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산울림 고전극장

"돼지떼"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이은비 연출 /ⓒAejin Kwoun
"돼지떼"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이은비 연출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2020산울림고전극장에서 프랑스고전을 만나보는 시간 속에서 조르주 상드의 '말하는 떡갈나무'를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한 작품 "돼지떼"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이은비 연출은 판을 깔아주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무대 예술에서 명확한 답은 보이지 않고 특히 연극 장르의 경제성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실 속에서 극을 준비하며 어떤 식으로 길을 가고 싶어하는지 묻는 짧은 질문에 이은비 연출은 긴 편지를 남겨 주었다.

"돼지떼" 안에서 할머니도, 조르주 상드도 이야기하듯이 사람은 돈을 벌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돈을 벌고 싶어서 대학에서 경영학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연극 일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서 수없이 들어야 했던 말은, 연극 이외에 수입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극을 시작한 이래로 지난 5년간, 연극이 아닌 일로 계속 돈을 벌었습니다. 주 수입원은 번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의 가치는, 단순히 금전적인 이득을 얻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숫자로 환산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연을 만들면서 다른 일을 겸하는 것이 왠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연극을 잘 만들면, 그래서 잘 팔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점점지겨워졌습니다. 공연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공연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상업극’ 딱지를 달고 있는 연극과 뮤지컬에서 조연출 일을 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조연출이지만, 항상 마음 안에는 이 상업극 안에서의 예술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상업극을 하는 동안에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월세를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돈을 벌었습니다.

도대체 상업극과 비상업극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훌륭한 연극이라면, 그래서 표가 잘 팔린다면, 상업극이라고 부를수 있는 게 아닐까요? 결국 모든 연극의 지향점은 상업극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그래야 함께 일한 배우, 크리에이티브, 스태프들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페이를 주고, 그래야만 그들의 예술 활동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요? 얄라리얄라를 만들고 지원금에 의존한 연극 제작을 지속하면서, 결국에는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연극 제작을 지향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지원서를 쓰고 발표를 기다리는 일이 지쳤다기보다는, 우리가 번 돈으로 연극 제작비를 충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계속 연극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돈에 지치지 않고 계속 연극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우리가 만든 연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테니까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공연은 그 자체의 훌륭한 예술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예술성과 동시대성을 갖추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우리가 만든 가치만큼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성을 가지는 ‘광장’과 같은 극장이라는 공간에 사람이 모여야 한다는 연극의 기본 전제를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아직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연극은 우리가 대면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프라인 상에서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 시대가 종식되더라도, ‘공연으로 밥 벌어먹기’라는 과제는 계속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 길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공연 외의 수입원을 찾는 일, 그리고 공연으로 돈을 버는 일. 아직은 공연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만든 것이 이만큼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만든 공연으로 돈을 버는일, 그래서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길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한달 반에서 두달동안 연습하고 1-2주만에 공연이 끝나버린다면 이는 불가능합니다. 공연을 한번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발전시켜 재공연을 하고, 보장된 예술성을 바탕으로 공연 기간을 장기적으로 가져가야만 안정적인 수익 배분이 가능합니다. 예술성보다는 대중의 구미에 맞춘다는 뜻으로 폄하되고 있는 단어 ‘상업극’의 아름다운 본디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연극으로만 돈을 벌어야, 우리도 계속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게 '직업'이니까요.

당당하게 직업으로서 자신의 작업을 즐기며 해 나갈 수 있을 그 날을 꿈꿔 보며 이은비 연출의 행보를 지켜보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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