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劉邦】 천하를 얻기 위해 먼저 인재를 구하다

인재(人材)를 얻는 자가 천하를 움켜쥐고 주인이 된다.

현대의 학자들뿐 아니라 당대의 역사가 이였던 사마천도 한고조 유방(劉邦.-BC 247?~195, 재위 BC 206~195)을 깡패였다고 평가한다.
일설에 의하면 유방은 그의 모친과 신룡(神龍)이 교합하여 난 자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범상치 않아 그의 부친이 ‘방(邦)’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룡의 자손을 자처하는 유방은 성장하면서 품행이방정하지 못했고 힘든 농사일을 싫어하여 날마다 놀면서 허송세월했다. 그의 부친조차도 그가 정신을 못 차리고 나돌아 다니는 것을 나무랐다.

초한 전쟁 중에 유방은 팽성에서 적군에 크게 패해 급히 도망치는 상황에서 두 아이의 행방을 잃어버렸다. 피난민 행렬 속에서 간신히 자신의 아들과 딸을 발견하고 수레에 태웠지만 초나라 병사가 바싹 쫓아오는데 수레가 너무 무거워 빨리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두 아이를 수레 밖으로 밀어냈다. 이 모습을 본 부장 하후영(夏侯嬰)이 재빨리 아이들을 다시 수레 위로 끌어올렸다. 이런 상황이 세 번이나 반복되자 유방이 말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아이들까지 수레에 태워야 한단 말이냐? 그러다가 놈들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어쩔 셈이냐?”

하후영이 반박했다.

“친자식들인데 어찌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목숨을 지키는 태도를 고집한 유방은 결국 검을 뽑아 하후영을 찌르려 했고, 하후영은 더 이상 아이들을 수레 위로 끌어올리지 못한 채 두 아이를 팔에 안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호랑이가 아무리 독해도 새끼를 잡아먹진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유방은 호랑이가 아니라 용이라서 자신을 위해 자식들을 희생시킬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초, 한 양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항우는 유방의 부친을 붙잡아다가 유방을 위협하려 했다. 항우의 이러한 행동이 정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지상정을 이용한 하나의 전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항우는 유방의 부친을 앞세워 유방에게 말했다.

“하루 빨리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네 부친을 삶아먹고 말겠다.”

양군의 병사들은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진 유방이 군대를 철수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군자의 마음으로 소인의 뱃속을 추측한 것에 불과했다. 유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한때 형제의 의를 맺은 이상 내 부친은 곧 너의 부친이기도 하다. 네놈의 부친을 잡아 국을 끓이거든 내게도 한 그릇 나눠주기 바란다.”

무례하고 잔인한 유방의 태도에 기가 질린 항우는 하는 수 없이 그의 부친을 풀어주고 말았다.

마침내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왕조를 세웠다. 군신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 대업의 성취를 경축하는 자리에서였다. 유방은 젊었을 때 부친이 자신을 형만 못하다고 질책했던 일을 기억하고는 몹시 격분하며 신하들 앞에서 부친에게 따져 물었다.

“자, 보세요! 저랑 형,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성공했습니까?”

유방의 부친은 소인배가 뜻을 이뤄 기고만장한 모습이 역겹다며 코 방귀를 뀌면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방은 항상 유생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면서 자신의 깡패 기질을 드러냈다. 유생 여식기(麗食其)의 이웃에 유방의 위사가 살았다. 여식기가 유방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위사가 말했다.

“유방은 유생들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머리에 유생 모자를 쓰고 그를 만나러 올 때마다 그는 모자를 볏겨 그 안에다 오줌을 누었지요. 유생들이 찾아오면 그는 욕부터 해댄다니까요.”

그런데 이처럼 형편없는 인덕으로 어떻게 한 왕조를 세울 수 있었을까?

