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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상봉 시인의 문학추억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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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상봉 시인의 문학추억여행3
“추깨이(축구)는 되지 마라” 할아버지의 훈시 그리고 노무현과 나(3/1)
  • 문홍주 기자
  • 승인 2020.05.23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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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대통령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으며 들판을 바라보고 넉넉한 웃음으로 기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참여정부 대통령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으며 들판을 바라보고 넉넉한 웃음으로 기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강원도 화천 시골마을에 살았다. 그 시기 아버지가 대구로 전근을 오게 되어 가족들 모두 대구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대명동 영선시장 부근이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대구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에 나를 입학 시키려고 부단히 애썼다.

결국 교대부속초교 학기 중 전학생을 못받는다해서 멀리 명덕로타리 부근에 있는 명덕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됐다 가까운 곳에 영선초등학교가 있긴 했으나, 신설 된지 1년 밖에 안 된 학교라 못미더워서 좀 멀리 보낸 것 같다. 5학년 때 학군제가 생기게 되어 다시 영선초등학교로 강제 전학했다

거기서 나를 처음으로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김상윤 친구를 만났다.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했다 그와 나의 인연의 실타래는 애초부터 매우 질긴 소재로 만들어진 듯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들은 할아버지의 훈시 말씀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추깨이는 되지마라.”아홉살에 강원도 화천이라는 산골동네에서 대구로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드렸을 때 내게 들려주신 첫 훈시 말씀이다 나는 “추깨이가 도대체 뭐지?”하고 궁금해 하다 아버지한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하는 말씀이 “이런 추깨이 같은 놈 축구도 모리나?”하시는 거였다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대충 ‘축구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착하지만 어린 시절에 더 착했던 나는 그날부터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철저하게 축구공을 피해 다녔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차고 뛰어놀 때 나는 뒷짐 지고 서서 구경만 했다.

사실 나는 축구를 엄청 좋아한다 빅게임이 벌어지면,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축구대회 같은 큰 경기가 있는 날엔 몇 달 전부터 상대팀을 분석하고 원톱으로 할지 두 톱으로 할지 4 3 3으로 포메이션을 짤지 4 1 4 1로 할지, 선수 포지셔닝을 종이에 그려가면서 혼자 전략전술을 구상해보기도 할 정도다 요즘엔 코로나19로 축구경기가 없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손흥민 때문에 영국 프리미어의 토트넘 경기를 빠짐없이 보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토드넘 경기를 챙겨보다 보니 상대팀의 전력도 살펴봐야 하는지라 이윽고 프리미어리그 전경기를 지켜보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축구공을 한 번도 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 최강 핸드볼 영선국민학교로 전학 와서 핸드볼부로 뽑혔을 때 이야기다.

어느 날 핸드볼 자질을 테스트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핸드볼 공을 손으로 튕기며 드리블(Dribble)해 가다가 스탭이 엉켜 공을 발로 걷어차 골망을 흔들고 말았다. 그것이 딱 한번 발로 공을 차본 유일한 경험이다. 그날의 비웃음소리 때문에 한없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축구를 절대로 하지 않았는데 “추깨이 같은 놈”이란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추깨이가 되지 말아라”는 할아버지의 훈시를 “축구하지 말아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나는 축구란 말이 운동경기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놈’이라는 다른 뜻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추깨이 같은 놈’이란 말을 자주 들어도 쌀 정도로 축구라는 말을 착각한 나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놈’이었던 것이다. 나는 미운 일곱 살에 강물에 빠져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작은 형과 강가에 놀러갔다가 생긴 일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련된 자작시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미운 일곱 살 // 박상봉 // 미운 일곱 살 물에 빠졌다 // 어느 여름 날 더위 씻으러 물가 갔다가 / 헤엄도 못 치는 기 멱 감으러 물 안 들어갔다가 / 바닥모를 물 아래로 발을 내려놓았다 // 멀리서 형아의 울부짖는 몸짓 / 눈앞에서 금방 나타났다 지워지고 / 발이 닿지 않는 물의 바닥 / 세상이 물 바깥으로 점점 밀려났다 // 온갖 슬픔과 기쁜 일 / 물거품 일었다 꺼지고 / 물속은 푸른 빛 하나 없이 검으나 희었다 // 죽음이란 느닷없이 찾아오는 손님 같은 것 / 질긴 밧줄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는 / 아무리 발버둥이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절벽 // 오래 전에 나는 죽었으나 / 죽은 몸으로 반세기를 더 살고 있다 /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 물속인지 물 바깥인지 잘 모르겠다 // 미운 일곱 살에 지치고 뛰어놀던/ 푸른 초장은 지금 어디에 있나? //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다 / 물 위에 남은 것은 자색 옷을 입었다 / 언제나 하늘은, 높이 떠받들려진 하늘은 //

