 내가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는 게 아닌가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예방을 겸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난 분기 경영실적의 설명을 듣노라니 놀랍게도 사원의 이직률이 드디어 제로 포인트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저렇게 ‘나의 회사’라는 애사정신이 충일하게 된 데는 애인(愛人) 정신이 투철한 최고경영자의 일관된 사원사랑이 그 소지와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며, 지난 십 개성상을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좋은 기업을 만든 결과일 것이다.

저건 시위소찬하는 사원이 없다는 의미다. 저런 사원들이 있어 회사가 지금의 ‘상장한 강소기업’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는 감동이 새삼 실감됐다. 해서 앞으로 이 년 후에 퇴직할 예정인 이 호호야사원이 송구한 시위소찬의 자격지심을 덜고 저들이 창출해내는 수확에서 아주 조금 덜어낸 보수를 계속해 받아도 괜찮으리라 자위했다. 

만약 회사형편이 어려웠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시위소찬지심에 부대껴 억지로라도 진즉에 자리를 사양하고 물러났을 것이므로 실로 한 기업의 좋은 경영이라는 게 뭇 삶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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