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5·18 정신 반드시 담겨야 한다.. 폄훼.왜곡 단호한 대응"
"5·18 규명의 목적, 책임자 처벌 아닌 화해- 역사 올바로 기록해 통합의 길 찾자는 것"
"생각나는 사람 노무현, 광주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오전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기념식을 찾은 것은 취임 첫해인 2017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헬기사격 등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이제라도 용기 내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진상 규명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며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고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이 5·18 40주년을 맞아 가진 광주MBC와의 인터뷰에서 5·18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5·18 역사 왜곡과 폄훼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고 개헌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수록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5·18 정신의 헌법 등재를 꾸준히 밝혔지만 21대 총선이 끝난 지금,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취임 후 2017년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반드시 지키겠다”라며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2018년 3월 이 같은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에도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다”라고 했다.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은 2020년에는 더욱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이념)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라고 밝혔다. 개헌 언급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이후 4개월여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현재의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에 의해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 민주운동의 이름을 계승하는 것으로 표현돼 있는데, 4·19혁명 이후에 장기간 군사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4·19혁명만 가지고는 민주화운동의 어떤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것이 다시 강력하게 표출된 것이 부마 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이었고 그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6월 민주항쟁이었다”라며 “그 미완된 부분이 다시 촛불혁명으로 표출이 되면서 오늘의 정부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은 시기상으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어서 아직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이 이르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5·18 민주운동과 6월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렇게 돼야만 5·18이나 또 6월항쟁의 성격을 놓고 국민들 간에 동의가 이루어지면서 국민적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전두환 군부독재에 처절히 맞섰던 그 날의 투쟁은 이제 우리 현대사의 찬란한 업적으로 기록됐지만, 아직도 여전히 풀어야 할 미완의 숙제도 많다. 문 대통령이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한다며, 최근 활동을 시작한 5·18 진상조사위원회에 힘을 싣기도 했다. 5·18 당시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도 재확인했다.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진실 은폐·왜곡 공작 실상까지 모두 규명 대상으로 규정했다. 꼭 법적 처벌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화해하고 통합의 길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거다.

또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이지만 민주주의의 그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폄훼에 대해서까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내는 것도 그런 폄훼나 왜곡을 더 이상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법적으로 다 정리된 사안을 지금까지도 왜곡하고 폄훼하는 발언들이 있고, 그것을 일부 정치권에서 조차도 그런 주장들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확대 재생산 시켜지는 일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라며 “이런 식의 고리를 끊어야 우리 사회가 보다 통합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고, 우리 정치도 보다 통합적인 정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다블아 19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서울역 대회군’ 결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라며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하고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매일 서울역에 모여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집회를 함으로써 군이 투입되는 빌미를 만들어 주고는 결국 결정적인 시기에는 퇴각을 하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정말 외롭게 계엄군하고 맞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이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그것을 늘 가지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런 점에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우리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됐다”라고 했다.

또 5·18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으며 “그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라며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 한 그런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다”라고 한평생 동지로 조우했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라며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돼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 큰 부채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 부산 카톨릭 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라며 "그때 비로서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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