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초(同心草)

학창시절 가곡 ‘동심초(同心草)’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멜랑꼴리에 빠져 잘 부르지도 못하는 이 가곡 동심초를 소리 높여 부르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세상의 하고 많은 노랫말 중에 어디 사연이 없는 노랫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동심초의 노랫말처럼 우리들의 애간장을 녹여주는 노래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심초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애절함에 공감을 하는 우리 가곡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인이 쓴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이려니 그렇게 생각들을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소월(素月)의 스승이라는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역시(譯詩)이고 작곡자는 김성태(金聖泰)로 되어 있습니다.

원작(原作) 시(詩)는 무려 천여 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 당(唐)나라 때의 설도(薛濤 : 768~832) 라는 명기(名妓)이자 여류 시인이 ‘춘망사(春望詞)’라는 제목으로 지은 5언 절구 4수의 짧지 않은 시입니다. 이 중 가곡 ‘동심초’ 가사 중 일절은 이 시의 4수 중. 세 번째 수를 번역한 것입니다.

                <춘망사(春望詞)>
花開不同賞(화개불동상) : 꽃 피어 화사한데 함께 할 이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불동비) : 꽃 져서 쓸쓸한데 함께 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 무어라 그대는 어드메 있어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 꽃 피고 질 때마다 그리워하나

攬草結同心(남초결동심) : 풀 뜯어 맘과 맘을 매듭지어서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 날 아실 그님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 그리워 타는 마음 잦아들 적에

春鳥復哀吟(춘조부애음) : 다시 또 애달피 봄새가 우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 가지마다 피어난 꽃 어찌 보려나

煩作兩相思(번작량상사) : 꽃잎마다 그리움 고이 쌓이네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 아침마다 거울에 떨구는 눈물

春風知不知(춘풍지불지) : 이 마음을 봄바람은 알까

어떻습니까?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천년도 훨씬 더 이전에 살았던 한 여인의 글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중, 서로 그리워하는 연인을 두고 지은 글이라 해도 그 애절함은 정서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모두 바뀌어도 사람의 본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4대 여류시인 중 한사람인 설도와 우리나라의 황진이와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억압받던 시대의 여성입니다. 기생이라는 큰 공통점 외에 기녀이면서도 나름대로 절개를 지키며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많은 작품을 남긴 것 등이 그렇습니다.

이 시를 지은 ‘설도’는 지금 중국 산시 성 서안(西安) 출신으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관리인 설운의 외동딸로 어릴 적부터 매우 총명했다고 합니다. 설도의 아버지 설운은 성품이 곧고 바른 소리를 잘 하다가 사천 성 성도로 좌천되었고, 설도가 14세 때 아버지가 죽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가기(歌妓)로 팔려 갔습니다.

설도는 음률과 시, 서예 등에 출중하게 뛰어 났으며 미모까지 겸비하였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많은 시를 남겼는데 현재 약 90 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천 성 안무사(按撫使 :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인 위고란 인사가 술자리에 그녀를 불러 시를 짓게 하고서, 그녀가 지은 시에 감탄한 나머지 ‘여교서(女校書)’란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후, ‘교서(校書)’란 명칭이 훗날 기생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설도는 자기보다 열한 살이나 연하인, 당시 명성이 자자한 유부남이고 관직이 감찰어사인 원진이란 사람이 자기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하고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원진과의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 원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맙니다.

설도는 주위에서 많은 청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원진만을 생각하고 독신으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사랑인가요?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잊을 수 없는 그런 사랑, 우리 언제 다시 해 볼 수 있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5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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