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중앙통신은 24일 김 위원장이 전날 화상회의로 진행된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했다며 “당 중앙군사위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2. 그리고 이에 대한 이남의 반응은 <그러면 그렇지…> 또는 <어르고 달래기>로 요약된다. 국방부 장관은 더 나아가 대남군사행동계획은 보류가 아니라 철회되어야 한다고 했다. 신중하지 못하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게 아닌가. 대남군사행동계획의 보류조치는 <어르고 달래기>로 잘못 해석되어질 수 없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이런 무모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그렇다면 조선이 국면전환을 위해 처음부터 공동연락사무소를 보여주기로 폭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조선의 의사전달 방식이 아니다.

▲출처: JTBC 화면 캡처
JTBC 화면 갈무리

3. 이런 가운데 다시 어제 밤 발표한 담화에서 김영철 노동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의 차후태도와 행동여하에 따라 북남관계전망에 대하여 점쳐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남조선《국방부》 장관이 기회를 틈타 체면을 세우는데 급급하며 불필요한 허세성목소리를 내는 경박하고 우매한 행동을 한데 대하여 대단히 큰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4. 이남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논조의 기저엔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기만적 허세가 있다. 그리고 조선을 도발의 원흉으로 끊임없이 덧칠한다. 즉, 매체들은 이남을 <평화와 풍요>, 조선을 <도발과 굶주림>의 틀 안에 가둬두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정반대이지 않은가. 미국의 악랄한 대북적대시정책과 제재에 동참하고 영원한 한미동맹을 약속한다는 것은 절대 평화와 병치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평화의 사도>로, 조선을 <도발의 원흉>으로 끼워 맞추고 있다.

<우는 아이 달래기>가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잠든 아이를 맡기고 나간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의 부재에 놀라 울기 시작한다. 업어보고 토닥거려보고 먹을 걸 줘보고 아무리해도 울음은 그치질 않는다. 한나절이 흘렀다. 지친 할미가 잠시 우는 손자를 내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며느리가 집에 들어온다. 그리고 지친 아이의 울음이 잦아든다. <시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을까…>하는 며느리가 있고, <얼마나 애를 잡았으면…>하는 며느리가 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있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헤아림이 있다. 울음을 유발한 요인은 며느리의 부재다. 정작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한 사람은 시어머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자신의 등장과 함께 울음이 그친 일시적 현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안정의 보금자리>, 시어머니를 <갈등의 원흉>으로 잘못 해석한다. 이런 못된 며느리가 있다.

5. 대남군사행동계획은 왜 보류되었는가?
상대방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끊임없이 도발을 일삼다가 먼지가 나도록 흠씬 얻어맞은 이가 있다. 징벌의 수위가 있다. <살릴 것인가 죽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윤리적 고민이다. 고민 끝에 피투성이가 된 이의 손에 징벌을 내린 이가 슬그머니 총을 쥐어주고 돌아서 걷는다. 그러면 다시 선택과 가능성이라는 유혹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도발을 일삼던 이는 이 느닷없는 선택의 기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등 뒤에서 방아쇠를 당겨? 말어?>로 해석한다면 생각이 짧은 것이다. 징벌을 한 자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그 총을 준 것이다.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을, 다시 배신할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이 기회는 무거운 고민 끝에 주어진 기회이며 거부할 수 없는 배신의 유혹이 담긴 기회다.

지나간 과오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각오로 나서야 할 때다. 김영철 노동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담화 말미에 “위협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보류》가 《재고》로 될 때에는 재미없을 것이다.”고 했다. 이것은 남한 정부가 스스로 윤리적 판단을 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 기회를 악용하라고 준 게 아니다.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계획은 등 뒤에서 방아쇠를 당길 때 현실이 될 수 있다. 형제에게 보인 인내심에 상응하는 신중하고 실질적인 조치들이 뒤따르길 바란다. 죽어야 살 수 있다. 살려는 헛된 희망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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