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경 작가 '무언가 오래 간직하고픈 것 ' 형상화
소설 '금각사' 냉온탕의 감성온도 미술로 승화시켜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독일에서 작업하는 유현경 작가의 작업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를 떠올리게 해준다.  탐미주의 문학을 미술로 형상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소설속 대목들이 스멀스멀 하나 둘 기어나오는 듯 하다. 

 "밤하늘의 달처럼 금각은 암흑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에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가냘픈 기둥의 구조가 안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나에게는 금각 그 자체도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아름다운 배처럼 여겨졌다. 금각은 수많은 밤을 노 저어왔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항해. 그리고 낮 동안 이 신비스러운 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닻을 내린 채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밤이 오면 주위의 어둠으로부터 힘을 얻어 지붕을 돛처럼 부풀려 출범하는 것이다. 나는 가느다란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연못 위를 내려다보았다. 연못은 석양을 받아, 녹슨 고대의 구리거울과도 같은 표면에, 금각의 그림자를 단정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물풀보다도 훨씬 밑에 저녁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그 저녁 하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과는 달랐다. 그것은 청명하며, 석양을 가득 받아, 아래로부터, 내부로부터, 이 지상의 세계를 통째로 삼키고 있었기에, 금각은 그 속에 검게 녹슨 거대한 순금의 닻처럼 가라앉아 있다." (금각사 중에서).

유현경 작가는 모델이나 대상을 그저 보고 그리지 않는다.  

모델이나 대상의 특정상황, 대상이나 모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적 느낌, 대기감, 대상의 아우라, 관계성 등을 통해 이입되는 것들을  캔버스에 그려나간다.

강남 갤러리나우에서 오는 7일부터 내달 5일까지 열리는 유현경의 ‘호우시절’展엔 그동안의 추상표현 인물화를 비롯해 일본 금각사를 그린 그림3점을 포함해 새로운 풍경들과 인물 신작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그림은 대상을 보고 있으되 보이지 않는 느낌과 기운, 자신의 심리상황 등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해프닝도 일어난다. 작가가 바라봐 주지 않기에 모델이 옷을 주점주섬 입고 떠나려 했던 적도 많다. 모델이 자신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서다. 그때서야 당신이 필요하다고 다시 불러세웠을 정도다. 인물의 탐미적 아우라를 담아내니 기존처럼 모델을 뚫어져라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금각사 1
금각사 1

 

금각사2
금각사2
금각사 3
금각사 3

 

“어둠은 점점 엷어지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임을 그림이 방증할 것이다. 사람의 어두운 얼굴만 보이고 풍광의 쓸쓸한 모습만 보였는데 언젠간 어둠이 더 이상 나의 관심 요소가 아니어서 그 어둠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작품 ‘금각사’가 그렇다. 역시나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다.  징그러울 정도의 노골적인 문장 구사,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단지 수단으로  감당한 지점에서의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한다. ”뜨거움은 전달 하되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으로의 은유. 이 지점이 작가가 유지해야 할 온도라고 생각하고 ‘금각사’를 마음에 담아두었다.“

내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얼굴
내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얼굴

 

소설로 드러내는 마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고 담백한 건축에 대한 찬사를 표현하고 있다. 금각사의 극한의 화려한 금장과 담백하고 절제된 건축적 표현양식이 만나는 것처럼 소설의 온도와 유현경의 직관적 감성이 만나 작품이 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어둠에서 벗어나 밝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의 작업들을 많이 보여준다. 지난해 설악에서 작업하며 자연과 가까이 한 영향이 컸다.

“인물을 보는 태도에서는 제 편에서 보던 방식에서 상대의 편에서 보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내가 보고자 하는 일부의 모습으로의 인물을 그렸다면 지금은 과거보다 상대의 모양을 듣고 보는 방식으로 그리게 되었다.”

이전의 작업에서 자신의 느낌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기억하고 싶은 과거, 대상과의 상호  관계성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소라
소라

 

“누군가를 오래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 과거를 보냈고 현재 그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는 것이 즐거운 경우에 한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좋은 텍스트이지만 아쉽게도 상대의 과거를 곁에 두고 향유하기에 개인들은 너무도 분주하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삶이기에 노년은 깊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노년이 불안한 인물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느린 걸음이 느린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안고 갈 역사가 많기를. 그 느림이 초조하지 않기를 바래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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