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비스가 곧 상품이고 경쟁 무기며 그것을 소홀히 하고서는 마케팅이 불가능한 시대다. 고객 서비스는 가히 천의 얼굴로 분장하고 시장을 누빈다. 그게 너무나 알록달록 해서 기업조차도 헷갈리고 휘둘린다.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하여 고객은 왕이다. 그런 고객을 왕처럼 모셔 만족감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것이 기업에 가치로 돌아오게 하는 게 서비스다. 과거의 ‘고객의 불만이나 요구를 해결해 만족을 주는 것’이라는 개념의 서비스로는 부족하다. 현대의 진정한 서비스는 ‘상대방이 호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낳는 지식이나 행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서비스를 정의한다면, 그것은 상품으로서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 서비스란 진짜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민감한 상품이라서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의해 그 가치가 크게 좌우된다. 

그것은 일의 품격과 회사의 자질을 나타낸다. 동시에 그것은 사업 전체의 종합적인 행동의 품질과 품격을 높이는 운동으로 일종의 종합적인 품질관리를 하는 것이다. 서비스는 고객이 기업에게 주는 선물인 불만과 항의를 신속하고 친절하게 처리, 해결함으로써 고객만족으로 낳는 신뢰를 회복해 판매를 되살리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게 만든다. 때문에 서비스도 제품처럼 연구개발하고 상품계획처럼 계획해서 마케팅전략에 포함시켜야 한다.

서비스를 비유한다면 솜씨에 필적하는 ‘정성’이라 할 수 있다.
음식 맛은 솜씨만으로 다 낼 수가 없다. 같은 된장찌개를 끓여 내도 아내가 만들면 어머니가 만든 것만 못하다는 이유는 정성 때문이다. 어머니라고 다 된장찌개 솜씨가 일류는 아니다. 그래도 어떻든 어머니 손맛이 최고인 것은 그게 구미에 맞기 때문인데 그 손맛이란 게 정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아내가 솜씨가 부족하지도 않은 데도 어머니 것이 더 맛있다면 그건 정성이 부족한 탓일 게고, 어머니 솜씨가 아내보다 더 낫지 않은 데도 그렇다면 그것 역시 정성의 차이 탓일 것이다. 까다롭고 간사하다는 입맛을 조종하는 건 놀랍게도 솜씨보다는 정성 쪽인 것이다. 하기는 솜씨는 눈썰미와 손끝으로 배워 익히는 기술인데 비해 손맛은 사랑하는 마음과 애정 어린 정성으로 내는 ‘가외 맛’이라 할 수 있다.  서비스가 가치를 지닌 상품이라는 의미나 정성이 맛내기에 없어서는 안 될 가외 맛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기업이 성공하는 열쇠가 생산지향에 있지 않고 마케팅지향의 서비스에 있다고 할 만큼 서비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잘 조직되고 양질의 서비스를 포함시키지 않은 마케팅 가지고는 시장경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밤이나 낮이나 앉으나 서나 서비스의 눈을 뜨고 있지 않으면 언제 시장한테 버림받을지 모른다고 했겠는가.

그런데, 그토록 중요한 서비스가 알록달록 곁과 속이 다르고 기업을 휘둘리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 받지 않는 것 같다.
우선, 서비스가 서비스정신 쪽보다는 매뉴얼 같은 기법적인 측면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경향이 문제다. 서비스의 본질이 기업정신과 경영 마인드에 있다면 그건 기교보다는 정신배양과 자세확립이 더 우선돼야 이치에 맞다. 서비스정신은 경영철학의 소산이고 기업 윤리나 도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명 전자회사에 고장 난 텔레비전의 수리를 요청한 적이 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서너 시간이 걸렸지만 수리 시간은 불과 일 분 남짓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리공은 솜씨도 좋았고 태도도 상냥했다. 과연 신속하고 친절한 애프터서비스시대 이구나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청구서를 받아본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어이없게도 수리비가 일 만원이나 되었다. 출장비 때문이라고 구구한 설명을 했지만 불과 일, 이 분 동안에 좁쌀만 한 납땜 두서너 군데를 지진 수리비로는 폭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도 보통 시간당 기만원이 고작이니 그 수리비는 가히 놀라운 노동부가가치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든, 문제의 터무니없는 수리비 때문에 그 회사의 서비스는 양질 여부에 상관없이 불신과 불만이라는 역효과를 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우량 고객인 나로 하여금 경쟁사 고객으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만일 수리비를 무료라 했더라면 아마도 나는 큰 신세라도 진 듯이 평생 그 회사 단골 구매자에다 유리한 구전口傳광고를 하는 지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회사는 단돈 만 원 수리비 챙기느라 우량 고객 한 사람을 놓친 꼴이 된 것이다.

