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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의 연막전술 ‘심부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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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의 연막전술 ‘심부름센터’
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③
  •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 승인 2020.07.02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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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의 연막전술 ‘심부름센터’

CBS가 누락한(외면한) 사건 수사 과정을 살펴보자. 엉터리 수사 논란 속에 합동수사본부장이 경질된 뒤 수사가 제대로 됐을까? 그랬을 리가! 신임 합동수사본부장 홍 씨는 5.6공 시절 치안본부에 근무한 악명 높은 고문경찰이었다. 아마도 안기부와 한통속이 돼 사건을 은폐하는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래도 수사본부장이 ‘대공수사 전문 고문 경찰관’으로 교체된 뒤 약 보름 간은 수사가 진척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렇게 보일 필요가 있지 않았겠나). 경찰에 놀라운(?) 제보가 들어왔다(제보자는 안기부였다). 사건 발생 열흘 전 이한영의 거처를 수소문했다는 ‘심부름센터’ 관련 정보였다.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본부장 김덕순(金德淳) 치안감)는 20일 사건 발생 전 심부름센터 직원이 이 씨의 임시 거처인 남상화(42.여) 씨 집으로 이 씨의 거처 등을 확인하기 위한 괴전화를 했다는 제보에 따라 정확한 경위 파악에 나섰다. 제보자[?]에 따르면 심부름센터 직원이 사건 발생 10일 전인 지난 5일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수십만 원의 용역비를 받고 남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씨의 핸드폰 번호 및 호출번호 등 연락 방법을 캐물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또 심부름센터 직원이 익명의 의뢰 사항을 확인하고 경남 마산 모 은행 온라인을 통해 돈을 송금받은 뒤 이 씨의 연락처 등을 의뢰인에게 전달해줬다고 알려왔다. 경찰은 조사 결과 의뢰인이 가명을 사용하는 등 신분을 철저히 감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이 의뢰인을 추적 중이다.](「“심부름센터 통해 괴전화” 제보」<경향신문> 1997.2.21)

세상에!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인가? 곧 CCTV가 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인다! 그런데 난데없이 ‘러시아 마피아’설을 흘러나왔다.

[경찰은 이 씨가 러시아 마피아단에 의해 살해됐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제보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 이 씨는 1.2년 전 러시아를 상대로 무역업을 하면서 상당액의 빚을 졌으며 ... 또 러시아 매춘여성인 ‘인터걸’ 소개업자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러시아 마피아 단원들과 접촉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97.2.20)

뭘까? 김 치안감의 심부름센터 추적 발표와 거의 동시에 삐져나온 ‘러시아 마피아’ 설. 복선이었다. 수사를 또 다른 미궁으로 내 몰려는 안기부의 역정보 공작이었을 것이다. 바로 다음날 경찰 손에 넘겨진 안기부 CCTV도 마찬가지. 

[경찰은 이날[2.21] 안기부로부터 문제의 의뢰인이 지난 5일 심부름센터에 이 씨의 거주지 확인을 부탁한 뒤 은행에서 용역 비용을 송금하려는 모습이 담긴 CCTV 녹화테이프를 넘겨받았다. 이 남자는 경남은행 동마산지점과 국민은행 동대구지점 등 2개 은행에서 용역 비용을 송금했다. ... 이 남자는 5일 오전 9시 53분 쯤 경남은행 동마산지점에서 ‘김상현’ 명의로 15만 원을, 2시간 30여 분 뒤인 낮 12시 30분 쯤 국민은행 동대구지점에서 ‘최성철’ 명의로 5만 원을 각각 송금 ... 입금서 필적 감정 결과 동일인인 가공인물로 확인 ... 경찰은 이 지역에 연고를 둔 고정간첩이나 이 씨의 거주지 파악을 부탁받은 청부업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CCTV 송금 모습 확인」<경향신문> 1997.2.20)

안기부가 CCTV를 경찰에 넘긴 것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안기부가 이 자료[CCTV 녹화 테이프]를 토대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면 끝까지 정보를 쥐고 있다가 결판을 냈을 것”이라며 “안기부 쪽이 이미 필요한 추가 수사를 거의 해 본 다음 별 가치가 없자 경찰에 넘겨준 듯하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1997.2.24)

아니나 다를까 경남은행 등의 CCTV에 잡힌 송금자의 무통장 입금표에 남겨진 지문을 감식한 결과 국내 거주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지문이 있어도 안기부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또 하나의 미궁!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는 22일 은행 폐쇄회로 TV에 잡힌 송금자의 무통장입금표 원부에서 채취한 2개의 지문을 감식한 결과 국내 거주자의 지문이 아닌 것으로 ... 수사본부 관계자는 “용의자는 한국계 외국인으로 간첩이나 국제적 청부 폭력조직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용의자 해외서 잠입 추정” ... 지문 감식서 확인」<경향신문> 1997.2.23)

