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

우리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마음의 문’을 열라고 말을 합니다. 참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정말로 가슴이 다 답답해지지요. 마음의 문은 어떤 것일까요? 상대를 받아들이는 ‘마음속 길목의 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쉼 없이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벗의 우정도, 연인의 사랑도, 형제간의 우애도,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도 그 마음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또한,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모르기에 사람의 마음은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합니다. 아니 오 만 번 변한다고 하던가요? 아이들 소꿉장난하듯이 마음에 들면 놀아주고 마음에 안 들면 ‘너 싫어 가’하는 식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 뜨거운 마음을 상대에게 전해야 합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로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문을 못 여는 것이 답답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문을 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철학자 헤겔(1770~1831)이 우리에게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남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사이가 가까워지고 친밀해질수록 자신이 원하는 걸 함구(緘口)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 정도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줄 거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게 사랑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런데 현명해서 마음을 다 읽어내고 알아챘으면 좋으련만, 중생들은 잘 읽어내질 못해서 좋았던 사이가 틀어지는 것입니다.

‘통성기도(通聲祈禱)’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기도의 한 방식으로, 크게 목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제가 기독교학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 출신이라 그 방법을 조금 압니다. 사람들이 기도의 위력을 못 얻는 것은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무효’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상 집에서 기도를 할 때는 진리를 향해 큰 목소리로 그야말로 통성기도를 올립니다. 그 기도의 공덕으로 이만큼 행복을 누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은 먼저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가서면 자연히 상대방 마음의 문도 활짝 열리지 않을까요?

역사상 고백하지 않고 이루어진 사랑은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무효이다’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하다못해 문자가 없는 옛날에도 원시인들은 알타미라 동굴 같은 곳에 벽화를 그려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야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에 그런 것이 아닐 런지요.

어쨌든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는 철학자 헤겔의 말은 진리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먼저 입을 떼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마음의 문을 열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서로 압니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는 것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 가섭(迦葉)이 미소를 지었다는 내용의 화두(話頭)이지요.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최초로 나타나고 있는 법문(法門)입니다. 석가모니가 영산(靈山)에 있을 때 범왕(梵王)이 금색의 ‘바라화(波羅花)’를 바치면서 설법을 청하였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모든 사람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망연(茫然)하였지요.

그런데 대가섭(大迦葉)만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에 석가모니는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대가섭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 이 내용은 중국의 여러 선서(禪書)에 인용되면서 선종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내용으로 채택되었지요.

이심전심(以心傳心)! 내 마음의 문에 먼저 빗장을 풀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法)이 건네집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누구나 대인될 소질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키우고 국(局)을 더 넓혀서 대인 되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몸은 작아도 마음이 크면 대인이요, 몸은 커도 마음이 작으면 소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서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서로 사랑하기를 금(金) 같이 하고, 서로 위하기를 옥(玉) 같이 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7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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