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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주의 양심적 중도 배타적 애국보수적폐 어디에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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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주의 양심적 중도 배타적 애국보수적폐 어디에서 왔나
1987년 민주화항쟁 양김 분열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 당선 1990년 차기 도모 3당 합당 후 민주자유당 창당 대구경북 부산경남 민심 극우화 시작
  • 문해청 기자
  • 승인 2020.04.17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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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전국진 지부장과 함께했던 동지들 / ⓒ 문해청 기자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전국진 지부장(서울대민주동문회대구경북지부)과 함께했던 시민사회단체 동지 / ⓒ 문해청 기자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지난 제21대 총선 후 대구경북지역주의가 비도덕적 감정적 결집으로 선거하는 대구경북 정치성향을 해부하는 논쟁이 일어나는 가운데 16일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지역주의 양심적 중도 배타적 애국보수적폐의 뿌리에 대한 개요를 정견으로 밝혔다.

대구 지역주의 양심적 중도 배타적 애국보수적폐 선거 결과에 대하여 ‘역사적 의미’ ‘역사적 과제’에 대한 개요는 역사학계에서 소견 일 수 있다며 밝혔다.

[중도층과 밭갈기]

저는 프로야구에 관심을 끊은 지 꽤 오래 됐다. 야구경기장에 안 가는 것은 물론 TV 중계도 안 본다. 그래도 마음속에 담아둔 팀은 있다.

지난 40년 전 프로야구 개막 때부터 몇 년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응원했다. 비록 5살 때 떠난 고향이지만 지역 연고의식은 이렇게 강력하다. 현재 50대 이상 서울 사람 태반은 자기가 서울사람이자 고향사람이라고 본다. 이런 지역적 이중 정체성은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낳은 산물이다. 프로야구팀 응원보다 더 강력한 정체성 구성 요소가 정당지지이다.

어떤 정당과 자기사이에 주관적 ‘연계’를 맺은 사람은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아무리 못해도, 홧김에 경기를 안 볼지언정 라이벌팀 응원으로 돌아서지는 않는 게 사람의 내면 심리이다. 정당 지지도 이와 비슷하다. 이른바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 중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마음속에 지지 정당이 있으나 누가 물으면 “관심 없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예 투표장에 안 가고 속마음을 숨기는 ‘중도층’은 상황에 따라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한다. 이른바 ‘중도층’ 중 상당수는 ‘속마음을 숨기는 소극적 지지자’라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 선거의 승패는 어느 정당에 ‘적극적 지지자’가 많으냐보다는 어느 정당이 ‘소극적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이른바 ‘스윙 보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더 강한 연고’에 이끌려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지지 정당도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대다수 가정에서는 자식이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어머니가 자식 말도 안 듣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지난 4년 간 총선, 대선, 지선, 총선에서 민주당이 연거푸 승리했다.

현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총체적 우위’를 입증한 것도 주요한 이유지만 민주시민이 자기 돈과 시간과 열정을 기울여 타인의 ‘정체성’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이유이다. 지난 30년 전 ‘3당 합당’ 당시는 요원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이 불과 한 세대 만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일상적 노력이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힘의 원천이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밭갈이’한 농부 시민의 승리이다. 신천지교단에 의한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민으로 하여금 ‘후진국민’이라는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민주시민의 ‘밭갈이’가 계속되는 한 한국정치도 ‘선진국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와 애국보수]

현재 정당정치구조를 만든 건 1990년 ‘3당 합당’이다. 1987년 시민민주화항쟁으로 퇴출되어야 했지만 ‘양김 분열’로 정권을 다시 잡은 노태우 민정당은 ‘차기’를 확신할 수 없었다. 광주민중학살을 비롯해 지은 죄가 너무 큰 이유로 정권연장은 ‘생존의 문제’였다.

그들이 고안한 해법은 신군부 군사독재 세력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자칭 유신본당인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영삼 통일민주당을 합친 거대 정당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도모했던 것이다.

김영삼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했던 사람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유린한 세력과 손을 잡을 수 있느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로써 민주 대 반민주, 양심 대 비양심으로 나뉘어 있던 정치 구도는 이상하게 변했다.

군사독재시절 부패와 불공정은 너무나 일반적이었다. 반민주적이고 반인륜적인 군사독재 정권에 빌붙은 사람들이 부패와 불공정으로 획득한 부와 특권이 ‘당대의 부패 기득권’이자 현재까지 이어지는 ‘적폐’가 되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은 직선제와 개헌을 쟁취했을 뿐이었다. 이 ‘부패 기득권’ 청산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영삼 투항으로 그 과제 달성은 요원해져 버렸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심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3당 통합으로 만들어진 당의 이름은 ‘민주자유당’ 일본 ‘자유민주당’을 앞뒤만 바꾼 정당이었다.

일본식 자민당 1당 독재 체제에 대한 지향을 선명히 드러낸 이름이다. 유신 독재세력과 신군부 군사독재 세력이 저지른 반민주, 반인륜 범죄를 처벌할 길이 영영 막힌 듯했다. 더구나 ‘3당 합당’은 그때까지 ‘담론의 영역’에 있던 ‘지역감정’을 ‘정치구도’로 가시화했다.