심부름센터를 활용한 것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안기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의뢰자는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건 지난 5일 이미 이 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범행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 씨가 얹혀살았던 김장현(46) 씨가 세대주라는 점까지 알면서 김 씨를 사칭해 심부름센터에 이 씨의 전화번호와 부인 이름을 알아 줄 것을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집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알 경우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 지난해 말 분당의 아파트로 이 씨가 거처를 옮긴 사실까지 정확히 파악할 ‘정보력’을 갖춘 범인이 이 정도를 심부름센터에 의뢰했다는 대목은 석연치 않다.](「‘의뢰자’ 행적 의문 투성이」<한겨레신문> 1997.2.24)

이한영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궤적을 모두 꿰고 있는 조직이 어디겠나! 며칠 뒤 또 다른 CCTV 테이프가 등장한다. 이전 테이프 속 인물이 범행 약 보름 전인 1월 31일 하나은행 서울 흑석동 지점에서 송금하는 장면이었다. 송금처는 또 다른 심부름센터였지만, 이때도 ‘김상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경찰은 이 남자의 모습이 지난 5일 경남은행 동마산지점의 CCTV에 잡힌 심부름센터 용역비 송금자와 비슷한데다 같은 송금의뢰인 명의(김상현)을 사용한 점 등으로 미뤄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 씨가 피격당하기 보름 전인 1월 31일 서울 종로 소재 ‘ㄷ’심부름센터에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이 씨의 거주지 조사를 의뢰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 심부름센터 측은 이 씨의 분당 거주자를 알아낸 뒤 31일 ‘ㅎ’은행 온라인을 통해 입금된 45만원을 받고 이 남자에게 주거지를 전화로 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심부름센터 측은 평소 잘 알고 있는 현직 경찰관 2명을 통해 이 씨의 거처를 알아낸 것으로 드러났다.](「서울서도 용의자 얼굴 잡혀 ... 지방 송금자와 동일 인물 추정」<경향신문> 1997.2.28)

심부름센터가 경찰관을 통해 이한영의 주소를 알아내 범인에게 알려줬다는 말이다. 아무튼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심부름센터 두 곳에 돈을 보내는 CCTV 화면이 잇따라 공개된 직후 화면 속 인물이 러시아 교포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부산경찰청은 27일 이한영 씨 피격 사건 용의자와 닮은 러시아 교포가 우리나라에 자주 입국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러시아를 상대로 무역중개업을 하는 김 모(41.부산 진구 개금동) 씨는 지난 26일 “사업 관계로 지난해 초 세 차례 부산에서 만난 러시아 교포 이 모(35) 씨가 은행 폐쇄회로TV에 잡힌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흡사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용의자 닮은 러시아 교포 안다” 부산서 제보<동아일보> 1997.2.28)

심부름센터 관련 제보와 동시에 ‘러시아 마피아 관련 제보’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한 때가 2월 20일이었다. 일찌감치 ‘러시아’라는 운을 띄워 놓고 일주일 동안 CCTV 화면으로 시선을 끈 뒤, 이 화면 속 주인공이 바로 러시아 마피아인 것처럼 몰고 가는 수순 아닌가! 당연히 수사진은 다시 미궁 속을 헤맨다. 이처럼 안기부는 엉뚱한 제보 놀이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범인을 잡을 실마리는 쫒지 않았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의 번호가 그 실마리였다. 

[사건 1주일 전쯤부터 30대 남자 2명이 중형 승용차를 타고 이 아파트 주변을 배회했다고 아파트 경비원들이 진술함에 따라 이들이 범행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 아파트 경비원 윤상일(51) 씨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자정께 아파트 418동 앞 주차장에서 30대 남자 2명이 중형 승용차 안에서 시동을 켠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 ... 경비원들이 다가가 “어디서 왔냐”고 묻자 별다른 대답 없이 바로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경비원들은 당시 차량 번호를 확인해 주민들 소유 차량의 번호와 비교해 본 결과, 주민 소유 승용차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윤 씨는 “10일 이전에도 나흘 동안 밤 11시 30분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같은 차량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승용차가 2명을 태운 채 같은 장소에서 머물곤 했다”고 말했다. 한편 418동 지하주차장을 함께 쓰는 419동 주민 장희철(44) 씨는 “15일 저녁 10시 조금 못 미쳐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다가 진입로 오른쪽으로 키 170cm 가량에 안경을 쓴 누런색 점퍼 차람의 40대 남자 1명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며 “이어 주차장 안에서는 418동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으로 30대 남자 2명이 걸어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경비원 진술 “괴한 2명 5차례 정탐”... 열흘 전부터 자정께 승용차로 현장 주변 배회」<한겨레신문> 1997.2.17)

아파트 경비원은 분명 문제의 차량 번호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번호를 공개 수배했어야 했다(보나 마나 안기부·정보사 등이 즐겨 쓰는 ‘대포차’였을 것이다). 안기부가 주도한 당시 합신조는 이런 수사를 하지 않았다. CBS 뉴스쇼라면 ‘왜 안기부는 당시 이런 증거가 나왔는데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나’를 추적해야 하지 않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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