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횡포...일방적으로 설계사에게 책임돌리는 관행 바뀌나

[연합통신넷= 이진용, 이형노기자]법원이 처음으로 보험설계사가 해촉된 이후 잔여수수료가 남은 상황에서 환수금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보험업계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던 ‘해촉된 설계사에게는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다.
 

설계사의 임금 해당되는 ‘수수료’, 소비자가 해지 하면 ‘환수’
 

보험회사는 설계사가 모집한 보험에 대해 일정한 금액의 수수료를 주고, 설계사는 이 수수료를 노동에 대한 댓가로 받는 일종의 임금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해당 보험을 일정 기간 내 해약하면 회사는 다시 설계사에게 지급한 수수료를 다시 되돌려 받는 ‘환수’라는 제도를 통해 보험 계약 체결로 발생한 수익금과 해지로 발생하는 손실을 조절하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보험회사가 고객이 1년 이상 보험을 유지한다는 전제로 설계사에게 해당 보험료의 일정 배수(보험료×3~4배)를 1년간 나누어서 수수료(수당)으로 지급한다. 이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유지 기간’이 설정되어있다.
 

그런데 만약 소비자가 1년이든 2년이든 ‘유지 기간’내에 해약할 경우 회사는 설계사에게 기지급한 수수료를 설계사로부터 다시 ‘환수’한다. 환수 금액의 계산 방식도 회사마다 다르지만 이미 지급한 수당에서 다시 되돌려 받는다는 큰 틀은 똑같다.
 

잔여수당 남았는데도 환수만 청구…보험사들의 불공정거래 행위
 

문제는 보험설계사가 더이상 해당 보험회사에 근무하지 않게 될 경우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미 판매한 보험료에 대한 수수료(수당)을 해촉 이전에 100% 받은 것이 아닌데도, 회사는 해촉 이후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유지 기간 내 해약된 보험에 대해서는 환수하기 때문. 즉 설계사는 회사를 그만 둔 이후 오히려 회사에 돈을 돌려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도 비슷한 경우였다. 보험설계사 정씨는 해촉 당시 잔여 수당이 600여만원이 남아있었는데도, 회사가 해촉 이후 발생한 환수금 300만원을 청구한 것. 정씨가 회사로부터 받게될 600만원의 잔여수당에서 환수금을 공제하더라도 300만원이 남은 상태인데 오히려 환수를 요청한 것이다.
 

이같은 보험회사의 관행 때문에 해촉 당한 설계사는 환수금을 갚기 위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극단적으로 자살까지 이어지는 실정이다. 상대적 약자인 설계사들이 해촉 이후에도 보험회사의 수익구조에 희생당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달 2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고충정)은 “일할 당시 ‘해촉된 설계사에게 남아있는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었고, 해촉 당시 잔여 수수료 600여만원이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해촉 이후 발생한 환수금 300여만원을 공제하더라도 잔여수수료가 남아있게되므로, 해촉 이후 환수금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해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는 보험회사가 정씨에게 잔여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으며 이는 회사의 ‘수수료 환수규정’에 따라 환수는 정당하는 회사의 입장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에서는 보험설계사와의 위촉계약서는 ‘약관규제법’상의 ‘약관’에 해당하며, 위촉 이후 변경된 ‘해촉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회사 규정에 정씨가 동의한 바가 없기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설계사에게 일방적으로 책임 떠넘기기…합리적 수수료 기준 적용되야
 

대한보험인협회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두고 “보험업계의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는 ‘해촉된 설계사에게는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보험사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임을 알려주는 사례이며, 설계사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협상을 한다면 ‘해촉된 설계사에게 잔여수수료를 지급한다’는 규정으로도 바뀔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더욱 파급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실제 일부 법인 보험대리점의 경우 해촉된 보험설계사에게도 잔여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설계사가 보험회사를 이직하면서 고객들의 기존 계약의 해약을 유도하는 악습을 방지하고, 오히려 설계사가 이직 후에도 고객들에 대해 간접적인 계약 관리를 유도해 보험계약 유지율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대한보험인협회의 의견이다.
 

한 생명보험에서 일하고 있는 보험설계사 C씨는 <연합통신넷>과의 통화에서 “설계사의 해촉 이후 조기 해지 가능성 때문에 잔여수수료를 미지급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보험회사의 각종 사업비, 리스크 관리 비용에 다 반영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증보험에 가입 하는 등 회사는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이런저런 장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잔여수수료 미지급은 계약유지와 관련하여 설계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C씨는 “최근 수수료의 분할지급 형태가 확산되면서 이같은 부조리한 구조가 어느정도 사전에 방지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설계사가 모든 계약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 앉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마다 지급유무, 기준 등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금융감독원이나 고용노동부의 표준약관이나 표준계약서 같은 합리적인 수수료 체계가 단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5월부터 시작해서 11월~12월쯤 (보험설계사를) 그만뒀습니다. 지원금 환수 우편물이 날아오네요. 금액도 300만원대로 적지 않습니다. 정말 줬던거 10원도 빠짐없이 다시 다 받아가는 것 같네요. 혹시 경험있는 선배님들 계십니까? 이제 보증보험으로 넘어가려고 하네요. 신용불량으로 떨어지고 월급계좌는 압류당할 거라고 합니다."

