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일 작가 당진문예의전당 ‘올해의 작가’전

민화와 무속화 등 기복신앙 신명으로 풀어내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우리문화의 원초적 생명력은 하위문화에 있다. 그 에너지로 컨템포러리 한국화를 이끌어 내고 싶다”

5월 29일부터 6월 11일까지 당진문예의전당에서 ‘2020 당진올해의작가’‘전을 갖는 이강일 작가의 작업 화두다. 민화,무속화,기복신앙은 물론, 더 나아가 오래도록 삶과 하나가 됐던 기층 종교인 불교문화의 에너지까지 버무려 당대 미술의 죄표로 삼고자 한다.

“무라카미 다케시가 민간신앙과 설화에 뿌리를 둔 일본화와 일본의 만화, 캐릭터를 살려 독특한 컨템포러리 일본 팝으로 이끌었던다. 민족의 전통에서 독창성을 찾은 것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단초가 됐다.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법고창신은 한국미술에선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무라카미 다케시는 일명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창조한 작가다. 하위 서브컬쳐 중의 하나였던 애니메이션과 일본 망가, 오타쿠 문화를 컨템포러리 아트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저급한 것’ 또는 하위문화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던 요소들을 순수예술로 끌여들었던 것이다. 슈퍼플랫은 사회적 계급을 기반으로 한 취향의 차이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한다. 전후 일본사회 변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급미술과 대중상업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사적 평가기준의 평등함을 추구하는 의미도 있다.

“문화와 취향의 경계 붕괴에서 새로움이 태어나게 된다. 한국화엔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양하는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화가 죽어야 한국화가 살 수 있다.”

이강일 작가는 그 과정을 아리랑이 모든 것을 흥으로 승화시킨 모습에서 찾는다. 작업방식도 프레스코 습식기법과 동양의 종이 습식기법이 어우러진다. 결과적으론 서양의 캔버스 유화기법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울림의 미학이다.

‘작가는 자신의 거주지인 당진의 풍경과 그곳의 유적지 내지는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또한 우리 그림에 늘상 등장하는 소나무나 바위를 그리는가 하면 조선시대 민화나 꼭두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번안해내고 있다. 그 모든 대상들은 그이의 개성으로 가득한 조형적인 번역에 의해 환생한다.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 이미지이자 자연 풍경이며 그것들이 거느린 모든 것들이 엉켜서 꿈틀거린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들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며 그것들을 색채와 붓질(선)로 하나가 되어 있다. 기존의 이미지들이자 사진이나 도판에 의지해 그려진 그림은 그 대상 안에서 작가의 안목에 의해 포착된 특별한 조형의 체계이자 숨길 수 없는 우리 조상들의, 그 천진하고 따뜻한 마음의 공력으로 빚어낸 선이나 색채가 지닌 극진함에 대한 찬사와도 같다. 따라서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다시 보게 되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회화로 환생했을 때의 매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이강일의 그림은 자신의 감각으로 길어 올린 모든 대상에서 빛나는 조형의 아름다움과 나름의 엄정한 법칙들을 발견하고 이를 다시 온전하게 구현하는 작업인 듯하다.’ (박영택 평론가)

작가는 자신의 작업여정을 한 마디로 ‘나의 길 어리랑’이라 했다. 대학원시절 80년대 한참 모더니즘의 추상계열이 판을 칠 때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며 많은 조형실험을 했다. 값진 시간이었으며 훗날 당시의 경험이 재료와 화면구성에 큰 힘이 되었다. 서울 구산동 작업실시절 손장섭 선생님과 2년 넘게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형상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때 전통에 대한 관심과 특히 민화에 대한 조형시도는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문제는 민화에 등장하는 소나무가 제일 큰 장애물이었다. 신림동 시절은 대학 시간강사시절인데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모더니즘과 민중의 치열한 대립은 더욱 혼돈의 시간이었다. 민중은 전남대 졸업반 때 광주항쟁을 직접 경험했기에 정서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작품에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작업실 뒷 편 산에 올라 못생긴 리기다소나무에서 민화의 소나무와 비교해 보기도 하였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소나무 그대로를 시도해보는 것인데 어쨌든 금호미술관 초대전에서 반응이 좋아 소나무작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후 모교 대학연구소장학금으로 미국에서 크레딧을 주는 교수도 하였다. 미국생활은 나의 모든 것을 지우기였는데 그야말로 미국식 정서로 무장하였지만 돌아와서 지금의 대학에 재직하면서 목포인근의 소나무를 줄기차게 그려대면서 나의 본래의 뿌리의 정서를 회복하였다. 가끔씩 전시회를 했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미뤄오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내가 숙명적 인연을 가지고 있던 프래스코 습성기법을 발전시켜 학생들에게 환경미술기법을 가르쳐왔고 일정부분 성과도 있었다. 그것은 나의 그림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것을 앞으로 활용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프래스코는 다루기 힘든 재료이지만 성질을 알게 되면 동양의 종이기법과 서양의 켄버스 위에 유화기법을 드나들 수 있다. 어쨌든 이제 학생들을 실험삼아 감이 잡힌다. 앞으로 기대가 되어진다. 또 한편으로 작품의 장애물은 기법과 재료 그리고 경제적인 환경이 필수적이지만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즉 철학의 문제이다. 철학이 부족하면 내경험으로는 중간에 지칠 수 있다. 그런데 기존의 많은 철학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지만 모든 게 모순 없이 떨어지는 철학은 만나기 쉽지 않다. 때문에 나는 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제 나름대로 그림에 적용할 만한 나의 지침은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듯하다. 확신은 올바른 감성 즉 심정이다. 이것으로 무장한 그림을 나는 찾고 있으며 세련된 선이 아닌 나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선 이것을 위해서 크로키만 줄기차게 해 왔다. 그 선이 바로 못생긴 마음에서 나온 겸손한 민화와 같은 선이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은 치열한 현실의 고발이 아니라 따듯하게 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그런 그림이 나에게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린다. 이것은 우리의 한의 정서를 흥으로 승화시킨 아리랑이라는 명제와 어울리는 그런 아름다움의 철학이 나의 지금 생각이다. 나는 오랜 공백을 통해서 알게 된 생각들 이제 이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아리랑고개를 넘어왔고 넘어가듯 이웃과 사랑하며 따뜻한 시선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민화 속 소나무와 바위돌이 비로소 그림 속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듯하다.

이강일 작가에게 한국적 정서에서 건져올린 컨템포러리 한국화를 기대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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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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