박정희 유신독재세력은 충청 신군부 독재세력은 대구경북 TK 타협적 민주세력은 부산경남 PK 로 지역을 나눴다. 양심적 중도 비타협적 민주세력은 호남과 수도권 일부만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영남 - 충청 합작에 의한 호남 포위라는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통일민주당에서 김영삼의 ‘투항’에 결연히 반대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그와 행보를 같이했다. 그 당시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 인물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지역으로는 대구경북 TK, 부산경남 PK, 충청이 합친 것이다.

반민주 반인륜 군사독재 세력과 타협적 민주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념’ ‘철학’은 없었다. 그들을 묶어 준 건 '정권욕'뿐이었다. 민자당이 정당성을 주장할 방법은 자기와 대립하는 정치세력에 ‘용공 좌경’ 낙인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김영삼은 ‘차기’를 보장받는 대가로 군사독재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기준에서는 이 기묘한 혼성 정당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없었다. 자기들 ‘정체성’ 자체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동원할 수 있었던 ‘정신적 자원’은 노골적 ‘지역주의’였다.

또한 근거 없는 ‘반공주의’에 따른‘용공몰이’뿐이었다. 1992년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3당 통합한 민자당의 지지 기반이 된 ‘지역주의’의 주민과 시민의 다수가 민자당이 구사한 ‘지역주의’와 ‘용공 낙인찍기’ 수법의 정신적 희생자가 되었다.

이 기묘한 혼종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민자당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 정당’이라고 부르고 상대를 ‘좌경 용공세력’이라고 불렀다.

이후 스스로를 ‘애국보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당연히 상대방을 비하하는 '종북좌파'나 '빨갱이'라는 막말로 호명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되기에는 1도 1사(1개 도, 1개 광역시에 1개 언론사만 보장)로 언론을 통폐합했던 군사독재체제 정신적 동반자 ‘적폐 언론’들 역할과 영향력이 컸다.

민자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의 대표적 업적으로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를 꼽는다. 그 공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김영삼 대통령 스스로 군부독재세력의 꼭두각시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민자당과 그 지지 세력 내부에 1차 균열이 발생했다.

2차 균열은 1997년 DJP연합이었다. 김대중은 영남 - 충청 합작에 의한 호남 포위를 뚫기 위해 ‘유신본당’과 손을 잡았다. IMF 관리체제라는 비상한 위기에서 겨우 집권할 수 있었다. 이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고 ‘지역감정’도 해소되지 못했다. 이 지역감정은 ‘애국보수 이데올로기’와 굳게 결합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 노무현 -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당의 ‘정통성’을 내세운다. 반면 미래통합당(이하 미통당)은 정당사무실에 이승만, 박정희 사진만 걸어놓았다.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이회창 - 이명박 - 박근혜 - 황교안으로 이어진 정당의 최근 역사에서는 내세울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미통당 세력이 상대를 ‘종북 좌파 빨갱이’ 프레임에 가두려다 스스로 독재세력의 정체성으로 퇴행해 버린 결과이다. 지금 미통당은 ‘김영삼의 철학’조차 사라져 버렸다. 이번 총선에도 미통당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독재 망령에 기대어 시민을 협박했고 이를 총선의 주된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미통당 핵심 지지자는 “김대중이 정권 잡으면 공산화한다” “노무현이 정권 잡으면 공산화한다” “문재인이 정권 잡으면 공산화한다” "민주당이 다수당 되면 공산화한다"는 주장을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킨 1961년 이후 60년 동안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계가 변하고 나라가 달라졌지만 미통당세력 저들은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일당독재군부독점정신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지역주의’의 벽은 여전히 높고 그와 결합한 ‘바보 이데올로기’도 여전히 강고하다.

하지만 30년 전 ‘3당 합당’ 당시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지역주의와 결합한 애국보수 이데올로기’ 기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1992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당이 얻은 의석은 97석이었다. 그러나 3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번 총선결과를 많은 언론매체와 전문가가 ‘되살아난 지역주의’라고 하지만 그보다 지역주의’ ‘용공 낙인찍기’ 수법‘종북 좌파 빨갱이’ 프레임‘바보 이데올로기’의 퇴조라고 볼 수 있다. 자기 고향을 사랑하고 자기 고향 연고팀을 응원하며 자기 고향 출신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애향심이 ‘망상’ ‘공상’ ‘비현실적 이상’과 결합해서 ‘비도덕적 주장’을 ‘가짜뉴스’로 퍼트리는 것은 ‘공공의 해악’이고 ‘시민대중의 공해’이다.

2020년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의는 1961년 박정희 쿠테타 유신군부독제 이후 60년 동안 ‘지역주의’와 결합하고 정치 담론을 왜곡했던 ‘망상’ ‘공상’ ‘비현실적 이상’ ‘비도덕적 주장’ ‘가짜뉴스’기반이 상당히 약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과거 이승만 자유당 독재, 박정희 쿠테타 군부유신독재세력, 전두환 노태우 쿠테타 신군부 독재세력을 ‘인적’으로 청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의 그릇된‘정신’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시대의 중요한 핵심과제이다.

이제 그 과제를 달성해야 비로소 ‘정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박정희 유신군부독재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군사독재 정신적 후예 시민에게 ‘애국보수’라는 가짜 이름을 떼어 내야한다.

국제기준에서 ‘보수’가 ‘진보좌파’란 엉뚱하게 호명하는 ‘정치적 후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여야정당 정치의 전망에 대하여 정치평론 개요를 전우용 역사학자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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