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64회

방문

농촌에서 자란 소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읍내의 부유한 자제들을 제쳐두고 시골 출신이 보기 드물게 전교 1,2등을 차지했다. 그의 모친은 집안일을 할 때 맏딸인 소녀와 언제나 함께 했으며 맏딸을 의지하고 믿었다. 그만큼 그녀는 조숙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김치를 담글 때도 곁에서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고 배추도 다듬었다. 파를 다듬을 때는 눈이 매워 하늘을 쳐다보면 지붕 밑에 제비집이 보였다. 언제나 짹짹거리며 다정하게 보이는 제비집이었다. 그런데 먹이를 구하러 나갔던 어미 제비가 이틀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새끼는 힘이 없이 고개를 한쪽으로 가누고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밥풀을 먹이로 갖다 주어도 제비는 먹지 않았다. 결국 그 다음날 새끼제비는 숨을 거두었다. 소녀는 돌아오지 않은 어미 새가 원망스러웠다. 새끼를 놔두고 어디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소녀는 뒤뜰의 화단 쪽에 조그만 구멍을 내고 그곳에 제비를 묻어주었다. 그 후 제비집도 자연적으로 없어져버렸다. 그 후 다시는 제비가 날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생명의 신비함, 살고 죽는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함지에 절인 배추를 수돗가에 가서 깨끗이 씻으며 어머니는 맷돌에 붉은 고추를 갈았다. 눈이 맵고 쓰렸지만 마늘과 함께 양념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녀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갈아놓은 고추액에 새우젓을 넣고 고춧가루도 넣고 무를 채 썰어 다진 마늘과 파와 미나리, 당근 등을 넣어 배추 속 양념을 하기 시작했다.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물을 뺀 배추를 큰 스테인리스 함지에 미리 버무려놓은 양념을 배추 속에 켜켜이 묻히는 과정을 거쳐 옹이항아리에 김치를 차곡차곡 누르면서 가득 채워 뚜껑을 닫아놓는다. 뒷마당에서는 새우젓과 마늘, 고추액이 섞인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머니는 두 세 포기 남긴 배추 겉절이를 손으로 짝짝 찢었다. 그리고 참기름과 설탕을 조금 넣고 깨도 넣어서 양념을 넣고 버무렸다.

“겉절이다. 한 번 먹어 봐라!”

다 버무린 김치 겉절이를 소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간이 맞냐?

“약간 싱거운 것 같아요!”

“그려?”

어머니도 한쪽을 입에 넣어 본다.

“좀 삼삼하긴 하다.”

소금통에서 하얀 소금을 빨갛게 버무린 겉절이에 뿌리고 다시 한 번 버무렸다. 소녀는 김치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텃밭에서 자란 배추, 파, 고추, 마늘들이 흙에서 물과 햇빛을 충분히 받아 싱싱한 채소가 되어 이같이 먹음직한 반찬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신기했다.

‘자연이 어머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토지이며 햇빛이며 공기로구나…!’

소녀는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다. 소녀시절에 이처럼 어머니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총명해서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했다. 오빠들의 학비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대학생활은 호화롭고도 소중한 출발이었고 신의 은총이라 여겼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어 실력을 쌓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가시간에는 동서고금의 고전을 섭렵했고 특히 자서전이나 평전, 위인전을 섭렵하면서 세상에 영향력을 준 훌륭한 인물들의 삶의 과정을 숙지하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찍부터 마음에 꿈과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갔고, 고난으로 연단된 삶이었으며 모두가 인류의식과 역사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방학 때는 농어촌의 봉사활동에 참석했고 틈이 나면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방문하여 인류문화 발전과 그 정신을 공부했다. 또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영혼에 영향력을 미치는 문제를 탐색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인간의 영혼을 양육시키는 통로는 책과 예술 활동, 종교가 관련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인간은 이러한 영역의 활동과 영향을 받으면서 그 인생이 깊어지고 고양되며 철학적 삶이 확립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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