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시민연대는 E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방통위가 임명하는 첫 공영방송 사장’이라며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년 세월호 참사 관련보도로 그 해, 6월 30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정현 전 수석이 욕설을 섞어가며 김 전 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 자제와, 해경이 해군 잠수 요원의 투입을 통제했다는 보도에서 ‘통제’라는 단어의 삭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을 윽박지르며 “진짜 이 회사를 이 회사 이놈들”이라고 협박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 대전MBC노조

공영방송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공개한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전체 180개 대상국 중 70위를 기록했다. 각국의 언론 환경을 평가하는 또 다른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언론 자유도 조사에서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30위를 기록해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됐다.

보도 개입은 실제 존재하는가

‘실제로 정부가 공영방송의 보도에 개입하는가?’는 사실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방송사 고위 간부의 폭로가 아니라면 정부가 공영방송의 데스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물증은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KBS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을 지낸 KBS 김준범 기자는 “직접 보거나 들은 경우는 국장급이 아니면 알 수 없으므로 갈수록 친정부 성향의 기사가 나오는 정황을 보고 보도 개입 여부를 의심할 뿐”이라며 “정부가 명백히 잘못한 사안인데도 비판하지 않고 여야 공방으로 처리하는 보도 등이 강하게 의심되는 사례”라고 말했다.

편집권을 쥔 간부들이 방송 순서를 조절하거나 아예 뉴스에서 빼는 방식으로 보도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경우도 있다. 최문호 전 KBS 기자는 “다른 방송사에서는 방송 순서가 10번째 안팎인 아이템인데 KBS에서는 메인보도로 나가는 경우나 다른 방송사에서 중요하게 다룬 소재지만 공영방송사에서는 보도조차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KBS 기자 시절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 불법고문으로 인한 간첩조작과 인권탄압에 관계된 인사들의 훈장 수여가 가장 빈번했다는 내용을 담은 방송을 준비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데스킹 필요’ 등 석연찮은 이유로 반 년 넘게 미뤄졌고, 결국 그가 뉴스타파로 이직한 후에야 보도될 수 있었다. 또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방송모니터보고서에 따르면 이정현 전 수석의 녹취록이 폭로된 직후인 지난 7월 1~3일에 JTBC가 이에 대해 7건의 보도를 한 반면 KBS와 MBC는 단 한 건의 보도도 내지 않았다.

사장 선임 구조 개선과 편집권의 실질적 독립 필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부터다. MBC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김재철 사장이 2010년 부임한 후부터 정부가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 김 사장은 ‘시너지 효과를 위한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해체했으며, 김재철 사장 측 인사가 본부장으로 있는 편성제작본부 산하 부서로 이관했다. 뿐만 아니라 ‘뉴스 후’ 등 다수의 시사 프로그램이 폐지됐고 관계자들은 지방으로 발령하는 등 보복성으로 보이는 인사가 늘어났다. 이에 MBC의 공영방송으로서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판단한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임을 요구하며 2012년에 총파업을 하기도 했다.

사장이 새로 부임해도 방송사의 기본적인 인적 구성은 비슷하지만, 방송사 사장에게 주어지는 인사권과 예산권으로 조직의 방향이 크게 변하기 때문에 친정부적인 사장의 부임은 공영방송 독립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김준범 기자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장이 보도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등 요직에 자신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앉힘으로써 조직을 운영한다”며 “리더를 바꾸면 관료화된 조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위협받는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무엇보다 사장의 임명 구조다. 사장 임명에 영향을 끼치는 기구로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이사회가 있다. 이 두 기구의 정부·여당에 치우친 인사 구성이 바로 공영방송과 정부의 밀월 관계의 배경으로 지적된다.

방통위는 KBS의 이사진을 추천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임명하고, EBS와 MBC의 이사진은 방통위가 임명한다. 방통위의 상임위원은 모두 5명인데 이중 정부·여당에게 3명에 대한 추천권이 주어져 있다. 과반수 의결이 원칙인 위원회에서 여당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를 통해 정부와 여당은 최고 의결기관이자 내부 감독기구로 설치된 독립기관인 이사회 구성을 좌우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이사회는 정부와 여당의 개입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KBS 이사회는 11명의 이사 중 7명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는 9명 중 6명이 여당 추천 인사로 구성돼 있어 각 이사회는 여당 인사만으로도 주요사항을 의결할 수 있다.

