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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시인의 문학추억여행-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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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시인의 문학추억여행-15
이성복 시인의 시「남해금산」과 필자의 시 「모감주나무」, 그리고 사랑을 잃고 산을 헤매는 사내 이야기
  • 박상봉 기자
  • 승인 2020.07.08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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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박상봉 기자]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시인의 시「남해금산」전문(시집 『남해금산』1986 중)

남해금산에 간 적 있다. 남해금산 어디쯤 돌 속에 묻혀 있을 내 곁에서 도망간 내가 사랑한 한 여자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남해금산에 간 적 있다. 남해금산 어디쯤 돌 속에 묻혀 있을 내 곁에서 도망간 내가 사랑한 한 여자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사진은 불주사에 갔을 때 필자가 촬영한 것이다./ⓒ박상봉 기자

비 많이 오는 날은 아니었지만 어느 해 여름 혼자 남해금산에 간 적이 있다. 남해금산 어디쯤 돌속에 묻혀 있을 이성복 시인의 한 여자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도망간 내가 사랑한 한 여자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다고 했던가? 일찍 찾아온 사랑이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세상도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30대에 또 다른 사랑이 나를 찾아왔다. 그 여자와 나는 나이가 열한 살 차이가 났다. 나를 ‘아저씨’ 라고 부르며 잘 따랐는데, 나이 어린 여자를 사귀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항상 갈등에 휩싸였다. 그 여자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아저씨 나랑 결혼해요?” 하며 졸라댔다.

그때 나는 직장도 변변치 않았고 아이도 하나 딸려있는 홀아비였는데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내를 좋아라 해주는 그 여자가 눈물겹도록 고마웠지만 늘 죄 짓는 기분으로 그녀를 만났다. 어느 날 “나랑 결혼해서 후회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드디어 나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어린 여자를 데려와서 행복하게 해주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기에 일 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깊이 생각해보고 그동안 다른 남자도 사귀어보고 잠도 자봐라 그래도 일년 뒤에 내가 좋다면 그때 결혼하자” 이렇게 말하고 일 년간 만남을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는 일 년 안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 집도 마련해놓고 결혼 자금도 준비하려고 구미공단에 직장을 구해 들어갔다. 아마도 그 여자는 내 말을 간접적인 절교 선언으로 받아들인 듯 약속한 일 년에 일주일도 남지 않은 그해 겨울, 눈 많이 쌓인 날, 편지 한 장 딸랑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귄지 2년도 안된 어느 날 갑자기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그 여자 때문에 또 하나의 사랑을 잃은 나는 절망에 빠졌다. 혹여 어디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한번이라도 가본 적 있는 장소들은 모조리 뒤지며 찾아다녔다.

무슨 이유에선지 약속한 일 년에 일주일도 남지 않은 그해 겨울, 눈 많이 쌓인 날, 내가 사랑한 여자는 편지 한 장 딸랑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약속한 일 년에 일주일도 남지 않은 그해 겨울, 눈 많이 쌓인 날, 내가 사랑한 여자는 편지 한 장 딸랑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박상봉 기자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산이란 산, 절이란 절은 안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어떤 날은 남해 금산 구석구석 쌍문홍을 지나 보리암 좌선대 상사바위를 훑으며, 종일 지치도록 헤매다가 해 저물녘에 산을 내려와서는 상주해수욕장까지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를 걷고 또 걸어갔다.

어스름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올 때 부르튼 발을 푸른 바닷물에 담그고 혼자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금산 어디쯤 숨어버렸을 지도 모를 도망간 여자와 금산에서 극적으로 해후(邂逅)라도 했다면...그랬다면 내가 찾던 여자도 이성복 시인의 시「남해금산」의 그 여자처럼 울면서 돌 속으로 들어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돌 속에서 떠나갔을 지도 모르고 해와 달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렇게 온산을 뒤지고 다닌 끝에 가지산 석남사에서 드디어 그 여자를 만났다. 주말마다 여러 절을 찾아 헤매던 중 어느 날이었다. 석남사를 또 들렀다가 내려온 날 밤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아저씨, 나 여기 있는데 왜 못찾아요?” 하면서 모감주나무 가지로 나를 두들겨 깨우는 것이었다. 그 길로 회사도 안가고 석남사로 바로 달려가 종무스님을 만나 끈질긴 말씨름 끝에 마침내 그 여자를 만나게 됐다.

하지만 데리고 내려오지는 못했다. 그 며칠 전에 석남사에 찾아갔을 때도 분명히 내 느낌이 여기 있다고 생각되어 “내 여자 내어 놓으라”고 행패 부리다가 덩치 큰 여승들한테 바짝 들려 문밖으로 패댕가리쳐진 적이 있었다. 밤은 깊어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데, ‘쿵!’ 하는 절문 닫히는 소리가 대포 소리만큼 컸다. 그 순간 귀가 찢어지고 머리가 막막해지면서 가슴이 그렇게 갈갈히 아프게 찢겨지는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내 목숨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때 천근이 넘는 슬픔을 가지산에 내려놓고 와서 그런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그 당시에 두 줄도 못 쓰고 글이 막혀 멀찍이 밀쳐두었던 초안은 아주 한참 뒤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서「모감주나무」라는 시로 완성이 되었다. 시를 완성하고 나자 이제는 그 여자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 모감주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잃은 사내는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 산은 다가 갈수록 멀어지고 / 나무는 숲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 사랑은 다 그런 것일까 오래 가야 일년 삼개월 / 눅눅한 땀만 손에 쥐어놓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 산을 헤매며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 비오는 날 사내는 산을 오른다 / 깊은 골짝 바위틈에서 나는 물냄새 / 쑥댓잎 흔드는 바람소리 휘젓고 다니다가 / 비겁한 지식에 기대어 삶을 망쳤다고 / 여자마저 놓쳐버렸다고 투덜대며 / 젖은 발걸음 돌려세우는데 / 절 집 마당가에 웅크린 모감주나무 / 긴 회초리가 뒷등을 후려친다 //-필자의 시집 『카페 물땡땡』중에서「모감주나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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