인터넷 모 보험설계사들의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카페에는 이 글 외에도 지급받은 수당을 환수당해서 고통받고 있는 설계사들의 상담 글들이 적지 않다.

3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생명보험업계 보험설계사들이 초기 정착수당으로 받았다 해촉돼 다시 돌려줘야 할 돈이 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600억원이 환수됐고 나머지 200억원은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보험설계사들은 위촉된 후 초기 정착수당을 받는다. 실제 영업에 투입되기 전 필요한 교육을 받는 기간에 주는 수당이 기본이다. 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100만원 이내에서 지급된다.

이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교육 기간에 유치한 보험계약에 대해서는 통상 지급하는 수수료보다 많이 지급한다. 다음에 지급할 수수료의 일부를 미리 주는 방식이다.

또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된 설계사들의 경우 초기에 거액을 일종의 선수당으로 한꺼번에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당들이 곧바로 설계사의 돈은 아니다. 조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월 몇건 이상의 신규 보험계약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해촉되고 수당을 환수당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육만 받으면 지급하는 수당은 환수 대상이 아니지만 초기 정착을 위해 지급했던 일부 수당은 실적이 안되면 환수된다"고 밝혔다.

수당 환수가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다. 위촉계약서에도 명시돼 있고 여기엔 설계사들이 직접 서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당 환수로 고통받는 설계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해촉된 설계사의 수가 약 8만5000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새로 위촉된 설계사가 15만6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정도가 떠난 셈이다.

특히 1년 이내 해촉이 6만명, 6개월 이내 해촉이 2만9000명이었다. 이렇게 해촉돼 지급받은 돈을 토해내야 할 설계사만 5만6000여명이다.

수당환수가 곧바로 이뤄지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가기도 한다. 보험사는 보증보험을 통해 수당을 환수하고 보증보험이 설계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일부는 채권추심업체로 넘어가 추심을 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설계사들은 수당환수를 피하기 위해 무리한 영업에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설계사들과 보험사간 수당 환수를 놓고 분쟁이 잇따르자 최근 생보사들을 대상으로 설계사 해촉과 수당 환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바 있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험사들에게 선지급 수당을 최소화하도록 지도했다. 또 위촉계약서를 작성할 때 수당 환수 조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반드시 서명을 받도록 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도 환수를 위해 법적조치를 취할 경우 그만큼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아예 환수 대상이 되는 수당을 최소화하는게 바람직하다는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들 중엔 당장 생활이 어려워 직업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들이나 청년구직자들도 상당하다"며 "환수금액의 규모와 별개로 법적조치 만으로도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으로 보험설계사의 해촉 및 수당 환수를 상시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소속 보험설계사에게 보험 계약 해지의 책임을 떠넘겨 돌려받은 수당이 지난 한 해 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26개 보험사 보험설계사 수수료 1200억원 환수
 

이는 보험사들이 ‘보험이 해지ㆍ취소됐다’는 등의 이유로 되돌려 받은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보험사의 약관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23일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인천 계양갑) 국회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흥국생명,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국내 26개 보험사는 고객 보험 해지ㆍ취소 명목으로 설계사들로부터 1218억원을 돌려받았다.
 

이는 ‘단순 고객 변심’, ‘민원’ 등으로 해지된 보험을 설계사들의 잘못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신 의원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 관계자는 "이 금액은 실제 환수받은 금액이 아닌 환수대상 금액으로 설계사의 귀책 사유로 판명돼 돌려받은 금액은 이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돈을 되돌려 받은 근거는 약관에 명시된 조항이다.
 

‘보험 계약 조건 변경, 무효, 해지, 취소 때문에 수당 환수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미 지급된 수당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는 등으로 설계사들과의 계약 약관에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계사들에게 수당을 돌려받지 않은 보험사들도 있었다.
 

미래에셋보험은 지난 2010년 공정위로부터 ‘불공정 약관’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 설계사들의 수당을 돌려받는 약관을 개정했고, 삼성생명도 약관에 설계사 수당 환수 조항이 없다.

이에 공정위는 일부 보험사의 행위에 불공정 요소가 있다고 판단, 실태 파악에 나섰다.
 

현재 수당 환수 조항에 대한 약관법 위반 심사 중이며, 위반으로 결론 날 경우 해당 보험사에 제재가 가해질 전망이다.
 

신 의원은 “보험설계사의 잘못과 상관없이 무조건 수당을 환수하는 조항은 사실상 불공정 약관으로 봐야하는 것 아니냐”며 “이번 조사를 통해 보험회사들의 거래상 지위 남용에 대한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 만큼, 공정위는 신속한 조치로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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