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친일행위자 현충원 파묘 추진.. 24일 국립서울현충원서 첫 탐방행사
이수진 "현충원서 친일파 묘 파내야".. 조성은 "반인륜적 부관참시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수진 당선자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힌 친일파들의 묘역을 파묘(破墓)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24일 어린이들과 현충원에서 운암 김성숙 선생 묘를 참배한 이수진 민주당 당선인과 김병기 의원. 이수진 페이스북
지난 24일 어린이들과 현충원에서 운암 김성숙 선생 묘를 참배한 이수진 민주당 당선인과 김병기 의원. 이수진 페이스북

김병기 의원은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24일 개최한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 행사에서 "지금까지 묻힌 자들도 문제지만, 앞으로 예를 들면 백선엽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라며 "파묘 문제를 법으로 매듭짓지 않으면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가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주제로 현충원 탐방사업을 개최한 것으로 이번 탐방은 서울과 대전에서 모두 5회에 걸쳐 열린다.

첫 탐방일인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이 있는 동작구가 지역구인 김병기 의원(서울 동작구갑)과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구을)이 참석했다.

기념사업회는 또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을) 등도 같이 주축이 돼 21대 국회에서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반민족행위자 묘지를 파내려한다"라고 밝혔다.

이수진 당선자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년까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친일파 파묘’ 법률안이 통과가 안 됐다”라며 “현충원에 와보니 친일파 묘역을 파묘하는 법률안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이수진 당선자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병기 의원, 어린이들과 행사에 참석한 사진을 게시하고 '독립지사 운암 김성숙 선생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우리 보배들, 우리 아이들과 함께 현충원에서, 독립운동하신 분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운암 김성숙 선생님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라며 "항일의 역사를 배우겠다며 까만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너무 사랑스럽다! 희망이 희망이ᆢ"라고 기쁜 마음을 표했다.

이 당선인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좋은 터에 친일파 묘역이 2개나 있다고 하는데, 상징적인 측면에서 그 2개라도 파내야 한다"라며 "20대 국회 때 이 부분에 신경썼던 분들과 같이 입법을 준비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20대 국회에는 국가보훈처장 또는 국방부 장관에게 ‘이장 요구’ 권한을 부여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폐기됐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사 중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은 11명이다.

김 의원과 이 당선자의 이같은 발언에 조성은 미래통합당 청년비대위원이 조선시대 사화 당시 ‘부관참시’가 연상된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조선일보를 통해 “자칫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파묘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라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하는 이런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

운암(雲巖) 김성숙(1898~1969) 선생은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운동 당시 봉선사 승려(법명 태허)의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돼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조직인 의열단에서 지도위원으로 활동한 데 이어 1930년대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를 파트너로 하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해 선전부장을 맡았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내무차장,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가족과 동지들. 가운데 김성숙 선생과 부인 두군혜 여사. 사진/ 운암 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가족과 동지들. 가운데 김성숙 선생과 부인 두군혜 여사. 사진/ 운암 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말년에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던 선생은 혁신계 동료들이 '비나 피하라'고 마련해준 서울 구의동의 11평짜리 집 '피우정'에 머물다 1969년 4월12일 숨을 거뒀다. 기관지염으로 고통 받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병원 치료를 제대로 못 받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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