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05/12 16시 기준

한국 확진자 10,909

한국 퇴원자 9,632

중국 확진자 82,918

중국 사망자 4,633

  • 네이버포스트
  • 네이버tv
  • 다음카페
  • 네이버회원가입
[김병호칼럼] 제천 세명대 故권영우 박사를 기리며
상태바
[김병호칼럼] 제천 세명대 故권영우 박사를 기리며
  • 김병호 논설주간
  • 승인 2020.03.27 2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명대학교 전경.(사진=뉴스프리존DB)
세명대학교 전경.(사진=뉴스프리존DB)

권영우 박사는 1991년 제천 용두산 자락 1,855,163㎡(561,187평) 및 건물 36동 규모로 세명대학교를 설립했다.

진리․창의․봉사가 교훈이며 명실공히 한강이남 명문대학으로 우뚝 솟아있다. 세명대학교, 대원대학교, 세명대 부속 한방병원, 충주 한방병원, 세명고등학교, 안동 성희여자 고등학교, 대원, 경기여객 및 버스 5천대를 운용하고 있다.

사실 권영우 박사 성공사례는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듯이 질과 양을 모두 갖춘 국내 몇 안 되는 성공신화를 남긴 인물이다.

경북 안동이 고향이며 중학교 시절 혈혈단신(孑孑單身) 상경해 삶의 굴레를 모두 벗어 버리고 용오름을 하면서 자신의 형평성을 굳게 유지했다.

그의 검소함은 주변사람들 및 후배들에게 삶의 귀감이 되었고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해 온 한 지인은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검소하게 사는 길”이라 했으며, “교육이 뭐 별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선 사람 가는 길부터 배워야하는데 우, 마가 가는 길에 사람이 들어서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늘 훈계했다고 부연했다.

물론 지식기반이 필요하겠지만 권박사는 사람 됨됨이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국회의원 진출 당시 동대문 지구에 참석했던 안동에 있는 모 지인은 지금도 권박사를 향해 “참 검소하게 지냈다. 두부찌게 좋아하고, 옷도 싼 집만 골라 다니면서 사 입는 것을 봤다.” 고 말했다.

그는 또 “ 성공하려는 사람 따라 다니면 먹을 것이 없고 망하는 자 따라 다니면 먹을 것이 많다.” 고 하면서 “권박사는 공익사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세명대 본관 건물은 대리석으로 우아하게 미를 살려 사학의 본관답게 궁전처럼 건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명당에 위치한 세명대는 남향으로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하다. 봄이 오면 캠퍼스에 벚꽃이 만개해 꽃 대궐을 이룬다.

속담에 “말 타면 궁궐 생각난다."고 돈 있으면 바르지 못한 생각이 나기 마련인데 권박사는 짧은 여생을 오직 교육에 헌신한 풍운아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아름다운 일만 있게 될 것이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아직까지 세명대는 별 변동사항 없다.

권박사는 유학의 본향 안동인답게 초지일관 육영사업을 성공시킨 양반이다. 하기야 요즘 돈 있으면 양반이고 돈 없으면 상놈이라고 하더라만 돈과 관계없이 양반 핏줄을 타고난 사람이다.

국제퇴계학 이사장도 역임했다. 안동 성희 여자고등학교는 여성 교육지위향상에 기여하고 있으며 안동 여성교육의 산실이라고 지역 인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피천득시인의 “인연”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 놓치고 /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고 했다.

권박사는 교육과 인연을 맺어 그 인연을 살렸지만 지병으로 66세에 생을 마감해 너무 안타깝다. 생존해 있었더라면 세명대는 더욱 발전했을 텐데 아쉬움이 용두산을 가린다.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치핫이슈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