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방법의 승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의 형세에 알맞은 작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더라도 많은 사람은 승리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가 승리할 때의 군의 형세는 알겠지만, 내가 승리하기 위해 유용한 방법의 형세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한 번 사용하여 승리를 거둔 방법은 다시 사용하지 않으며, 정세변화에 따라 무궁무진한 전술로 대처해야 한다.(‘손자병법’ ‘허실편’,)

이 계책은 우선 전투에서의 승리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적 정세의 변화‧발전에 적응하여 끊임없이 전술과 전법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일체의 사물이 모두 변화‧발전하는 과정에 있듯이, 전쟁도 동태적(動態的)이기 때문이다. ‘군사에서 정해진 형세란 없으며, 흐르는 물에 일정한 형태가 있을 수 없다.’ 나의 승리는 곧 적의 패배다. 쌍방의 지휘관을 놓고 볼 때, 실패한 쪽이 승리한 쪽보다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승리 때 사용한 방법을 다음에 다시 사용하다가는 오히려 큰코다치기가 십상이다.

군사 전문가가 기존의 군사이론을 배우는 데만 힘을 기울인다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의 용병 사상은 과학 기술의 발전보다 뒤떨어질 것이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국내외 군사평론가들은 “마지노선에서 독일군의 진공을 저지하는 능력보다 현대 전쟁에 대한 프랑스의 이해력이 훨씬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고향이며, 나폴레옹은 한때 유럽의 내로라하는 전략가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존재였다. 일부 평론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 원칙으로 귀납된다고 한다.
첫째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둘째 반드시 먼저 주력을 공격하여 적장을 잡는 ‘금적금왕(擒敵擒王)’의 목적을 달성한다.
셋째 공격 행위는 적이 손쓸 틈 없이 전광석화처럼 빨라야 한다.
넷째 언제 어디서 공격을 가하든 간에 신속하게 병력을 집중시켜 단숨에 결행해야 한다.

이상의 네 가지 원칙은 결국 ‘공세작전’으로 귀결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프랑스군은 줄곧 나폴레옹의 용병법을 본받아 ‘공격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공격을 만능이라 여겼다. 1차 대전이 시작된 후에도 프랑스군은 여전히 ‘적을 만나면 즉각 공격 한다’는 입장을 지켰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기관총이 등장한 시대라, 진지에서 방어하며 화력을 발사하는 편이 움직이는 것보다 단연 유리했다. 프랑스군의 ‘공격 만능론’은 전쟁 초반에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이에 프랑스군은 재빨리 전술을 바꾸어 ‘진지 방어’를 채택했다.

위의 전술은 독일군의 베르뎅 요새 공격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프랑스군의 작전 사상을 180도 바꾸어놓고 말았다. 즉, 이제는 ‘방어 만능’이라는 군사 사상이 프랑스 군 수뇌부에 의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초기의 마지노 정신을 탄생시키는 근원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구식 전술을 고집해온 프랑스군 사령부는 현대 공격전술의 진보를 읽지 못하고 모든 희망을 마지노선에 걸면서 다시 한번 ‘베르뎅 방어전’의 승리를 꿈꾸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비극이었다.

똑같은 방법에 의한 승리는 두 번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전술‧전역을 펼칠 때는 활기 있고 기동성 있게 적의 상황에 따라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은 전술 원칙과 용병 사상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에서 전법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운용하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병가에서는 매복‧기습으로 승리를 얻은 예가 적지 않지만, 그 방법은 각각 달랐다. ‘적을 깊숙이 유인하는’ ‘유적심입(誘敵深入)’, ‘한발 늦게 출발하여 적을 제압하는’ ‘후발제인(後發制人)’, ‘몰래 진창을 건넌다’는 ‘암도진창(暗渡陳倉)’, ‘위를 포위해 조를 구한다’는 ‘위위구조(圍魏救趙)’ 등의 용병 사상은 병가에서 얼마나 반복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해서 승리를 거둔 자는 당시의 정황에 맞추어서 이런 방법을 창조적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승리는 같은 방법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전승불복’은 앞 사람의 경험을 취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시간‧장소‧적의 상황‧아군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앞사람 또는 지난번 방법을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정랑 고전연구가, 칼럼니스트
이정랑 고전연구가, 칼럼니스트

물론 때로는 적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이런 금기를 깨고 반복 사용하는 때도 있기는 하다. 사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반복된 용병술이 진정한 ‘전승불복’이 될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적의 심리상태 변화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군의 첫 매복에 당한 적은 아군이 설마 두 번 다시 매복하지 않으리라고 추측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러한 성공은 ‘적의 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인적제변(因敵制變)’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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