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인생

제가 젊어 한참 여행을 다닐 때,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 가지 아치로 된 문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문은 장미꽃이 새겨져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하는 글귀가 있고, 두 번째 문은 십자가가 새겨졌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고 쓰여 있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하네요. 이 말과 같이 인생은 나그네와 같아서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럼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얼마동안 나그네와 같이 살다가 떠나간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나그네라는 뜻은 사람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에 모든 것을 두고 가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야말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천년만년 살 줄 알고 육신의 정욕(情慾)대로 방탕하며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중에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요?

톨스토이 ‘참회록(懺悔錄)'에 유명한 우화(寓話)가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광야(廣野)를 지나다가 사자가 덤벼 듭니다. 놀라서 사자를 피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마른 우물을 발견하고 급히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우물 안에는 큰 뱀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네요.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고, 우물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는 우물 안의 돌 틈에서 자라난 조그만 나무 가지에 매달립니다. 나그네는 곧 자기 생명을 잃어버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무를 쳐다보니 검은 쥐와 흰쥐 두 마리가 나뭇가지를 쏠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두 손은 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나뭇가지가 부러져 우물 밑에 있는 큰 뱀의 밥이 될 참이었지요.

그런데 나그네가 주위를 돌아보니까 그 나뭇가지의 끝에 몇 방울의 꿀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혀로 핥아 먹었습니다. 나그네는 불현 듯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마치 ‘인간이 산다는 것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그네 인생’이 참으로 기 막히는 운명에 처한 것이지요. 그럼 검은 쥐 흰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사는 ‘밤과 낮’을 의미합니다. 인생이란 한 평생을 밤과 낮 즉, 검은 쥐 흰쥐가 드나들 듯 시간이 다 지나가면 마침내 매달렸던 가지는 부러지고 인생은 끝이 난다는 것이지요.

이런 기막힌 사연이 우리 인생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도전(挑戰)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아주 달콤한 꿀을 드시고 계신가요?’ 그 꿀은 ‘젊은 날의 향기’와 인생의 성공으로 인한 ‘부(富)와 권력(權力)’ ‘행복한 가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 번쩍이는 새 차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제는 검은 쥐, 흰쥐와 고개를 쳐든 독사를 기억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산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연장선(延長線)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는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은 어리석게도 검은 쥐와 흰쥐가 쏠고 있는 나무가 언젠가는 부러지면 종말(終末)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달콤한 꿀을 탐하며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누구나 죽으면 육신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돌아갑니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혼(靈魂)은 영원히 육도(六道 : 天上·人間·修羅·畜生· 餓鬼·地獄)의 수레바퀴를 타고 돌고 도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나그네 인생은 다시 태어 날 때, '선(善)을 행하며 산 인생은 좋은 과보를 받아 천상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고, 악(惡)을 행하고 산 인생은 나머지 수라, 축생, 아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인 것입니다.

선에도 씨가 있고 악에도 씨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 중에 지은 부정당한 낙과 고는 일체가 죄의 씨가 되고, 일생 중에 지은 정당한 고(苦)와 낙(樂)은 일체가 복의 씨가 됩니다. 우리가 정말 잘 사는 것은 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본래 선한 사람도 없고,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본래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그네 인생! 무슨 씨를 심고, 가꾸며, 어떤 열매를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닐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5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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