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당 조성주 서예 전각 그림전

“나는 항상 다른 꿈을 꾼다” 보리수 대작 눈길

[뉴스프리존=편완식 기자]“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나는 어려서부터 이 산상수훈을 신나게 외웠지만,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세울 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금강경’적인 무(無)나 ‘반야심경’적인 공(空)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9m 크기의 대작 '전각법화경보리수'작품 앞에 선 조성주 작가. 그에게 작품은 깨달음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넘쳐 그림이 된 풍경이다.
9m 크기의 대작 '전각법화경보리수'작품 앞에 선 조성주 작가. 그에게 작품은 깨달음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넘쳐 그림이 된 풍경이다.

보살에게는 어떠한 경우도 아(我)라고 하는 실체가 있어서는 아니된다. 아가 있으면 그것은 곧 보살이 아니다. 즉 보살됨의 규정은 곧 무아(無我)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아의 실천이 없이는 반야의 지혜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박테리아를 쳐부수는데 항생제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항생제를 좋아해서 항생제를 계속 먹으면 그것이 더 큰 병을 불러 일으킨다. 공(空)사상은 존재(存在)를 실체의 존속으로 팍악하는 우리의 유병(有病)을 치료하는 데는 더 없는 좋은 약이다. 그러나 공 그 자체에 집착하면 더 큰 병이 생겨난다. 악취공(惡取空)이라는 것이 그것이다.반야의 사상은 근원적으로 우리의 ‘언어’의 세계를 부정한다. 그러나 비록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언어라는 방편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잘 뜯어보면 모순덩어리에 불과하다. 언어 그 자체가 파라독스 덩어리인 것이다. 아무 낙서도 없는 깨끗한 벽에 “낙서금지”라는 불필요한 팻말을 걸어놓는 것과도 같은 근본무명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언어를 묘유적(妙有的)으로 긍정한다.“

나비와 황소
나비와 황소

중진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국당 조성주의 작업세계를 들여다 볼때마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강 강해’ 대목이 중첩된다. 법화경 완각전 이어 금강경 완각전을 가져 화제가 됐던 그가 이번엔 자작 한시를 전서, 예서, 행서, 초서로 까지 보여주는 전시를 28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연다. 나름 금강경의 지혜를 시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20여년간 읊어 왔던 600여수의 시중 춘시(春詩)만을 골라 보여준다. 작은 깨달음과 예술적 성향을 엿보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특히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서양화와 서예를 접목한 작품들이 눈길를 끈다. 작품 ‘전각법화경보리수’는 9m에 달하는 대작이다. 법화경 경전의 주요대목 전각으로 깨달음의 상징인 보리수 나무를 형상화하고 있다. 무필(無筆, No brush)과 무법(無法, No law)을 즐긴 작품이다. 되도록 화필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 주걱, 고무 롤러, 플라스틱 자(尺), 또는 손바닥, 발바닥 등을 사용하였으니 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캔버스 천 또한 거친 표면의 질감을 얻기 위해 대마로 짜낸 황목(荒目)을 사용하였다.

서예작품 가운데 매우 독특한 작품도 눈에 띈다. 조형적으로 구성한 판넬 작품을 비롯하여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여 처음으로 발표하는 이른바 ‘멀티 그라피(Multi-Graphy)’라는 장르의 작품이다. 여러 조각의 화면이 모여 한 화면으로 그림이 나오는 전광판 영상을 보고 영감이 떠올라 발상이 되었다 한다. 하나의 서예작품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입체적으로 진열하는 실험작품이다. 늦은 나이에 학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력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은 결국 시가 넘쳐 글씨가 되고, 글씨가 넘쳐 그림이 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은 동상이몽(同想異夢)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상 상(床)’을 ‘생각할 상(想)’로 바꿔 명명한 것이다. “나의 사상은 똑 같은데 나는 항상 다른 꿈을 꾼다. 예술세계에서는 항상 다른 꿈을 꾼다.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은 동일한데, 작가로서 늘 이상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에게 있어 ‘동상(同想)’은 곧 기본이요 근본 틀이다. ‘이몽(異夢)’은 벗어남이고 떠남이다. 그리하여 ‘수(守)·파(破)·리(離)’, 곧 ‘수(守)’는 동상(同想)이요 지킴이다. ‘리(離)’는 이몽(異夢)이요 떠남이다. 그 가운데 ‘파(破)’가 자리하니 그게 바로 이 전시의 키워드 중 하나인 ‘봄날은 간다’이다.

花春
花春

조성주 작가는 지금까지 서예전, 전각전, 음반 출반, 대붓 퍼포먼스, 캘리그라피 전시, 패션 모델, 상표 디자인 등 숱한 ‘판’을 펼쳤다. 그건 모두 그의 강한 신명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 강한 신명은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 서(書)와 화(畵)로 하나가 된다. 그 서화로 한판 신명나는 판을 벌였으니 그것이 곧 ‘동상이몽(同想異夢)’의 난장(亂場)이다.

 그동안 이상봉 패션디자이너와 협업은 물론 시니어 모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색소폰, 기타, 드럼, 키보드 등도 즐겨 연주하며 가요앨범 4집까지 출시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예, 전각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에게 영감을 주는 지엽(枝葉)일 뿐이다.

작가는 1997년에 불교 경전 ‘금강경’ 5,400자를 10여 년에 걸쳐 낙관석 인재에 모두 새겨 1997년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12년에는 ‘법화경’ 7만여 자 전문을 5톤가량의 낙관석 인재에 불화(佛畫)와 함께 새겨 펼쳐 보였다. 25m에 달하는 대구 팔공산 동화사 ‘법화경’ 완각 벽화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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