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서울연극제

"전쟁터의 소풍" 커튼콜 /ⓒAejin Kwoun
"전쟁터의 소풍" 커튼콜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페르난도 아라발의 오래 전 작품으로 부조리극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전쟁터의 소풍”이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진지하고 유쾌한 고민이 담겨 이상하지만 즐거운 작품으로 다듬어져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 대학로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관객과 함께 하고 있다.

홀로 참호를 지키고 있는 자뽀(김영경)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홀로 참호를 지키고 있는 자뽀(김영경)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진격! 진격! 후퇴란 없다. 후퇴는 곧 패배이자 죽음이다. 앞으로 진격!"

느닷없이 전쟁터에 소풍을 온 자뽀의 어머니 떼빵부인(이경성)과 아버지 떼빵씨(이형주)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느닷없이 전쟁터에 소풍을 온 자뽀의 어머니 떼빵부인(이경성)과 아버지 떼빵씨(이형주)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어느 전쟁터. 자뽀는 혼자 참호를 지키고 있다. 그 때 느닷없이 자뽀의 부모인 떼빵씨와 떼빵부인이 자뽀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 들고 찾아온다. 언제 전쟁이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자뽀와 부모의 만찬이 시작된다. 잠시 후 이들의 자리에 적병 제뽀가 등장하는데...

종이 위에 글로 적힌 대사와 행동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작업은 ‘글’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조리극은 리얼한 캐릭터나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는 극이기에, 연출과 배우 등 창작진 들의 작품 이해도가 완성도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한 명이라도 이해가 부족할 경우 작품을 산으로 가게 되고, 난해하다 여기는 부조리극은 더욱 난해해질 수밖에 없기에 관객들의 지루함과 어려움은 더해지게 된다.

원작에는 없는, 자뽀의 분신이라 여겨지는 칼(박시내)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원작에는 없는, 자뽀의 분신이라 여겨지는 칼(박시내)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김승철 대표는 “전쟁터의 소풍”에 원작에 없는 ‘칼’을 만들어내며 정상과 비정상, 적과 아군 등 피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며 작품을 재구성하여 연출하였으며, 배우들은 암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대사하며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박찬호 무대감독이 만들어 낸 버려지고 폐기된 오브제들의 형태와 구조들이 이뤄낸 무대, 공양제 음악감독이 불규칙한 리듬, 불협화음, 변박, 불쑥 등장하는 고음 등으로 표현해 낸 이상한 즐거움은 인물들의 은유적인 대사들과 행위들에, 살상과 공존의 경계에 익살스런 허무함을 그려낸다. 그래서 이 모두가 이뤄내는 하모니는 리얼리즘과 전혀 결이 다른 부조리 연극도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음을 선사한다.

아군과 적군의 사이에서 서로 총 한 번 제대로 쏘기를 주저하는 그들은 왜 전쟁터에 있는 것일까?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제뽀(박정인)와 자뽀(김영경) | 아군과 적군으로 대치하지만, 서로 총 한 번 제대로 쏘기를 주저하는 그들은 왜 전쟁터에 있는 것일까?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총소리와 포탄 소리가 들리는 곳만이 전쟁터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는, 정글의 이유 있는 약육강식과는 다른 질서로 약자를 안전망 바깥으로 밀어내야 안전하다 여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또한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위생병으로 나와 독특한 대사의 리듬과 움직임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위생병1(김관장)과 위생병2(정다정)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위생병으로 나와 독특한 대사의 리듬과 움직임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위생병1(김관장)과 위생병2(정다정) /ⓒ김솔(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지구 또한 인간에게서 지구를 지키려는 전쟁 중일는지도 모르겠다. 빙하를 녹게 만들고 이상 기온을 자아낸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지구의 자정 능력 한계를 넘어서 한계수치까지 넘어서려 하고 있는 지금, 숙주와 공생하며 살아가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야기하고 있지만, 오히려 covid-19는 아직은 지구의 미약한 선제공격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과거부터 질병을 ‘도덕적 형벌’이라 칭하던 인간들은 질병에 걸린 이들을 범죄자 마냥 취급하며 인간들끼리 또 다른 전쟁을 벌이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소외계층을 여전히 내버려둔 채로, 경제를 살린다며 계속해서 오염을 가속화시킴은 다음 세대에 대한 무배려일 뿐이기에 지혜로운 대책들을 함께 논의해야 할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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