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포스트
  • 네이버tv
  • 다음카페
  • 네이버회원가입
광복군, 민족해방전쟁을 꿈꾸다
상태바
광복군, 민족해방전쟁을 꿈꾸다
임시정부의 국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7.09.24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복군, 민족해방전쟁을 꿈꾼

임시정부의 국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힌민국임시헌장’을 공포함으로써 탄생합니다. 이 헌장이 처음으로 국호 '대한민국'과 정치체제 '민주공화국'을 규정합니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통합 임시정부가 된 것은 같은 해 9월 11일 연해주 ‘대한국민의회’와의 통합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임시헌장’을 대폭 보완해 ‘대한민국임시헌법’을 선포합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은 이 임시헌법에서였습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원

이 직후부터 임시정부는 군사활동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나라의 근간인 군대를 만들려고 한 것이죠. 1919년 12월에는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를 제정하여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대한 법규를 마련하고, 육군 초급장교 양성을 위해 군무부 산하 ‘#육군무관학교’를 상하이에 설립합니다. 이 학교는 1920년 5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더 이상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1910년대의 독립군 양성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3·1운동 무렵에는 만주지역에 70여개의 군사조직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군 정부’를 추진하다가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 산하조직이 된 군사조직이 바로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입니다.

‘서로군정서’는 서간도 지역의 대표적 조직인 ‘한족회’가 정부는 상하이에 두더라도 독립군을 지휘할 군 정부는 만주에 두자고 제의하여 성립된 조직입니다. 또한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조직인 ‘정의단(중광단)’ 산하 군사조직 ‘군정회’가 임시정부에 복종키로 하고 바꾼 명칭이 ‘#북로군정서’입니다.

이외에 ‘대한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의 결정에 따라 조직되었습니다. 서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한청년단연합회 의용대’와 ‘대한독립군비단’을 전투군단으로 편성한 조직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임시정부의 군대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1920년을 넘어서면서 임시정부의 군사적 노력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승리 이후 독립군들은 일제의 전면적인 공세에 밀려 흩어졌고, 1921년 자유시에서의 참변 이후에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후 1920년대 의열투쟁 시기를 거쳐,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는 일제에 쫓겨 기나긴 유랑과 암중모색의 시기를 거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중국 국민당 정부와 협력하여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개설하였고, 뒤이어 ‘중앙육군군관학교’에도 한인들이 입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한편 김원봉도 자체적으로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를 설립해 초급 군 간부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양성된 인력을 바탕으로 김구는 1934년 남경에서 ‘#한국특무대독립군’을 조직하기도 합니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는 전시체제에 돌입합니다. 중일전쟁 발발 1주일 만에 ‘군사위원회규정'을 마련하여 임시정부를 전시체제로 전환합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세력의 통합노력을 거쳐 우파 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광복진선)’을 결성했고, 좌파세력들도 ‘조선민족전선연맹(민족전선)’을 결성합니다. 상하이를 떠나면서 약화일로에 있던 임시정부가 오히려 전시상황을 맞아 정치적 연합을 이루고 좌파세력과도 통합하게 된 것입니다. 군사조직 결성에는 좌파세력이 한 발 빨랐습니다. 민족전선의 김원봉이 1938년 10월 우한(武漢)에서 ‘#조선의용대’를 결성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임시정부도 1939년 2월 광서성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조직합니다.

1939년 5월 충칭에 가까운 기강에 안착한 임시정부는 충칭에 입성하기에 앞서 정치적 통합과 군사조직 창설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좌우합작을 모색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면서 ‘#독립운동방략’을 발표합니다. ‘독립운동방략’은 “조직화된 무장독립군이 주도하는 무장투쟁을 통해 민족해방을 달성”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군사특파단을 구성해 중일전쟁 최전선의 전진기지인 시안(西安)으로 파견하였습니다. 

1940년 9월 마침내 임시정부가 충칭(重慶)에 입성합니다. 임시정부는 입성 후 바로 군대 창설에 나서,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결성하고 성립전례식을 치릅니다.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를 제정한지 21년 만에 만든 임시정부의 군대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제 본격적인 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치핫이슈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