또 KBS 사장은 이사회가 임명을 제청하고, MBC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가 선임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정권에 유리하게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정권에 우호적인 인물이 사장으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임명된 사장을 통해 정부·여당은 방송 보도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결국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을 총괄하는 사장이 정치적으로 낙점된 탓에 KBS와 MBC의 제작·보도 자율성과 공정성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개선안은 이사회의 이사 수를 여·야 7대 6으로 늘리는 방안과 특별다수제다. 특별다수제란 사장 선임 시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의 의결 정족수를 요구하는 제도이다. 이는 여당 쪽의 몰표로 사장이 선출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중립적인 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 영국 BBC와 일본 NHK, 독일 ZDF 등 세계의 공영방송사들은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선출한다. 하지만 민언련 김언경 사무처장은 “7대 6 구조로는 공영방송의 정권도구화를 막을 수 없고 특별다수제는 방송을 소모적인 정쟁의 도구로 빨아들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소수의 이사가 의사결정 구조를 쉽게 무력화 할 수 있으므로 후보의 전문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단지 정치적으로 중립 성향의 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최문호 기자는 “현재 KBS에 필요한 것은 보도를 진두지휘하는 유능한 사장이 아닌 정파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사장”이라며 특별다수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더불어 편집권의 실질적인 독립도 필요하다. 개별 기자가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해도 최종적으로 시청자에게 보이는 방식은 편집에 달려있다. 어떤 아이템을 어떤 방식으로, 혹은 방송을 몇 시에 어떤 순서로 낼지 결정하는 것이 편집이다. 현재 KBS 방송편성규약 제6조 제1항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자율성은 방송법이 정한 제반 기준 내에서 최대한 보장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KBS 측은 편성규약에 명시된 실무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지난해 12월 이병도 KBS 기자협회장의 세월호 참사 청문회 중계 요구에 대해 ‘편집권 침해’라고 몰아간 사건이 그 예다.

KBS의 방송편성규약에 따르면 본부별 편성위원회(편성위)는 취재 및 제작 책임자와 실무자 대표 각 5명 이내의 동수로 구성된다. 하지만 김준범 기자는 “편성·제작 과정에서 자율성이 침해됐는 지에 대해 논의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편성위는 현재 실질적인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부별 편성위에서 해결이 되지 않은 사안은 전체 편성위에 상정하고 이는 노사 간 체결한 단체협약에 의해 설립된 공정방송위원회(공방위)가 대신하는데 최근 5개월 동안 KBS의 공방위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김준범 기자는 “유명무실한 편성위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만 해도 지금처럼 언론 독립성의 일방적 후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와 정규적인 고용관계를 맺고, 취재 및 제작을 담당하는 해당 분야의 실무 종사자’라고 명시돼 있는 ‘실무자’의 범위 등 구체성이 떨어지는 편성규약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KBS 이사로 있는 김서중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편집권은 콘텐츠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 즉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와 간부들이 나눠 갖는게 이상적”이라며 “모호한 방송법을 고치고 편성위원회와 편성규약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외압’에 맞설 수 있게 하는 ‘내압’, 즉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내부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기자협회, PD협회 등 제작자들의 직능 협회와 노동조합이 제작 과정의 자율성을 지키는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다. 김준범 기자는 “회사의 거대한 흐름은 막지 못하지만 후퇴하는 속도를 늦추는 정도의 기여는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보도국장과 비슷한 권한을 가진 옴부즈맨을 둬 뉴스 제작과정을 감시하며 상시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도 있다. 심인보 기자는 “방송국의 데일리뉴스는 워낙 긴박하므로 이견이 생기는 사안에서 충분히 토론하지 못하고 권한을 가진 간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며 옴부즈맨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제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옴부즈맨은 사장의 직권 아래 있지 않아야 하며 임기의 법적인 보장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

