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자삼우

익자삼우(益者三友)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編)> 4장에 나오는 사자성어이지요. 젊은 시절 ‘세 명의 친구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진짜 벗은 한 명도 어렵다는 걸 실감합니다.

친구도 두 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하나는 붕(朋)입니다. 붕(朋)은 봉황이 날 듯 새 떼가 함께 무리지어 나는 모습이고, 둘은 우(友)라고 하는데 서로 손(又)을 잡고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붕’은 동문수학(同門修學)한 벗이고, ‘우’는 동지(同志) 로서의 벗이지요.

따라서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함께 하고 뜻을 같이한 벗을 ‘붕우(朋友)’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사귀는 벗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행은 누가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고 했고, 인디언들도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친구는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가 진짜 친구가 아닐까요?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는 말은 ‘모진 바람이 불 때라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말도 있지요. 인간 세상이란 잘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마련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오죽하면 옛날에도 ‘정승 집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고, 정승이 죽으면 텅텅 빈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그리고 지금 같은 난세에는 특히나 마음을 툭 터놓고 지낼 친구가 그리운 것이 사실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에서 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반드시 떠오르는 인물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추사가 멀고도 먼 제주도로 귀양을 가보니 그렇게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누구 한 사람 찾아주는 이가 없었지요.

그 그에게 소식을 전한 이가 있었는데, 예전에 중국에 사절로 함께 간 이상적(李尙迪)이라는 선비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해 그 먼 제주도까지 부칩니다. 극도의 외로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추사에게 그의 우정은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추사는 절절한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이지요.

세한도라는 이름은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의 푸름을 안다.’ 이 역시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也)>라는 《논어》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외롭고 힘든 인생길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주위에 마음을 기댈 친구가 없다면, 그 사람은 필시 불행한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적 갑부인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Sam Walton)도 임종이 가까워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결국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듯 좋은 친구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편,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는 예로부터 ‘오무(五無)’를 들고 있습니다.

<오무>란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무능(無能)한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닌가를 살펴야 함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참된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논어》의 <계씨편>에는 공자가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그 유익한 세 친구(益者三友)는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이 <익자삼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뜻이 같고, 지향하는 목표가 크며, 사상이 같은 우리 덕화만발 가족에서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런 조건이나 이해가 없이 ‘맑고 밝고 훈훈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도반(道伴)이요 동지(同志)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우리 덕화만발 가족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강력한 인적 무기로서 공자는 ‘익자삼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벗은 수보다 그 깊이와 질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 목을 내주어도 좋을 ‘문경지교(刎經之交)’ 수준의 벗은 아닐지라도 함께 이 땅에 도덕을 바로 세우고 진리를 실현하는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 ‘익자삼우’가 아닐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6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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