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여자 사람 친구 조연희 시인과 『야매 미장원에서』

대구 동구 금호강변로 샛강 앞 나무벤치에서 만난 조연희 시인(왼쪽) 과 필자(오른쪽)
대구 동구 금호강변로 샛강 앞 나무벤치에서 만난 조연희 시인(왼쪽) 과 필자(오른쪽)

[뉴스프리존=박상봉 기자] 겨울 한자리 든든하게 차지한 동장군은 봄이 와도 쉬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날이 들이치는 강풍과 얼음계곡을 붙들어 두고 지루하게 머물다가 우듬지 비집고 파릇한 새싹이 움트면 어느새 어디론가 동장군은 내빼고 없고 새로운 점령군 봄이 들이 닥친다.

연인도 그렇다. 오랜 기다림의 동면 끝에 찾아오는 봄날처럼 화락 나타나는 게 연인의 속성이다. 시집『야매 미장원에서』를 펴낸 조연희 시인이 엊그제 갑자기 대구로 들이닥쳤다. 대구의 동쪽 외곽지에 볼일 보러왔는데 잠깐 ‘야매 시간’을 내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시간을 생각하면 기회가 왔을 때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달려가야 하지만, 만나고는 싶지만, 속은 타들어 가는데, 차도 없는 내겐 너무 먼 거리라 망설였다. 집에서 끝과 끝이다. 대중교통편도 매우 불편한 곳이고 택시 타면 2만원은 깨진다. 고민 고민하다가 택시 타고 멀리 동쪽으로 가서 조 시인을 만났다.

조연희 시인의 '야매 미장원에서' (노마드북스) 시집
조연희 시인의 '야매 미장원에서' (노마드북스)

강의 허리가 굽은 것은 / 오랜 세월 보이지 않는 길을 돌아온 탓이다. / 산비탈 숨어있던 길이 / 신작로로 흘러나와 최단 거리를 꿈꿀 때도 / 강은 여울목에서 또 한 번 제 속도를 꺾었다. / 물살을 잡아당기는 이끼들 / 어쩌면 강물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 기억들이 흘러가는 것이어서 / 강의 어귀엔 그토록 많은 갈대나 부들 / 모래알들이 서성대는 것일까 / 강물 위로 직선의 포장도로가 달려가도/ 그리운 것들의 옆구리엔 삼각주가 있다고 / 강은 몸을 틀어 제 생의 굽이를 / 만들어 보였다. / 한 번씩 몸을 비틀 때마다 / 쉼표 같은 물방울들이 무수히 / 태어났다. / 저 강은 알고 있을까. / 밤마다 내가 한 줄기 샛강이 되어 / 탯줄 끊듯 허리 꺾는 이유를. // 조연희 시인의『야매 미장원에서』중 ‘샛강’ 전문

우린 금호강변 샛강이 한줄기 흐르는 멋진 풍경 속 나무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모습이 제법 그림이 되는지 출사 나온 어떤 사진작가가 조리개를 우리 쪽으로 맞추고 연방 카메라 셔터(shutter)를 눌러댔다. 나는 조연희 시인을 잘 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오래 혼자 가슴 앓으며 짝사랑해온 내 마음 속 연인이다. 그런 마음을 여러 번 고백하기도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품새를 보면 주변에 나 같은 남자가 수두룩 빽빽할 것이고 이미 그런 남자들의 구애에 충분히 이력이 나있을 터이다.

