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쏭바강』보다 더 먼 이해리 시인과 짝사랑의 거리

[뉴스프리존=박상봉 기자] 잃어버린 것이 있다 / 분명 내 것이었으나 / 이제는 아닌 것이 흘러가는 / 나루터에 와서 주막에 앉아본다 // 바람은 복사꽃잎 날리며 건너오는데 / 강물은 봄바람 저어 깊어 가는데 / 가버린 것은 오지 않는다 // 나루터에서 기다리는 것이 / 배뿐이던가 //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 취한 채 떠내려가고 싶다 / 가슴에 출렁이는 어떤 추억이 / 다 건너갈 때까지 // -이해리 시집 『미니멀 라이프』 중에서 「사문진」 전문

달성군의 화원읍 성산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사문진 나루터.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어린 시절,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마다 짝사랑하던 남학생 얼굴이 강물 위로 얼비쳤다고 한다.
달성군의 화원읍 성산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사문진 나루터.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어린 시절,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마다 짝사랑하던 남학생 얼굴이 강물 위로 얼비쳤다고 한다. / ⓒ 박상봉 기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화원읍 성산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사문진 나루터에 오랜만에 산책 나갔다. 내가 사는 집과 지척 간이라 서울 등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가끔 데려가는 곳이다. 사문진 나루터에는 주막촌이 있다. 방도 있지만 평상에 걸터앉아 소고기국밥이나 잔치국수로 식사를 할 수 있고, 정구지전(부추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나눌 수 있다. 주막촌 아래는 선착장이 있어 옛날 나루터의 추억을 되새기며 뱃놀이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문진이라는 지명은 『경상도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사문(沙門)’은 ‘모래가 많은 백사장으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다. 일설에 사문진(沙門津)의 한자어가 ‘사문진(寺門津)’이어서 신라시대 포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많은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1932년 개봉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의 무대로도 이름 나 있는 장소이다.

낙동강이 고고히 흐르고 자연친화적인 유원지 화원동산이 인접해 있는 사문진 나루터는 과거 물류집산지로 유명세를 떨쳤다. 또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이곳을 통해 유입되었던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00년 3월 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탑 부부가 피아노를 낙동강 배편으로 실어와 이곳 사문진나루터로 들여왔다. 그 당시 나루터에서 피아노를 운반하였던 마을 사람들은 커다란 통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해 피아노를 ‘귀신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만 각설하고, 나는 이해리 시인의 시집 『미니멀 라이프』에 수록된 「사문진」이라는 시를 보고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을 떠올렸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베트남 참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내용이 중심을 이루지만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 응웬 빅 뚜이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또 다른 중심축을 이끌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인 청년과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 베트남 여성과의 만남,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만큼 맹목적이고 이국적 풍경 만큼이나 이색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베트남 여성이 이방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뚜이의 노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쏭바강은 알고 있다네 / 내 더벅머리 소년의 얼굴을 / 우리는 포성을 들으며 자랐네 / 난 장성한 그의 얼굴도 모르네 / 강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 강은 시시때때로 변하네 /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네 / 내 죽어 달빛 되리 / 강물 내력 비추는 달빛 되리 / 강물 속 그리운 얼굴 비추는 / 달님 되리 /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 아아 달님 같이 달님 같이”

이해리 시인의 「사문진」을 읽어보면 이 시가 뚜이의 노래처럼 강물보다 더 깊은 진한 사랑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이해리 시인을 은근히 짝사랑해온 나는 질타에 불투는(질투에 불타는=마광수식 표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 수성못 앞으로 이 시인을 다짜고짜 불러내 「사문진」에 대한 시의 내력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문진」은 “초등학교 다닐 때 짝사랑한 남학생에 대한 가슴 출렁이는 추억을 소재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필자와 이해리 시인(오른쪽)이 수성못 앞에서 만나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한 남학생에 대한 가슴 출렁이는 추억을 소재로 쓴 시「사문진」에 대한 시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상봉 기자
필자와 이해리 시인(오른쪽)이 수성못 앞에서 만나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한 남학생에 대한 가슴 출렁이는 추억을 소재로 쓴 시「사문진」에 대한 시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 박상봉 기자

지금은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고도 강을 건너 갈 수 있지만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어린 시절, 강 건너 마을에 외가가 있었던 이해리 시인은 배를 타고 외가를 오갔다고 한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마다 짝사랑하던 남학생 얼굴이 강물 위로 얼비쳤다는데, 전교 학생회장을 했던 그 남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겨서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사랑 고백은커녕 변변한 대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누나의 어릴 적 외도를 용서하기로 했다. 누나 없이 자란 나는 나이 많은 여성이나 여선생님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이해리 시인을 나는 평소에 누나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머나먼 쏭바강』 보다 더 먼 거리감을 느낀다. 해리(海里)는 해상의 거리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1해리는 1,852미터이다. 독도는 울릉도 남동쪽으로 50해리 떨어져 있다. 요즘 나와 해리 누나의 거리가 독도와 울릉도만큼 멀어졌다. 이해리가 아니라 오십 해리 거리쯤 멀찍이 떨어져 앉은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한 탓이다.

이해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는 애수적 서정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깊어진 통찰과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눈길을 끈다. 
이해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는 애수적 서정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깊어진 통찰과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눈길을 끈다. 

4년 전에 나온 해리 누나의 세 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를 나는 이제사 제대로 읽어보았다. 김용락 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애수적 미哀愁的 美’의 추구에 주력했던 첫 시집에 비해 이번 세 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는 애수적 서정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깊어진 통찰과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눈길을 끈다. 난폭한 이 비언어의 시대, 문학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이번 시집의 이해리 시는 모범적인 진화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처럼 ‘나는 나룻배’ 이해리 시인은 ‘행인’이다. ‘당신이 흙발로 나를 짓밟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갈 것이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네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낡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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