‘공영성’이라는 가치를 찾아서

공영방송의 사전적 정의는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이다. 공영방송은 소유주체와 운영하는 재원이라는 기준에서 국영방송과 구분된다. 국영방송은 재정적 지원을 정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공영방송은 별도의 기관에 의해 감독을 받으며 국민이 내는 수신료가 주요 재원이 된다. 이렇듯 공영방송은 공공의 소유고 방송 경영진은 공공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도에는 특정인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아야 하며 누구에 의해서도 사유화될 수 없다. 원용진 교수(성공회대 커뮤니케이션학부)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잠재적인 주인은 시민”이라며 “이것이 공영성의 첫 번째 정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시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 추구해야 하는 ‘공영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먼저 공영방송에 대한 수신료를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보도를 해야 한다. 김서중 교수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화제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 언론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공영방송은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기계적 중립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들의 마이크가 돼주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도 공영방송에 요구되는 중요한 기능이다. 심인보 기자는 “권력이 투표를 통해 심판받는다고는 하지만 선거 사이의 간격이 길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그사이 권력을 견제하는 사회적 장치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언론장악 방지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여야 이사회 추천 권한 등의 문제로 여당이 반대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국회가 이사회 추천 권한을 갖느냐는 이유다. 8월 11일,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불금파티‘라는 생소한 집회가 4주차를 맞이했다. 방송 업무에서 배제된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드라마 PD가 춤을 추며 무대를 꾸몄다. <KBS>, <YTN> 등 다양한 방송사의 일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모여앉아 집회에 참여했다. 이날 열린 집회의 요지는 간단했다. ’현 <MBC> 사장 김장겸은 자리에서 물러나라.‘ 5년 전 2012년과 지금, <MBC>는 계속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권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과거 <MBC>가 한국 언론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은 매번 <MBC>기자에게 돌아갔고, <MBC>는 ‘뉴스데스크’와 ‘PD수첩’을 필두로 완성도 높은 탐사 보도를 수행했다. 대다수 언론사 지망생이 입사하고 싶은 언론사 1순위로 <MBC>를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명성은 이제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무색해졌다. 상부의 판단에 항의하는 구성원들은 빈번히 방송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뉴스데스크‘는 ’청와데스크‘라는 조롱까지 받으며 3-4%로 시청률이 급감했다. 지난 8월 16일 한국기자협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MBC>를 꼽은 기자들은 단 1%에 그쳤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언론노조)’ 허유신 홍보국장은 “<MBC>의 후퇴는 2008년 당시 이명박 정권이 PD수첩을 경계하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2008년 PD수첩의 보도를 계기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자, <MBC>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이 정권 내에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2009년, <MBC>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의 압박에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이 자진 사퇴했다. 빈 자리에 새로 선임된 김재철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 인물이었다. <MBC> 구성원들은 “김재철 사장이 정권의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고 입을 모은다. 시사 프로그램은 연달아 폐지됐으며, PD들은 기존에 제작하던 프로그램을 떠나 타 부서로 전보당해야 했다.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2010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MBC> 내 좌파를 대청소했다”고 밝힌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김 전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측은 정권의 입맛에 방송 논조를 맞추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MBC> 구성원들은 무려 5차례의 파업을 벌였다.“MBC언론노조는 2012년 총파업 전까지 거의 모든 파업에서 승리해왔다”고 허유신 국장은 설명했다. 그만큼 MBC 언론노조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조합원 수는 서울지부만 1천명을 넘겼고, 전국언론노조 내에서도 가장 많은 조합원이 활동했다. 경영진은 사상 처음으로 파업 도중 계약직 기자와 PD들을 뽑고 보도국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대규모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MBC> 구성원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2012년 1월에 시작했던 파업은 반년 가량 이어졌다. 170일,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끝내 자리를 지켰고, 파업은 명쾌한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끝나지 않던 징계와 탄압

파업이 끝나자 탄압은 본격화됐다. 노사 관계는 파행으로 치달았고, 2012년 10월에는 경영진이 노조에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허유신 국장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은 사실상 노사관계가 끝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MBC>는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을 갖고 있지 않다. 최장기간의 파업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노조는 투쟁을 재개할 동력을 상실했다. 힘이 사측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구성원들을 보호하기조차 힘들었다. MBC언론노조에 따르면 경영진은 2017년 현재까지 10명에게 해고, 110명에게 중징계, 그리고 157명에게 업무 전보를 강행했다.

파업이 끝난 후에도 경영진을 향한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MBC> 구성원들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외부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등 안팎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그러나 허유신 국장에 의하면, “경영진이나 보도 간부를 비판하고 보도 정상화를 요구하는모든 시도들에는 징계가 뒤따랐다”. 부당해고 및 징계와 관련한 소송 29건 중 90% 이상을 사측이 패소할 정도로 경영진의 징계에는 정당성이 없었다. 그러나 사측이 패소한다고 해서 파행이 종료되는 건 아니었다. 허유신 국장은“정직 6개월 처분에 대해 법원이 부당징계로 판결하면, 경영진이 다시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부당해고 판결이 나와도 회사에 돌아오면 다시 정직 처분이 떨어졌다. 파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구성원들마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MBC 김민식 PD가 두번째 징계위원회 츨석하며 다시 한번 페북 라이브를 통해 김장겸 사장에게 돌직구를 날림