그런 티가 난다. 우린 종종 만나서 술도 많이 마셨다. 난 술을 그닥 잘 마시지 못하지만 새벽별 보고 헤어질 때까지 술잔을 늘어지게 붙들고 견디는 재주는 부릴 줄 안다. 그는 1966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0년 ‘자궁근종’ 외 5편으로 <시산맥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4년 전에 비로소『야매 미장원...』을 차렸다. 수지타산을 맞춰보니 별 소득이 없어 미장원을 접고 다른 길을 궁리 중이란다. 요즘은 자전거 타기에 빠져 있단다. 자전거 하이킹이 아니고 출근길에, 딸아이한테 자동차를 양보하고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낡은 자전거를 끌다가 타다가 힘겹게 사는 방식, 그게 그녀의 일상이고, 일 하는 모습이고, 시 쓰는 태도이며, 오체투지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그녀의 최대 매력이기도 하다. 그녀가 10년 전 영상프로덕션인 <빅시스템즈> 기획실장으로 광고 및 홍보기획을 담당할 때 나는 일 때문에 조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녀를 소개해준 후배가 소설을 쓴다고 알려줬는데 만나보니 시를 쓰고 있었다. 어떤 부류의 시를 쓰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산하 시인 문하생으로 시를 배우고 있었다. 이른바 ‘목련구락부’ 소속이다. 나는 ‘목련구락부’ 소속 권미강 박희연 등과도 교류가 깊다 삼총사 같이 붙어 다니는 세 시인은 저마다 스타일이 독특하다.

권미강 시인은 최근 시집『소리다방』을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소리다방』시집은 한 편의 시 옆에 큐알코드를 심어 시인이 직접 낭송한 시를 감상할 수 있게 구성한 독특한 시집이다. 조연희 시인은 남자 같은 캐릭터로 걸크러시를 연상시킨다. 보이시(boyish)한 모습은 마치 ‘선머슴’같다 그러면서 성격은 지극히 여자다운 성격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나 여자배구선수 김연경이 이 스타일이다. 사회적으로 여자에게 머슴아 같다, 남자 같다고 하는 것이 최근 들어 걸크러시나 보이시의 수요 증가로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보이시는 일반화 됐지만 남자에게 여자애, 계집애 같다거나, 기생오라비 같다는 말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욕설마냥 들리거나 당사자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이다.

나는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계집애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 손을 보고 여자 같다고 말한다. 가냘픈 뼈대와 왜소한 체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손이 남자답지 않게 너무 고와서 자라면서 어지간히도 놀림감이 되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노년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누군가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를 청하면 손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하면서 신경전을 벌일 때가 많다. 상대방으로부터 자기를 반기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오해를 사면서까지 말이다. 조 시인의 대표시 ‘야매 미장원에서’를 한번 읽어보자.

유난히 머리가 빨리 자라던 그해 여름 / 간판도 없는 미장원에 갔다. / 예약도 없이 갔다. / 낡은 마루에서는 덜걱덜걱 꽃들이 피고 / 봉충다리 의자에선 햇빛이 삐거덕삐거덕 졸고 // 거울도 없는 미장원에 갔다. / 당신은 늘 그렇게 ‘야매’로 왔으므로 / 무면허 미용사는 이빨 빠진 가위로 / 내 덧없는 그리움의 길이를 가늠했다. / 근심처럼 손톱과 발톱이 자라고 / 더러 잘못 자른 머리로 목덜미가 더 길어지기도 했다. // 나팔꽃 씨방 같은 미장원에 갔다. // 파마약 냄새가 넝쿨인 양 머리 위에서 구불거리고 / 골방에선 서둘러 까만 씨앗이 되는 꽃들. // 당신은 속성으로 붉어지는 노을이었다. // 조연희 시인의  야매 미장원에서』  중 '야매 미장원에서’ 전문

조연희 시인이 사진촬영하는 모습
조연희 시인이 사진촬영하는 모습

이산하 시인은 제자 조연희에 대해 “그의 눈은 무심한 듯 예리하고 치밀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조 시인의 성격과 시의 특징을 제대로 꼬집은 말이다. “큰 것들보다는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생의 허기와 통점을 찾아내는” 조연희 시인의 뼈아픈 ‘시적(詩的) 여정’은 ‘야매의 세상’에서 ‘삶의 진정성’을 찾아내 보여주는 과정이다.

시인의 예리하고 치밀한 눈초리가 소외당하고 찌들은 세상을 밝히 여는 회초리에 다름 아니다. 금호강변 샛강에서 한 시간 남짓 이야기 나눴는데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많이 아쉽다. 또 몇 년 뒤에 어느 별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 우리가 연인이 되기 위해선 둘 사이에 별이 떠야한다. 연인으로 만난다는 것, 그건 너와 나 사이에 별이 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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