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부처 일일마다 불공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네가 부처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네 마음이 부처고, 부처는 삶 가까이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는 오랜 세월 수행을 한 고승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럴듯한 외관만 갖추고 말만 그럴 듯이 행하는 세상에서 몸소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적인 도리를 설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부처가 아닌지요?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제는 절이 산 속 깊은 곳에만 있지 말고 세상 한복판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처는 깊은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고, 세상 속에 있다는 말씀과도 상통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원불교가 세상 곳곳에 나온 것입니다. 원불교의 신앙관 및 수행관의 기본원리와 특색을 나타내는 표어가 있습니다. 우주만유가 진리의 화신(化身)이므로 모든 일을 불공하는 마음으로 공경 심과 정성을 들여 해나가자는 사상이지요.

원불교 교조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은 곳곳이 부처라는 근거를《일원상(一圓相)》의 진리에 두셨습니다. 소태산은 일원상의 진리를《법신불(法身佛)》로 표현하고, 이 법신불은 우주만유의 전체에 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주만유가 진리의 화신(化身)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만유 전체적 진리이므로 만물 전체가 진리의 화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것은 우주만유를 신앙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반대로 우주만유를 신앙함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함이 되는 것이지요.

둘째, 일원상의 진리는 인과의 원리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지극히 공정하고 삿됨이 없는 인과(因果)의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근거하여 만물의 생성(生成)이 가능하게 되는 겁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인간에게 죄와 복을 내릴 수 있는 권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지요. 즉, 인과의 진리는 만물의 진리화현(眞理化現)으로서의 권능(權能)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만물을 무한한 위력을 지닌 대상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일원상의 진리는 은혜의 덩치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무한 생성력인 은(恩)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은을 우주만유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큰 은혜를 우리는 <천지은(天地恩) · 부모은(父母恩) ·동포은(同胞恩) · 법률은(法律恩)>이라는 사은(四恩)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생존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은의 의미가 들어나면 우리는 모든 일들을 불공 올리는 심정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곳곳이 부처인데 어찌 일 일 마다 불공하는 심정으로 살지 않겠습니까? 불공(佛供)은 전통적으로 일종의 의식과 연결된 신앙행위를 뜻하였습니다. 그것이 부처의 소재와 의미가 진리적으로 규정됨에 따라 그 개념이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바로 사사불공(事事佛供)이지요. 이를 조금 더 부연해 봅니다.

첫째, 진리적인 불공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등상 불(等像佛)에게 불공을 들여왔습니다. 그것을 이제는 진리적인 부처신앙과 진리적인 불공으로 바꿔드리는 것입니다. 즉, 진리적으로 부처님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지요. 이는 미신신앙을 진리신앙으로 돌리는 참 불공일 것입니다.

둘째, 사실신앙과 사실불공입니다.

이는 법신불의 응화신(應化身)인 만물의 각 개체 자체를 사실적으로 믿고 불공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즉, 만물의 개체적 성격을 존중하고 개성에 맞는 불공을 강조함으로써 세상 만물을 진리의 화현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셋째, 일체 불(一切佛)사상과 간단없는 불공법입니다.

일체가 부처이므로 시간과 처소에 구애됨이 없는 불공을 올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원의 진리 자체에 대한 진리불공과 생활 속에서 당면하는 모든 일들을 불공의 심정으로 대하는 당처불공이 사사불공의 특징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조금 어려우신가요? <곳곳이 부처요, 일일마다 불공>이라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우주 만물이 다 부처이므로 모든 일에 불공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불법(佛法)에 관심 있는 분들이 어떻게 살면 잘 살수 있냐고 물어 오십니다. 그러면 <처처불상 사사불공> 잘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즉, 삼라만상을 부처님으로 알고 당하는 일마다 불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그 불공의 위력으로 잘 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면 부자간에도 서로 부처이니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에서 불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동지 간에도, 형제간에도 서로가 부처라 여기고 열심히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일은 지금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중요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곧 불공을 하는 것입니다. 곳곳이 부처요, 일일마다 불공드리는 사람은 만물을 부처로 여기고 사랑하게 되니 하찮은 생명이라도 미워하거나 죽이지 못합니다.

만물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사랑하니까 항상 경건(敬虔)한 생활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리 도덕을 잘 지켜서 서로 돕는 상생상화(相生相和)의 기운이 자라나면, 상생선연(相生善緣)의 좋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게 되니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이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그러나 <곳곳이 부처요, 일일마다 불공>으로 살면, 내가 극락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등상 불에게 애걸복걸 빈다고 복을 내리고 극락에 보내주지 않습니다. ‘곳곳이 부처요 일일 마다 불공이라’는 가르침을 잘 배우고 이를 잘 실천하면 스스로 극락의 길로 가게 되고 큰 볻도 받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9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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