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 자에 담긴 의미

참 한문(漢文)은 어렵습니다. 요즘 저에게 중국의 어느 교당 교무님께서 짧은 법문을 보내오시는데, 우리가 아는 한문이 아니고 간자(間字) 체입니다. 그런데 그 간단하게 고쳤다는 간자체조차 읽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의 세대만 해도 학교에서 한문공부를 어느 정도했기에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한문을 거의 안 배우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도통 한문을 이해하기란 지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말 중에 한문에서 비롯된 글자가 많으므로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한문은 한(漢)대 이후 점차 구어(口語)와 구분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唐)나라 이후로 구어를 반영한 백화문 문헌과 한문으로 지어진 고문(古文) 문헌은 상당한 괴리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한문이 입말과 거리가 멀어진 후에는, 입말로 사용된다는 것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순수한 의미로서의 서면 어(書面語)가 되었기 때문에, 한문은 아무리 중국인이라 해도 잘 알 수 없는 글자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문이 후세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19세기 말에 유입된 수많은 서구 개념들이 한문으로부터 유래한 어휘들로 번역되었으며, 이러한 어휘가 다시 동아시아 사회에서 공유되는 등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덕에 한국어의 어휘 중 반수 이상이 이러한 한문의 어휘로부터 유래한 한자어들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중국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한자(漢字)는 15세기 은허(殷墟)에서 갑골문자로 출토된 이래, 현재 50,000여자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중국에서 현재 통용되는 한자는 5,000여자 정도라 하네요. 그 한자가 생성된 것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 한 예로 그 5,000여자 중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글자인 ‘친(親)’자에 얽힌 이야기를 전합니다. 옛날 옛적 어떤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멀리 볼 일을 보러 가면서 저녁 다섯 시에는 꼭 돌아온다고 약조하였지요.

그런데 다섯 시 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여섯시가 되었는데도 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왜 안 돌아올까. 걱정이 태산 같아서 동구 앞 까지 나가 보았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지요.

아들이 오는 것을 멀리까지 보려면 높은 데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아들이 오는가 하고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았고 마침내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성스런 광경을 글자로 표시한 것이 친(親) 자입니다.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見] 있다.」 이 3자가 합하여서 친(親)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 오기를 바라다보는 부모님의 지극한 마음! 그것이 바로 친(親)라는 것이지요.

‘친(親)’은 ‘어버이 친’ 자입니다. 어머니(母親), 아버지(父親), 어버이는 다정하고 사랑이 많습니다. 어버이는 나와 제일 가까운 분입니다. 그래서 친구(親舊), 친절(親切), 친밀(親密), 친목(親睦), 친화(親和), 친애(親愛), 친숙(親熟), 친근(親近)이란 낱말이 생겼습니다. 또 절친(切親)이니 간친(墾親)이니 하는 다정한 말도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친(親)’자 밑에 붙은 말 중에 나쁜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 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인간관계에 필시 있어야 할 기본원리, 근본감정은 ‘친(親)’이 아닐까요? 이 글자는 우리글에도 녹아들어 ‘친한 사이’. ‘친어머니’ ‘친아버지’ 등으로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이 글자의 요체(要諦)는 ‘계산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되기 위한 전제가 아닐까요? 요즘 세상이 너무 삭막합니다. 그건 아마 사회를 맑고 밝고 훈훈하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서로 물어뜯기만 하는 정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이 ‘친’자와 같이 사이가 없는 관계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떻습니까?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문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어렵고 난해하다는 한문을 즐겁게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실생활에 쓰이는 상용한자, 우리의 속담과 격언, 그리고 시와 문장을 이해하려면 간단한 한자 정도는 공부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선현들의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한문을 모르면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더욱이 원래 한문은 우리들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글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우리가 유식해지려면 쉬운 한문 정도는 공부해 두어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5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