항우와 비교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진시황이 동유(東遊)를 나갔을 때 유방과 항우는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화려한 행렬을 바라보면서 크게 자극을 받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항우는 그 자리에서 “언젠가는 내가 저 자리를 대신하리라!” 하면서 호기를 부렸다. 반면 유방은 “대장부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하면서 질투심을 보였다. 이후 항우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용맹하게 선전을 거듭했고, 호방하면서도 시원한 성격을 드러내 ‘서초패왕’의 면모를 과시했다. 어질고 후덕함을 갖추었던 그는 병사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 독을 빼주는 인간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장수를 임명하고 관직을 내리는 데에는 인색했고, 대장을 신임하여 권한을 이양하는데도 서툴렀다. 어진 선비를 인정하긴 했지만 제대로 중용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방은 정반대였다. 그는 전술과 전략에는 서툴렀지만 상황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았다. 함양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진나라 궁궐로 들어간 유방은 궁궐의 화려함과 호화로움, 그리고 무수한 미녀들을 본 후 넋을 잃고 말았다. 바로 이때 번쾌(樊噲)가 들어와 호통을 쳤다.

“장군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시오, 아니면 천하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시오?”

유방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었다. 번쾌의 질책이 계속되었다.

“진궁의 이러한 사치가 바로 패망의 근원이었소. 어서 장군의 위치로 돌아오시오!”

이 말에 유방은 금세 깡패의 본색을 드러냈다.

“난 지금 심신이 몹시 피곤한 상태요. 여기서 하루만 쉬었다 가게 해주시구려.”

번쾌는 자신의 말로는 유방을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가서 장량을 데려왔다. 유방은 대의를 중시한 장량(張良)의 설득에 굴복하여 간신히 진궁에서 나올 수 있었다.

조조는 “난세에는 재간을 사용하고 치세에는 인덕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유방에게도 남다른 인재 관리의 능력이 있었다.

개국 초기에 유방은 한신(韓信)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관해 논했다. 유방이 한신에게 말했다.

“한장군은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 하시오?”

한신이 망설임 없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자 ,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럼 10만 대군은 어떨 것 같소?”
“그것도 어렵습니다.”

유방이 버럭 화를 내며 따졌다.

“그대 말대로라면 내가 어느 정도의 병력을 통솔할 수 있다는 것이오.?”

“장군께서는 1만의 병사면 족합니다.”

“그럼 한 장군은 어느 정도의 병력을 거느릴 수 있소?”

한신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제게는 병력이 얼마나 되든지 문제될 게 없습니다. 많을수록 좋지요.”

유방은 노기를 풀지 않은채 재차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병력을 다스릴 줄 모르는 나는 황제인데, 병력을 잘 통솔하는 그대는 왜 겨우 장군에 머무른 것이오?”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병사들을 잘 통솔하지만 폐하께서는 장군들을 잘 통솔하시니까요.”

그제야 유방의 화가 풀렸다. 유방도 언젠가 군막을 치고 천 리 밖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모책을 내는 데는 장량(張良)만 한 사람이 없고, 양초와 물자의 공급을 보장하여 치국안민하는 데는 소하(蕭何)만 한 사람이 없으며, 전선에 나가 적을 무찌르는 데는 한신(韓信)만 한 인물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신은 병력을 통솔하는 데 뛰어난 장수였다.

치국의 방법과 재략도 마찬가지이다. 서생 육가(陸賈)가 유방의 면전에서 『시경』 「상서」를 포함한 유가의 경전에 관해 논하자 유방은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나라는 말 위에서 얻는 것인데 어찌 한가로이 『시경 詩經』이나 『서경 書經』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말에 유방은 크게 뉘우치면서 육가에게 당부했다.

“그럼 공께서 진이 멸망한 교훈과 내가 천하를 얻게 된 요인을 글로써 정리해주시구려.”

이에 유방의 뜻에 따라 육가가 쓴 책이 바로 『신어 新語』였다.

누가 인심을 얻어야만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천하를 얻으려면 모름지기 인재(人材)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철칙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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