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실종자 가족 "우린 영영 유족이 될수 없나요"

지난 3월 11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이날 기온은 섭씨 영하 3도였다. 맹추위는 아니지만 스산한 기운이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박은미씨(46)는 두꺼운 점퍼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그래도 추운지 박씨의 두 다리는 연신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씨는 세월호 실종 학생인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엄마다.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박씨의 둘째 딸인 다윤이는 지난해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애완견을 사랑하며, 몰래 언니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러 다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윤이는 집안의 애교 덩어리였어요. 껌딱지처럼 엄마 아빠한테 딱 붙어 있던 아이였죠."
 

지난해 11월, 세월호 수색이 중단된 뒤 박씨 부부는 진도 팽목항을 떠나 안산 자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딸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부부를 괴롭혔다. "다윤이를 찾지 못하고 돌아온 뒤 잠을 자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미안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왜 살고 있나'라며 안 좋은 생각이 올라왔어요. 내가 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어요. 딸을 찾기 위해서…."

 

↑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 기자회견 (진도=연합통신넷)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종자들을 찾아달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15.3.16 <<전남 진도군 제공>>
 

가만히 얘기를 듣던 서 부장판사는 "송군 한 번 일어나보시죠"라고 입을 뗐다. 방청석에 있던 송군은 살짝 난감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복차림이었다.
 

"저는 최진혁 친구 송아무개다. 제가 원래 오늘 재판을 보고 할 얘기가 있었는데, 방금 피고인(이준석 선장)의 말을 듣고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아예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좀 상식적인 얘기였는데, 방금 (피고인과 변호인을) 보니까 이 상식이 필요 없는 것 같아서 말을 안 하려고 했다."
 

그는 선원들의 변호인이 법정에 나온 생존자 윤길옥씨를 몰아세웠다고 비판했다. 윤씨는 사고 당시 3층 매점에 있다가 안내데스크 쪽으로 이동, 사무부 소속 승무원 강혜성·박지영씨와 함께 있던 사람이다. 변호인들은 윤씨에게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 ▲ 사무부원들의 선내 대기 방송을 중단시키거나 ▲ 연락이 없으면 사무부원들에게 조타실에 한 번 가보라고 해야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신문을 지켜본 유족들은 "왜 그걸 승객에게 묻냐"며 항의했다. 송군 역시 "사고 당시는 재난 같은 상황이라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너무 당황해서 생각도 제대로 못한다"며 "증인도 자기는 당황했고 다친 상태였다는데, 변호사님은 왜 계속 '그때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냐고 하냐"고 말했다. 또 "피고인은 검사님이 천천히 질문하는 건 잘 못 알아들었다면서 변호사님이 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빠르게 긴 문장 얘기하면 잘 알아듣더라"고 꼬집었다.
 

'진혁이 엄마'는 그런 송군을 보며, 세상에 없는 아들을 떠올리며 또 한 번 가슴 아파했다.
 

"이 아이는 우리 진혁이가 있는 하늘공원에, 안산분향소에 밤 11시, 12시에도 옵니다. '어머님, 아버님 어떻게 지내세요. 아프지 마세요. 제가 진혁이 몫까지 다 할게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내 아들이 아닌, 진혁이 친구한테 이런 말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봄이 오는 게 싫습니다. 꽃 피는 자체가 싫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단원고 2학년) 10개의 반이 다 사진을 찍었으니까요."

3월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은미씨가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백철 기자설날 연휴 직전인 2월 14일, 박씨와 다른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를 찾았다. 이날 박씨는 맹골수도를 보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냥 다윤이를 만나고 싶었어요. 저 물에 빠지면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다가…."
 

맹골수도를 다녀온 뒤 박씨는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박씨의 몸 상태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박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박씨는 세월호 참사 전부터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에 종양이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참사 이후 병이 깊어져 박씨의 뇌와 귀에까지 종양이 퍼졌다. 뇌종양 때문인지 바닥이 일렁이는 것처럼 어지러워 혼자 걸어다닐 수가 없다. 오른쪽 청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남편 허흥환씨(50)가 박씨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1인 시위를 하다 보면 부부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실종자들을 다 건져낸 줄로만 알았다"는 사람, "천안함 유가족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딸을 찾아달라며 피켓을 드는 게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찾아야 하니까… 참아야지요."
 

박씨의 청와대 1인 시위가 처음으로 언론에 나온 날, 인터넷에는 '왜 세월호 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만 붙잡고 늘어지냐'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박씨도 그 댓글들을 봤다. "왜 청와대로 왔냐고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해경 해체 발표 뒤에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까지 찾겠다고 하셨잖아요. 그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세월호를 뭍으로 올려 내 딸과 다른 실종자들을 꼭 찾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박씨는 남편과 팔짱을 낀 채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농성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읖조리듯 내뱉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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