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위(Azwi),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만델라

코로나19로 구조조정 칼바람이 산업계에 불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 ·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조선업 · 중공업 · 정유 · 자동차 등, 산업계 전반에서는 최근 휴직과 희망퇴직 이 잇따르는 등, 감원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의 둘째 딸애가 지금 아시아나항공의 팀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IMF 사태 때도 회사를 못나가고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후 처음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 대상 10일 이상의 무급휴직을 실시하기로 해, 현재 우리 딸애도 집에서 엄마와 아내생활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유 · 무급 휴직 정도에 그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구조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큰일입니다. 전 산업이 절망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입니다.

희망(希望)이란 말을 구성하고 있는 두 글자 중, ‘희(希)’라는 글자는 점괘를 가리키는 육효(六爻)의 ‘효(爻)’와 수건을 뜻하는 ‘건(巾)’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앞으로의 운수를 알려줄 점괘를 수건이 가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점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망(望)’ 자는 바깥에 나가고 없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달을 바라보며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인간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래도 절망이나 포기보다 훨씬 낫습니다. 역경의 상황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뭔가를 해 나가면, 낮은 확률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잘 풀릴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1964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의 고도(孤島) 루벤섬 감옥에 투옥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를 감방 구석에 던져 주었습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번 정도만 허락 되었으며 간수(看守)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감옥살이 4년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듬해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에도 참석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에 큰 딸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면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큰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땟물이 찌들은 윗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꾸겨진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어 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딸은 그 종이쪽지에 쓰여 진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글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아즈위 Azwie』 바로 ‘희망’이라는 글자였습니다.

그는 그 후로 온갖 치욕을 다 당하면서 13년간이나 옥살이를 더 하고 나서야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1964년부터 1990년 까지 무려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입니다. 그는 남아공 흑백분리 정책을 철폐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고고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은 이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존경을 바쳤습니다. 그가 바로 ‘넬슨만델라’이지요.

그 오랜 세월 어떻게 절망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희망)』를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며칠 전에는 어느 택배기사가 과로로 유명(幽冥)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연극배우들은 공연은커녕 자리가 없어 알바도 못한다고 합니다. 절망의 심연(深淵)으로 빠져 숨이 멈추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말을 라디오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즈위(希望)』가 있습니다. 연 며칠째 코로나19 확진 자가 한 자리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즈위(希望)』가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이 또한 지나갈 것이 아닌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3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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