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맞아 31년 전 MBC대구방송 특별기획 전교조 1년을 돌아보며...

[뉴스프리존,대구=문홍주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맞아 박상봉 시인은 31년 전을 회상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1주년 맞은 해 겪은 가슴 아픈 상처로 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선생이 노동잔 줄은 / 해고되고 나서 알았다 // 선생이 이 땅에선 스승이 아닌 줄은 / 개 끌려가듯 끌려간 교원노조 여선생의 머리카락에 뒤엉킨 피를 보고 알았다 // 선생이 선생이 아닌 줄은 / 수 천의 목이 잘려나가도 끄떡도 않는 / 이 철면피한 세상을 보고 처음 알았다 // 1989년 전교조 대구지부의 이름으로 발간된 해직교사 교육시집 『통일의 꽃씨 민주의 불씨』에 실린 배창환 시인의 시「각성」전문이다.

배창환 시인은 1980년대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전교조 결성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전교조의 풀뿌리 역할을 도맡았다.  10년 간 해직교사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시간과 피나게 싸우면서’, ‘나도, 아이들도 모두 진귀한 선물임을 알고’(배창환 시인의 시「선물」에서 인용) 이땅의 학생들과 참교육을 위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살아온 시인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전교조 1주년을 맞은 해에 겪은 일화 한가지를 들려드릴까 한다. 작년이 전교조 결성 30주년이었으니, 바야흐로 31년 전의 에피소드가 되겠다.

내가 대구mbc 구성작가로 일하고 있을 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뭔가 뜻깊은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내야할텐데...

담당 공 PD와 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내용으로 특집방송을 내보내고 싶었지만 노도와 같은 민주화 물결 속에서도 군사정권이 시퍼렇게 눈뜨고 살아있을 때라 공영방송에서 아직은 5.18을 정면으로 다룰만한 시대 분위기가 아니라는 편성제작국장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다루지는 못하고 대신「전교조 1년을 돌아본다」는 제목으로 특집 제작에 들어갔다. 방송국 차원에서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 공 PD와 나랑 카메라부장 하고만 은밀하게 모의한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배창환 시인 등 퇴직교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방송 출연을 설득하고, 적절한 촬영장소를 물색하며 바쁘게 다닐 때였는데 “국장님이 눈치 채고 중단하기를 종용한다”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중이라고 공 PD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광주나 전라도 쪽 문인들과 지인을 만날 때마다 광주항쟁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무관심과 비겁함을 꼬집고, 심지어는 가해자라는 질타까지 받아온지라 “대구도 이제는 뭔가를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방송이 앞장서야한다”고 말해주었다.

공 PD는 결심했다는 듯이 “조만간 국장님과 식사자리가 있을 터인데 그때도 작가 입장에서 전교조에 대한 방송의 필요성을 말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 국장이 걱정하지 않도록 말하겠다”고 대답해주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서 국장과 점심식사를 같이 한 것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내가 무슨 말로 설득을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쨋든 프로그램 제작은 중단 없이 진행되었고 아직도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에 전국 최초로 전교조를 조명한 특집방송을 그해 5월 18일 저녁시간에 내보려고 막바지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정보기관 관계자가 방송국으로 들이닥쳤다. 방송하는 날이 5.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었으므로 무슨 불온한 내용이라도 방영하지 않을까? 감찰하러 나온 것이다. 다행히 지혜로운 공 PD가 다른 녹화테잎을 보여주는 재치를 발휘해 그대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빅 히트였다. 방송을 본 많은 시청자들의 전화가 편성제작국으로 쇄도하였고 반응도 매우 좋았다. “내용도 시의적절하고 구성도 짜임새 있게 잘 되었다”는 평가와 “전교조의 현실을 제대로 알린 뛰어난 역작”이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강제 퇴직당한 교사들이 신문배달이나 문구점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이야기, 퇴직교사들이 출근투쟁을 벌이고 학생들이 보고싶어 닫힌 교문 앞을 서성거리는 모습 등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감동을 주었다.

