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 정병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329쪽26,000원

국어 교과서 속 고전소설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된 것일까? 지금까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던 질문에 정병설 교수(국어국문학과)가 답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을 통해 조선시대 문학 향유 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개별 작품과 작가에 집중했던 기존 소설연구와 달리 조선시대에 소설이 읽히고 판매된 전반적인 그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는 동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 서적 유통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정 교수는 “처음엔 조선 사람이 가난하고 문자 해독률(문해율)이 낮아 서적 유통이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이 가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것이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다”고 회고했다. 조선시대 인구통계와 문해율, 종이값 등에 대한 선행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통계자료나 기존연구도 정확성이 떨어졌다.

이에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편년체 역사서, 『승정원일기』, 비변사 기록 및 『만기요람』과 같은 총서와 개인의 일기를 분석해 당시의 인구수와 문해율, 종이값을 비롯해 출간 정황, 서적의 유통 수의 구체적 수치를 도출해냈다. 그는 “부정확하고 막연한 자료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재편하려 했다”며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어 비교적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기초연구를 통해 정 교수는 자신의 가설을 바꾸게 됐다. 기초연구에서 책의 가격은 임노동자 하루 임금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아주 부담스럽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문해율도 생각만큼 낮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801년 두 번에 걸쳐 열린 과거의 응시자수가 각각 10만 명, 20만 명이었다. 따라서 10만 명 이상의 한문 해독층이 있었으며 그 세 배를 웃도는 한글 해독층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서적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원인이 가난과 문맹이 될 수는 없었다.

그가 새로이 주목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었다. 조선 사회에는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심했다. 문장 한두 개를 문제 삼아 책을 유통시킨 자는 물론 소지하고 있던 사람마저 극형에 처했던 『설공찬전』* 필화(筆禍)사건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더욱이 사전검열식이 아닌 출간 후 문제가 제기되면 처벌하는 식의 서적 검압도 문제였다. 정부에서 규정집을 두고 사전 검열을 하면 책의 저자는 문제가 되는 내용을 배제하고 서술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엔 검열기준이 없어 어떤 내용을 넣고 빼야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병설 교수는 “처벌기준도 일관되지 않고 자의적이어서 책의 출간과 유통에 대해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정치적 억압이 조선시대 소설의 유통을 낙후시켰다는 게 책을 쓰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시대는 사적 출판자체가 불법이었다. 유교 경전이나 수험서처럼 이데올로기 검증이 완료된 책만이 필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유통됐다.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은 18세기 말 이후의 출판상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경직된 유통구조는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개선되기 시작했다. 전주와 서울에서 인쇄된 상업 소설인 방각본이 그 시작이었다. 방각본은 장돌뱅이를 통해 저자에서 판매되거나 세책점에서 돈을 받고 빌려주는 식으로 활발히 유통됐다. 정 교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소설집이 천 종류 가까이 출판되고 유통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정보유통의 발달에 기여한 소설혁명”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처럼 소설이 활발히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로 조선의 발달된 유통망을 들었다. 정 교수는 “19세기 후반 조선 전역에 성경과 천주교가 유례없는 속도로 보급된 것을 보면 유통 인프라가 이미 잘 구축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했다. 한글 소설을 중심으로 주로 조선 시대의 주변부 문화를 탐구해왔다. 저서로 기생의 삶과 문학을 다룬 ‘나는 기생이다-소수록 읽기’, 그림과 소설의 관계를 연구한 ‘구운몽도: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및 ‘조선의 음담패설-기이재상담 읽기’ 등이 있다. ‘한중록’과 ‘구운몽’을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논문으로는 ‘조선시대 한문과 한글의 위상과 성격에 대한 일고(一考)’ ‘조선 후기 한글 출판 성행의 매체사적 의미’ ‘무정의 근대성과 정육(情育)’ 외 다수가 있다. 한국 문화의 성격과 위상을 밝히는 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

흔히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과거의 일이 현재와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표현의 자유가 갖는 가치를 재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생산적인 논의를 막게 된다”며 “어떤 얘기라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나라가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은 조선시대를 다루지만 시대에 서려있는 ‘정치적 억압’에서 읽어낼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저자는 외압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조차 말하지 못한 전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설공찬전』: 불교 윤회 사상을 옹호하며 유교를 강조했던 조선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조선 최초 금서로 지정됐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