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04/01 16시 기준

한국 확진자 9,887

한국 퇴원자 5,567

중국 확진자 81,554

중국 사망자 3,312

  • 네이버포스트
  • 네이버tv
  • 다음카페
  • 네이버회원가입
[김병호 칼럼] 내 고향 안동(安東)
상태바
[김병호 칼럼] 내 고향 안동(安東)
  • 김병호 논설주간
  • 승인 2020.03.21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호 논설주간
김병호 논설주간

태화동 남쪽에 안동 경덕중학교가 있다. 당시 우덕수교장이 학교를 세워 안동 지역 향학 붐을 조성했던 주관 학교다.

1952년 설립했으니까 반세기를 훌쩍 넘은 역사 깊은 안동의 대표적인 사학기관이며 안동지역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배짱 좋은 명문교이다.

안동경찰서 자리에 안동농림고등학교가 있었는데, 1933년 안동 공립 농림학교로 출발해 거의 한 세기를 보낸 경상북도 북부지역 역사 깊은 학교다.

안동농림고등학교는 전국 단위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경상북도 곳곳마다 졸업생들이 지금도 요직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안동시는 세계적 문화유산도 즐비하다. 풍천면 하회마을, 서후면 봉정사, 도산면 도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안동댐 관광지도 명품 관광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안동에서 영주방향으로 6km 정도 위치한 제비원(연미사)는 자연석에 부처 흉상을 조각한 국내 몇 안 되는 훌륭한 조각상이 있다.

사실 안동시는 돌아앉으면 관광지고 돌아누워도 관광지 일색이다. 도산서원은 너무 유명해서 필자가 굳이 거론할 이유가 없다.

안동시는 청포도 시인 이육사의 요람이기도 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그는 독립운동가로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이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번호를 따온 것이다. 1933년 ‘황혼’으로 등단해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이토록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안동시는 유학의 후손답게 사회각층에서 귀감이 되는 생활로 오늘을 가고 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과 봉정사를 관광하고 갔던 사실도 있다. 봉정사에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면 ‘무아지경(無我之境)’, 무념무상으로 잠시 몰입할 수도 있다.

안동시 앞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은 민족의 젖줄이며 영남산업의 산파역할을 했고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맑고 푸른 강이다.

법흥동 소재 임청각은 일제가 맥을 끊어놓기 위해 임청각 마당으로 철길을 낸 아픈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안동댐 가는 길옆 철길 넘어 임청각이 보인다.

석주 이상용 선생의 생가인데 방 칸수가 99칸으로 유명하며 임청각을 처분해 독립자금으로 후원한 지성인으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분이다.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요즘 같으면 난방비 때문에 그냥 줘도 웬만한 사람은 살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안동은 유명한 곳으로 국 내외 적으로 명성이 높다.

또한, 안동 제비원표 소주가 명주로 꼽히고 있었다. 쌀로 빚은 45% 증류식 소주인데 필자 학창 시절 옥동 파출소 뒤쪽에 생산 공장이 있었다.

안동 제비원표 소주는 바닥에 조금 부어놓고 불을 붙이면 푸른빛을 띈 불이 핀다. 소주를 몇잔 마셔볼 경우 금방 취기를 느낄 수 있는 명품 소주다.

군 복무시절 안동 지방 휴가 장병들이 귀대할 때 안동 제비원표 소주 몇 병들고 부대에 들어가면 그날은 특급대우를 받았다고 선배들은 그 때 일화를 전하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내 고향 안동. 인구 16만 중견도시로 발돋움 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시와 함께하고 있다. 유교 중심 전통문화 관광도시 안동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정치핫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