백옥 같은 말씀이다 물에 빠지면 서너 번 꼬르륵 거리며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서너 번 그러다가 죽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대여섯 번은 더 오르락 내리락 거리다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에 가물거리는 한 가닥 의식이 남아있을 때, 엄청나게 커다란 파란색 손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환상을 보았다

나는 한참만에야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옆에서 “아이고, 상봉이 죽었다”며 크게 소리 내어 통곡하는 작은 형이 보였다 작은 형은 동생이 살아난 것을 너무 기뻐하며, 종이로 접은 딱지와 온갖 보배구슬과 애지중지 아끼던 보물 상자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면서 “집에 가면 엄마한테 절대로 이야기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작은 형과 약속한대로 집에 가서 물에 빠진 사실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응급처치를 제때 받지 못해 폐로 흡인된 물로 인해 폐 손상이 왔을 터이고, 이목구비에 스며든 물로 인해 심한 축농증과 만성 중이염을 앓게 됐다. 나는 초등학교시절부터 가을철이 되면 중이염이 도져 이비인후과에 자주 들락거렸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말기도 잘못 알아듣는데다가 강원도 촌놈이 경상도 사투리가 무슨 뜻인지 해독을 못했으니, 당연히 ‘추깨이’가 되었던 것이다.

민자당 3당 밀실합당에 "이의 있습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1991년 민자당 3당 밀실야합에 "이의 있습니다"며 3당합당에 문제를 제기하는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 어느 날 나를 쏙 빼닮은 ‘추깨이’가 이 세상에 또 한사람 있다는 기쁜 사실을 알게 됐다. ‘바보 노짱’이라고 불리는 그는 내게 큰 희망을 주었다

‘추깨이’로 산다는 것이 비록 무수한 놀림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지만, 용기 있고 정의롭고 진정성이 넘치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바보 노무현’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비록 짧은 만남으로 아쉽기 그지없지만 ‘바보 노짱’은 내게 큰 희망과 교훈을 주고 간 사람이다. 그가 홀연히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이듬해의 일이었다. 내게 사람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 흘려본 기억은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 한 번, 또 그 바보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한 번, 그렇게 딱 두 번 뿐이다. 아버지도 없고 ‘바보 노짱’도 없는 빈들에 노란 바람개비만 돌아가는 쓸쓸한 봄날의 가운데 서 있었다

‘바보 노짱’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 사는 사회,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물결처럼 또 밀려올 것으로 믿는다. 그 첫 물결, 첫 파도가 비록 가고 싶은 데까지 미치지 못했지만 멈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 다른 물결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5월 23일은 ‘바보 노짱’ 11주기다. 그를 생각하면 이 시(詩)가 떠오른다.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 꽃잎처럼 흘러 흘러 / 그대 잘 가라 //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 산을 입에 물고 나는 / 눈물의 작은 새여 / 뒤돌아보지 말고 / 그대 잘 가라 //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 꽃잎처럼 흘러 흘러 / 그대 잘 가라 //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 산을 입에 물고 나는 / 눈물의 작은 새여 / 뒤돌아보지 말고 / 그대 잘 가라 / 그대 잘 가라 / 그대 잘 가라 //

정호승 시인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는 노무현 10주기 추도식에 김광석의 노래로 불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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