사측은 지시에 따르지 않는 구성원을 탄압하는 한편, 노조 탈퇴를 유도하기도 했다. 2012년 파업 당시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MBC> 김민식 PD는 “파업 종료 이후 사측은 파업 참가자와 불참자를 갈라놓고, 불참자에게 노조를 탈퇴하거나 사측 편으로 오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를 탈퇴하면 보직을 주거나,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식의 제안이었다. 김 PD는 “다른 사업장이었다면 노조 자체가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며 “MBC언론노조는 구성원이 일부 줄기는 했어도 굳건하게 버텼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조직력으로 다시싸울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법원은 2012년 파업 이후 진행된 해고 및 징계 무효소송, 업무방해 소송,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심까지 모두 노조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허유신 국장은 “파업은 근로조건 침해에 대한 방어 수단이며, 법원도 공정방송 여부가 언론인에게 중요한 근로조건임을 인정했다”고 역설했다.

 MBC, 언론의 본질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

현재 국회에는 보수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해결하기 위해 발의된 방송관계법 4개 법안이 계류돼있다. 이들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여야 6 대 3에서 7 대 6으로 변경 ▲사장 선임 등의 중요 사안 결정 시 3분의 2 이상의 동의필요(특별다수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 안 역시 최소한의 개선일 뿐 최선의 방안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유신 홍보국장은 그중에서도 특별다수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위해서는 여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여야 합의 도출은 듣기에는 바람직하지만, 자칫하면 공영방송에 걸맞은 인사가 아니라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 간부로 선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8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수정을 제안했다.

학계와 언론단체 등에서는 영국의 <BBC>나 독일 <ARD>, <ZDF>와 같은 공영방송사를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BBC>의 경우 규제·감독 기구인 ‘BBC 트러스트‘의 10명 중 4명을 각 지역의 대표로 선출해 시청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 다양한 이해집단 출신의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장의 선임권을 갖게 하는 등, 다원화된 체계를 구성하고 정치권력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해 2012년 파업 당시 해고됐던 이용마 전 <MBC> 기자는 국민 대리인단을 통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자고 제안기도 했다.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시민사회 와 언론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MBC> 경영진을 향한 저항도 다시금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이후 지난해 11월 7일, 사내 게시판에 보도국장과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며 노조 구성원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사측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삭제하자 입사 4년차 막내 기자들은 손으로 쓴 대자보를 사내에 붙었다. 이어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고 외친 김민식 PD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PD수첩 PD들과 시사제작국, 보도국 구성원이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MBC>판 블랙리스트’의 공개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MBC 언론노조가 입수한 문서들에 따르면, 사측은 정치적 성향과 노조 활동 정도, 파업 참여 여부 등을 기준으로 카메라 기자들을 ‘회색분자’, ‘파업의 주동계층’ 등의 4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또한 ‘X 등급’에 속한 기자들에 대해 ‘격리 필요’, ‘보도국 이외로 방출 필요’라고 언급하는 등 경영진의 낙인과 탄압이 실제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서 지난 2월에 진행됐던 <MBC> 사장 후보 면접 속기록이 공개되면서, 방문진 이사들이 노조 소속 인사를 배제하도록 경영진을 지휘했던 정황 역시 밝혀졌다. MBC언론노조와 ‘MBC영상기자회’는 김장겸 <MBC> 사장을 부당노동행위·업무방해·명예훼손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현재 MBC언론노조는 9월 1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예고한 상태다. 제일의 목표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방문진 이사진을 해임하고, 새로운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해 김장겸 사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허유신 국장은 “송출 부문을 비롯해, 파업을 할 때 최소한으로 남겨뒀던 인력도 빠짐없이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파업에 돌입할 때 필수 인력을 남겨두는 일은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단체협약에 규정돼있던 사항이었다. <MBC>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파업을 경영진이 자초한 셈이다. 방송 송출 포기는 그만큼 <MBC>의 상황이 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MBC>의 투쟁은 공영방송이 얼마나 권력에 취약했는지, 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상기시킨다. 김민식 PD는 “공영방송은 결국 국민의 공공재”라고 역설했다. <MBC>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공영방송의 제 기능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2012년 총파업이 끝난 지 5년이 넘은 지금, <MBC> 구성원들은 온몸에 상처가 난 채 여전히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