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현금을 지급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급 대상자의 직업이나 수입, 재산, 교육 수준은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괜찮은 생활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이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들리는가. 기본소득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시도가 나오면 ‘퍼주기 복지’, ‘포퓰리즘’, ‘도덕적 해이’ 등 온갖 부정적인 수사들이 뒤따르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청년들에게 매달 50만원씩 주기로 한 청년수당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직권취소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살아났지만, 신청 연령과 인원을 제한하고 있고 미취업자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취업 여부나 소득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간 정책이지만, 만 24세 청년에게 지역 상품권을 준다는 한계가 있다.

[책과 삶]주 5일 근무처럼, 기본소득도 환상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공짜 돈을 받으면 근로의욕이 감소할 것이고,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헛되다’는 공격에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선진국 정부가 전쟁·군사 비용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유토피아를 공격하는 또 다른 논리인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사람들이 유급 직업을 더 갖게 될 것이며, ‘사악하다’는 주장에는 오히려 기존 복지제도가 국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치심을 안기고 있다고 응수한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인가.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이크 파버티 히스토리(make poverty history·가난을 역사로 만들자)’는 문구와 함께 기본소득 내용을 소개하는 포스터 모습.

기본소득이 최근에야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9년 8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빈곤가정 전체에 조건 없이 연 1600달러(4인가구 기준, 2016년 가치로는 1만달러)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자녀가 있는 미국 가정의 소득 아래 바닥을 까는” 법안으로, 오늘날 기본소득 개념에 가까운 시도였다. 경제학자들과 언론, 종교단체, 노동조합, 기업들이 일제히 찬성했지만, 상원에서는 부결됐다. 한편 1973년 캐나다 위니펙의 소도시 도핀에서 4년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실험을 한 결과, 근로 시간은 줄지 않았고 건강은 향상됐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인공지능(AI)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 속에 기본소득은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스위스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비록 부결됐지만, 기본소득은 스위스의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20여 곳의 지자체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실행하고 있고, 캐나다와 핀란드도 대규모로 실험에 나섰다.

이 책이 제안하는 ‘주 15시간 노동’이라는 비전 역시 뜻밖에도 ‘오래된 미래’다. 대공황이 휘몰아치던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후 인류의 최대 과제로 무한한 여가를 꼽았다. 정치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2030년이면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케인스 이전에도 카를 마르크스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이 미래에 여가가 넘쳐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기계화로 인간이 권태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다. 물론 이 모든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앗아갔고, 남은 것은 과도한 소비로 진 빚과 과로였다.

이제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이 책의 논거는 이렇다.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의료 사고나 원전 사고, 금융 위기 등 각종 재난도 막을 수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을 해결하고, 성평등, 고령화, 불평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도 뿌리 뽑을 수 있다. 다만 한꺼번에 주 15시간으로 줄일 수는 없으므로, 유연한 정년 제도, 남성 육아휴직 장려, 교육 투자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상에 다가가야 한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우리는 곳곳에서 “진보의 역설”을 겪고 있다. 경제는 성장해도 삶의 질은 오히려 나빠졌다. 절대 빈곤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인구도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일에 허우적대고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라는 독설이 뼈아프다.

이 책은 지금이야말로 ‘유토피아적 사고’가 절실한 때라고 주장한다.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제 폐지, 민주주의, 주5일 근무제 등도 한때는 판타지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과 접근법이 필요하다.

MIT대의 에스더 듀플로 교수는 빈곤 해법 연구에서 모델 중심의 기존 경제학적 접근이 아닌 무작위 비교 실험을 택했고, 현금 지급이 가장 효과적인 빈곤 퇴치 수단임을 밝혀냈다. 교육도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에 집중하기보다 노동시간을 줄여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유토피아에 다다르는 길을 가로막는 주범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복지국가조차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건드리는 데 그쳤다. 책은 특히 좌파가 소극적인 ‘언더독 사회주의’의 행태를 보이며 “희망과 진보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이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수인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7년부터 스위스 몽 펠르랭에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가다듬었고, 실천에 옮겼다.

책을 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1988년생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이다.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현금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주제의 TED 강연으로 글로벌하게 이름을 알렸다.

‘불가능한 일’을 불가피한 대안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야심 차다. 하지만 개발원조의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진국의 국경을 전면 개방하자는 주장은 엉성하게 들린다. 이주의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또는 자발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공동체는 처참히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17개국에서 번역된 이 책의 추천사에는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평등이 답이다>를 쓴 리처드 윌킨슨 등 쟁쟁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세계 석학들도 스스로를 “각성한 몽상가”로 부르는 젊은 브레흐만의 외침에 응답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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