전교조에서 만든 연극 공연 실황을 롱테이크(long take : 하나의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 풀샷(full shot : 카메라로 인물이나 물체를 찍을 때에 그 전체 모습이 모두 나오도록 찍는 일)으로 가감없이 보여주고, 선생님들이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진솔하게 담아낸 감동적인 시를 줌업(zoom up)하여 극적 효과가 돋보였다. 굳게 닫힌 교문을 엔딩장면으로 마지막 자막에 ‘구성작가 박상봉’이라고 내 이름 석자가 뜰 때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전교조 1년을 돌아본다」방송은 지금껏 내가 참여한 여러 방송프로와 영화들, 내가 생산한 어떤 문학작품 보다 더 생각이 많이 나고, 내가 한 다른 어떤 일보다 애착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추억 속의 명장면이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방송국에 난리가 났다. 편성국 전화기에 북새통이 났고, 사무실은 마치 호떡집에 불 난 것 같았다. “무슨 그따위 내용을 방송하냐”며  “아이들이 보면 어떡할 거냐”는 학부형들의 항의전화가 숨 쉴 겨를도 없이 줄을 이었다.

방송국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일은 뒷전이고 다들 전화 받는데 시달려야 했으니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국장은 전화기를 붙들고 고개 숙이며 연신 “죄송합니다”는 사과의 말만 연발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전화만 해도 한시간이 되기 전에 50통이 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화를 받아보면 사람마다 하는 말이 앵무새처럼 똑 같았다.

나는 누가 시켜서 하는 전화라는 느낌이 들어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되, “방송을 끝까지 보셨는지?” 물어보고 “ 방송을 보고 퇴직당한 선생님들의 어려운 형편과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셨다면 다른 학부형이나 아이들한테도 잘 알려주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장은 전화 받다 지쳐 “하지말라는 걸 고집하더니 결국 말썽 일으켰다”는 식으로 내게 뭐라고 투덜댔다. 나는 국장에게 “항의 전화도 있고 격려 전화도 오는데 그동안 방송국에서 시청자들의 전화를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 있느냐”고 따지면서 “전화가 오면 무조건 미안하다고 두 손 빌지 마시고 전교조 실태에 대해 잘 설명해주면 수긍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에 국장은 화를 벌컥 내며 “전화 혼자 다 받으시라”고 소리 지르고 훽 나가버렸다. 그 사건 이후 결국 나는 모든 죄를 혼자 다 뒤집어 쓰고 방송국에서 짤리고 말았다.

공 PD는 갑자기 일본 취재 간다며 한달 일정으로 출국하였고, 홀로 남은 나는 주급을 받는 입장인데 더 이상 일도 안주고 따돌리며 등 떠미는 대로 내 발로 걸어서 방송국을 나와 버렸다. 공 PD가 일본 나가면서 “돌아올 때까지 꼭 붙어있으라”고 말해주고 떠났는데, 그 당시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남겼는지, 깊이 따져 보지 않고 혼자 도망가는 게 미안해서 그랬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나한테는 아픈 기억이고 되돌려보고 싶지않은 부분이 있기도 해서 이런 이야기는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한다. 자칫 잘못 말하면 좁은 지역에서 다들 알만한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혼자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참고 또 참고 살았다.글을 쓰다 보니 잊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로 계속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MBC대구방송 특별기획 「전교조 1년을 돌아본다」구성작가로 활동했던 박상봉 시인 / C = 문홍주 기자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MBC대구방송 특별기획 「전교조 1년을 돌아본다」구성작가로 활동했던 박상봉 시인 / C = 문홍주 기자

박상봉 시인의 약력 1958년 경기도 양주 출생. 1981년「시문학」추천 후 박기영 시인, 안도현 시인,  장정일 시인 등과 동인지「國詩」를 통해 시(詩) 발표 시작.

1985년~1988년「문화공간 시인」경영 「시인과 독자의 만남」60회 이상 기획 운영. 1995년「문학정신」가을호 '쎄씨를 읽는 남자'외 2편 발표로 중앙문단 진출,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0년간 절필.

2007년 개인시집「카페 물땡땡」(만인사) 출간. 구미「이노카페」점장, 지역문화혁신활동 주도. 중앙일보 학생중앙문학상, 공주사대신문 문학상, 제3회 계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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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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