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임병용기자] 지난 10일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의 항소심 3차 공판을 취재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고속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내 잠에서 깨어버렸다. 뚜렷한 형상도, 줄거리도 없는 짧은 꿈이었지만 찝찝했다. 꿈에서 본 것은 분명 세월호 희생자였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선원들의 1심 공판을 보러 다닐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다. 감각은 힘이 셌다. 생존자의 증언이나 현장 동영상, 사진 등 법정에 나오는 자료들을 눈과 귀로 접하며 수시로 2014년 4월 16일을 거듭 복기하는 상황은 예상보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참사 관련 이미지가 꿈속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한동안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19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경험이었다. 이날 그는 제주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김씨의 딸은 의식을 잃고 화장실에 쓰려져있던 그를 발견한 뒤 병원으로 옮겼다. 상태가 나아진 김씨는 20일 세월호 피해자들을 돕는 경기도 안산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떠났다.

'그날 그 배'의 영웅은 스스로 죄인이라 말했다
 

▲ 침몰한 '세월호'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고통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진과 증언 등으로 참사를 간접 체험했을 뿐인 나와 달리 김씨는 '그날 그 배'에서 살아 돌아왔다.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울어진 세월호의 3~4층 갑판을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배가 완전히 뒤집히던 때까지 다른 승객들을 도왔다. 그럼에도 김씨는 괴로워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온 죄인이라며.
 

참사 당일부터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김씨는 늘 자책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3일,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변함없었다. 1시간 가까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씨는 해경의 무능을 질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중간 중간 목소리가 잦아지던 순간이 있었다. '죄책감'을 털어놓을 때였다. 김씨는 참사 당일 기억에 드문드문 빈 곳이 존재한다고, 죄책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해경은 살릴 마음이 없었다").
 

"(구조된 다음) 진도체육관에 가보니까 부모들이 와서 통곡하는데… 살아온 게 죄인이라고… 그때 그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그 죄책감에… (4월 16일) 오후 7시 넘어서 체육관에서 나왔다. 미안하니까 우리(화물기사들)는 광주라도 보내달라고. 빨리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학생들은 계속 시신으로 올라오고, 학부모들은 계속 울고, 찾고 난리인데 (우리가) 어떻게 계속 거기 있을 수 있겠나."
 

끝내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거듭 미안해하던 그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너무 괴로워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병실을 나선 게 전부였다.
 

그와 가족의 생계수단인 4.5톤짜리 화물트럭도 세월호와 함께 검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개월 정도 나오는 정부의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자신을 줄곧 괴롭히고 있는 죄책감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10월 21일 세월호 선원들의 1심 28차 공판에서 여전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아침마다 바다에서 학생들 헛것을 봅니다").
 

"어제 자살을 하려고 했다. 한라산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다. 아침마다 바다에 나가 학생들 헛것을 본다. …(중략)… 해경이 저한테 와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선장이 살인자죠?" 이랬다. 선장이 살인자면, 해경도 살인자다. 나도 살인자다."
 

4월 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버티고 있는 사람들
 

▲ 아들 사진 매만지는 엄마 '영인아 빨리 돌아와'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촉구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단원고 박영인 학생의 어머니 김선화씨가 아들의 사진을 만지고 있다.

 

2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그와 마주쳤다. '부실구조' 책임으로 기소된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의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였다. 마른 편이지만, 오랜 마라톤 경력으로 다부진 느낌을 줬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누가 봐도 김씨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얼굴빛도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얼굴이 안 좋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김씨는 "그냥 뭐…"라며 멋쩍어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3월 20일 그는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비행기를 탔다. 제주공항으로 찾아온 취재진에게 김씨는 호소했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은 다 끊긴 데다 마음 놓고 치료받기도 어렵다며 국가는 생색만 내고 있다고 했다. '왜 세월호를 못 잊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도 정말 괴롭다고 털어놨다.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살아남은 자들마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고, 어렵게 꾸려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희생자 9명은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진도 앞바다에 남겨져 있는 상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참사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가지만 아직 9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는 남은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원하며 실종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담긴 플래카드가 곳곳에 휘날리고 있다.

美 버클리대 동아시아 전문가 존 리 교수 주문

존 리(56) 미국 U.C 버클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아직도 광화문을 떠나지 못하는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달래주려면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20일 강조했다.
 

리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로 두 살 때 우리나라를 떠나 일본과 미국 하와이에서 자랐다. 그는 한국과 동아시아 연구에 천착해왔으며, 최근에는 K팝과 한류 현상에까지 관심 영역을 넓힌 지한파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한국사회의 위험과 사회과학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사회과학의 위기와 대전환'이라는 기조 강연을 맡았다.

리 교수는 그 누구도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로 위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실재'하는 위험 사이에 늘 간극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다가오는 위험과는 차이가 있다"며 "유교 사상을 토대로 하는 한국은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통계적으로는 노인 빈곤율이 OECD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과거에는 노인 문제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짚었다.
 

리 교수는 다음 달에 1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는 최근 한국인의 위험 관련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이는 참사로 인해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라기보다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성숙기에 접어든 사회였기에 가능한 변화라고 봤다.
 

그는 "한국은 1980년대 후반 산업 재해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고도 그리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가 1970년대나 1980년대에 일어났으면 지금처럼 큰 파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달성한 선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규제가 더 꼼꼼했다면', '선장이 더 잘 훈련됐었다면', '해경이 더 잘 구조했다면' 같은 진지한 문제 제기와 토론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인식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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