그런 되로 받고 말로 잃는 허술한 장삿속이라는 게 다 서비스정신의 올바른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서비스란 게 솜씨보다 정성에 더 강한 감동시키는 힘이 있고 그 감동요소가 창출하는 가치는 솜씨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상식을 그런 대기업이 도외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서비스는 정성과 웃음만으로 해서는 소용없기 때문에 계속 적잖은 투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식의 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실제로 고객에게 전달돼 기쁨과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성을 쏟아야 될 뿐만 아니라 사은품과 무료 음료수의 제공, 무상 수리, 문화행사에의 초대 등등 돈도 써야 한다.
남이 다 하는 서비스는 필수이고, 지금은 더 다양하고 더 큰 공짜며 더 빠르고 더 요긴한 서비스, 이른바 ‘차별화된 서비스’의 개발을 경쟁한다.

이제 단순한 ‘호감 사기’ 서비스는 없다. 전부가 판매수단화 됐다. 식품점의 시식 코너서부터 양탄자 청소기를 팔기 위한 무료 방문청소에 이르기까지 사전 마케팅에 있어 돈 드는 서비스는 감초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농수산물의 고객 서비스용 ‘희생타 염가판매’까지 등장, 손님이 꼬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싸고 좋은 물건을 판다는 좋은 이미지 만들기에도 성공했다. 반품이나 클레임 가지고 고객을 속상하게 했던 시절은 먼 과거인 것이다.

그만큼 서비스는 고객중심이 되고 경쟁적이 되었다. 자연히, 애써 서비스하고 좋은 소리 못 듣는다든가, 말 태웠더니 경마 잡히라는 식으로 서비스 요구가 갈수록 거세졌다. 그리고 급기야 고객한테 휘둘린다며 기업이 쓴웃음을 짓기에 이르렀다. 고객한테 꽉 잡혀서 할인이나 반품, 품질의 클레임 등 고객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 것은 서비스가 아닌데도 기업이 고객한테 휘둘리듯 구는 것은 들인 정성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문제는 서비스를 누리는 고객 가운데 무익하거나 해로운 고객이 섞여 있어 분간이 안 되며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는 데 있다. 어쨌거나 속상해 울며 겨자 먹는 형국으로라도 서비스는 중단할 수 없는 게 기업의 운명이다.

기쁨을 주는 서비스가 표리부동한 위선의 손을 숨기고 있다는 건 우려되는 아이러니다. 서비스는 겉과 속이 달라서 웃으며 흔드는 겉 손과 영악하게 챙기는 속 손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서비스는 일단 요란스럽게 홍보하며 제공하고는 거기에 투자된 비용은 뒤로 돌아앉아 판매가격에다 집어넣어 흔적을 없앤 다음 소비자 또는 고객한테 부담시킨다는 건 상식이다.

고객은 겉으로는 얻고 속으로는 언젠가 에누리 없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묵인된 선의의 속임수다. 백화점과 대형 매장마다 버스업계를 괴롭히면서까지 고객용 버스를 운행, 일 년 내내 교통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  편한 맛에 예사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들 말했지만 기실 그 막대한 비용은 물건 값에 얹히거나 낼 세금을 줄여 사실상 벌충하는 것이다.

그런 것보다 더 겉과 속이 다른 판매 서비스도 비일비재하다. 
어린이가 즐겨 먹는 과자의 경우 돈을 쳐 바른 현란한 포장지를 벗기고 종이 곽을 열면 과자를 담은 덮개가 없는 플라스틱 용기가 있다. 그런 지나친 포장이 명분인즉슨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제품 서비스라고 할 것이다.

그게 다 결국에 소비자 부담을 늘릴 뿐 시선을 끌려는 광고이지 서비스와는 무관한 것이다. 아이들이 즐겨 사 먹는 얼음과자의 경우 포장은 점점 요란해지고 광고는 더욱 극성인데 막대기에 붙은 얼음 살은 찬물에 뭐 줄 듯 매년 줄어들어 칠 부 수준으로 줄었다. 그건 항의할 힘이 없는 아이들이라 얕잡아보고 함량을 속이는 방법으로 가격인상 효과를 보는 매우 치사한 짓이다.

그런 저질 장삿속은 서비스의 천적인데 아이들이 미래의 고객임을 알고도 그랬다면 그 기업은 서비스란 말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
서비스가 숨기고 있는 위선이란 당장에는 들통이 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기업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는 이치를 예사로 외면하는 것은 서비스를 한다는 터에 우스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비스야말로 상품이라느니, 서비스에 소홀한 기업경영이란 불가능하다느니 거창하게 포장하기에 앞서 고객을 성심성의껏 대하려는 마음가짐을 사원들 마음속에 넘치게 만들고 즐겁게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서비스정신에다 서비스관련 제도나 기법, 매뉴얼 등을 접목시켜야 그 서비스가 일류가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고객만족경영의 첩경이고 성공적 상품화의 에너자이저(energizer)다.

서비스를 밖의 고객이나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모순이다. 서비스가 기쁨과 만족을 줌으로써 결국엔 그것들이 기업에 유익한 가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면 기업 내부 서비스도 고객 서비스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기 식구조차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하물며 남을 만족시키려 서비스 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가치의 시너지효과도 낼 수 없다.
기업 내 종업원 상호간이 서비스정신의 실천에 익숙하다는 건 기업 건강에 돈 안 드는 아주 유익한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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