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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어는 노 화백의 울림있는 ' 흙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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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어는 노 화백의 울림있는 ' 흙의 찬가'
이상원 화백 화업60년 흙으로 귀결
"모든것 아우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 반해"
"내 생각을 내려 놓으니 그제사 눈에 들어온 것이 흙이다"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0.07.03 0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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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화백

[뉴스프리존=편완식미술전문기자]작가는 흙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변화다. 귀토(歸土)라는 주제로 전시도 했다. 고령의 나이도 창작의 열정만은 막지 못했다. 이번엔 유적발굴현장에서 이제 막 캐낸듯한 도자기 등을 화폭에 그려냈다. 흙이 묻어 있는 모습이다. 물론 그림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황토가 섞인 붉은 색과 부드러운 질감은 오래된 정감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흙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림 소재가 된 사물들은 꽤 오래된 것들이고 그림으로는 더 오래된 것처럼 표현되었다. 작가가 흙에 내재한 장구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다.

극사실주의 화가 이상원(85) 화백이 이야기다. 그는 복잡한 전경(그물, 마대, 눈밭위에 어지럽게 밟힌 타이어자국)과 주름진 백발을 세세하게 표현해 온 작가로 대중에 각인돼 있다. 최근 그의 작품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팔순을 넘긴 작가에게서 흔치않는 모습이지만 예술가로서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관점의 변화가 조형적 변화로 드러난 것으로 보여진다. 여전히 젊은 작가 못지 않게 붓을 늘 끼고 사는 모습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흙은 모두가 느끼듯이 단순하면서도 묵직하고 변함없으며 많은 것들을 아우른다. 화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흙에 대한 예찬과도 같은 작품들을 위해 기교와 묘사, 대상을 집요하게 드러내는 표현마저 내려놓았다. 묘사와 형태의 설명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색감과 붓터치의 자연스러운 감각이 차지하고 있다.우리는 그가 그린 그림을 굳이 도자기 또는 맷돌이라고 인식할 필요 없이 회화적인 표현을 즐기면 된다.거기에는 흙의 사용으로 인한 부드럽고 보송한 질감이 더해졌다. 회화의 본질이라 일컫는 색과 형상, 질감의 유희가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묵직하고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진다.

“이제 좀 더 근원에 다가가고자 근원의 매개체로 흙을 선택했다. 그것에 대한 정감과 사랑을 표현하고자 이야기를 마치고 침묵하듯, 묘사를 내려놓고 추상적인 화면을 구사하게 되었다. 치열하게 질주해 본 사람이 끝자락에 이르러 진정으로 이완하고 가볍게 유희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시공간적인 느낌을 전달하게 된다. 순간의 ‘보는 행위’에서 중층의 의미와 감성을 읽혀지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상원 화백이 지금까지 절절함이 느껴지는 그간의 소재들을 채택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표현해온 이유다.

이런 결과물들이 강원도 춘천 이상원미술관(관장 이승형)에서 1부(9월20일까지)와 2부( 9월 22일 ~ 12월 20일)로 나눠 소개된다. 1부에서는 도자기와 맷돌 등 대작(100호)이 전시되며, 2부에서는 도자기, 오래된 책, 남루한 신발 등을 소재로 한 비교적 작은 작품(25호, 50호)들이 전시 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신작전의 도자기 작품들에서는 단순한 형태를 잊게 할 만큼 풍부한 색감이 표현됐다. 유화물감과 흙과 물을 운용하여 풍요로운 회화적 맛을 극대화시켰다. 사실 그의 흙작업은 진흙탕속 바퀴자국 그림에서 이미 싹이 트고 있었다.

"흙은 인간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터전이자 근원이며 생명이 사라질 때 돌아가는 곳이다. 흙은  엄청난 존재론적 함의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늘 우리 곁에 함께 있다. 이번 전시는 한 예술가의 흙의 찬가로 봐 좋으면 한다."

이상원 화백은 1935년에 강원도 춘천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샘밭이라고도 불리는 유포리는 소양강댐을 근거리에 두고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한 곳이다. 지금도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시골마을이다. 일제 강점시기 소박한 농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상원은 농사 이외에 다른 생업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라났다. 농업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을 맞이하여 친형과 나란히 학도병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경험이 반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그가 작업하는 작품의 이미지와 정서를 지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청년시절에는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이주하여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상업미술가로 활동하였다. 청년 이상원은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일에서 누구보다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대 중반인 1970년에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된 손이 표현된 영정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문교부 공인 안중근의사 영정 초상화로 선정됐고 안의사 기념관에서 오랜 기간 전시되기도 했다.

상업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연마했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문에 의한 초상화 제작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국전에도 응모하였지만 심사위원들의 논쟁을 야기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작품은 입선에 그쳤다. 하지만 1978년 새롭게 시작된 민간 공모전인 1회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선 특선과 동아미술상을 거머쥐었다. 공식적인 화가로의 데뷔는 공모전을 통해서였지만 거의 50세이 다 되어서야 첫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됐다.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짊어진 민초들의 삶을 반영하는 감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미술관의 초대전으로 블라디보스톡 소재 연해주주립미술관, 국립 중국미술관, 생 루이 살페트리에 성당, 상하이미술관 등지에서 전시를 가졌다. 1999년엔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 러시안뮤지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입지전적 독학 화가’로 1990년대 후반에 발표되기 시작한 ‘동해인 연작’은 한국의 어부, 농부 등 거친 일터에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하고 남루한 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외 관람객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산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이다. 그동안은 내 생각의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부턴 그 대척점에 있는 그 무엇들을 그리고 싶다." 

이상원미술관
이상원미술관

이상원 화백은 해외 전시가 한창이었던 2000년에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했다.자신이 태어났던 유포리보다 더 깊은 산속 마을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상원미술관은 2014년 화악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이승형 관장이 부친의 작품관리와 지역문화공간 확보차원에서 설립했다. 300여 평의 전시 공간과 다양한 문화예술체험이 가능한 공방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한애규 개인전, 박형근 사진전, 윤석남 개인전, 최은경 조각전, 정정엽 개인전, 변대용 개인전 등 다양한 기획전을 개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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