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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은 ‘버리는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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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은 ‘버리는 카드..?’
[기고] 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⑥
  • 강진욱
  • 승인 2020.07.08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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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는 또 ‘안기부 공식’ 대로, 이한영이 ‘로열패밀리’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을 내 북 지도부의 미움을 샀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전후 상황을 뒤바꾸는 곡해다.

『(이한영은) 김 씨 일가의 사생활도 폭로했어요. 그리고 96년 ... 수기가 출간됩니다. 책 제목은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 잠행 14년>. (앵커: 언론에 특종 보도 소재를 쏟아내면서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있었겠지만 북한에는 상당한 눈엣가시가 됐겠는데요.) 본인도 상당히 불안해했어요. 안기부도 여러 차례 경고했고요.』(CBS 뉴스쇼)

이미 기자들이 그의 신분을 확인한 이상 ‘북한 로열패밀리’에 관한 책이 나오는 것은 필연이었다. 이한영이 책을 내지 않으려 했어도 언론사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내면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알고도 돈이 궁해 책을 내야만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이한영과 안기부의 불화설도 마찬가지다.

『(안기부가 이한영에게) 안전 가옥 제공하면서 여기 머무르라고 했는데, 수기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안기부의 삭제 요청을 거부하면서 안가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후 거주하던 분당 아파트도 채권자 손에 넘어가면서 가족들을 처가에 보내고 자신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친구 집 전전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다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선배 집 한 칸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가끔 들르며 지내던 중 피살됐습니다.』(CBS 뉴스쇼)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 잠행 14년』은 안기부 검열을 거쳐 <동아일보>에서 1996년 출간했다. 이한영은 이 책에서 자신이 납치돼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대로 썼다면 그런 내용이 들어갔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는 안기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동아일보> 측이 가감삭제하면서 책을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 때문에 이한영이 안가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또 이 책 때문에 이한영이 위험에 빠졌다는 주장 역시 사건의 현상과 본질을 뒤바꾸는 것이다. 이미 14년 동안 미 CIA와 안기부가 이한영에게서 쪽쪽 빨아먹은 정보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면 그것이 북측에 위협이 되나? 납치돼 온 애가 안기부 시키는 대로 안 할 도리가 있나? 북측이 그걸 몰라 이한영에게 보복을 한다? 이 책은 안기부가 - 그리고 미 CIA가 -‘이한영의 최후’까지 대북공작에 - 남녘 주민들에게 대북 적대감과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심리공작에 - 이용한 증거물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 씨가 안기부의 특별관리대상으로 분류됐으면서도 안기부가 최근 들어 신변도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을 정도로 버림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한겨레신문> 1997.2.17)

[검찰의 일선 수사관계자는 “이 씨는 자신이 성례림의 조카라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녔다”며 “안기부로서도 (이 씨의) 정보가치가 약해진데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일으켜 관리대상에서 사실상 제외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한겨레신문> 1997.2.18)

안기부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1급 탈북자’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지 않는다. 책 출간 관련 불화 따위는 그런 이유가 될 수 없다. 이한영에 경호를 중단한 것은 ‘이한영 제거 공작’이 결행 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좌초 사건 때부터 이한영이 불안해했다는 CBS 뉴스쇼의 주장도 가당찮은 ‘안기부 각본’일 뿐이다. 잠수함 훈련하다 좌초된 사건을 두고 무장공비 남침이라고 떠벌리는 수작에 불과하다.

『특히 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있었죠. 그리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까지 한국으로 왔고요[1997년 4월]. 그러자 이한영은 “북한의 첫 보복 대상은 내가 될지 모른다.”면서 더욱 불안해했습니다. 북한 특수공작원이 이한영의 행방을 쫒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네. 공작원들이 이때부터 그 아파트 단지를 차량으로 배회하면서 답사했어요.』(CBS 뉴스쇼)

황장엽의 망명에 대한 보복 운운은 더 가당찮다. “[십중팔구 정보사 소속] 공작원들이 아파트 단지를 차량으로 배회하면서 답사”한 때는 황장엽 망명 소식이 공개되기 약 열흘 전이다.

[범인들은 북한의 황장엽 비서의 망명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이 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었던 흔적이 ... 이 사건은 황 비서 망명 전부터 계획된 것 ... 김장현 씨의 부인 남상화(南相華. 42) 씨는 경찰 진술에서 “... 사건이 나기 10일 쯤 전 거주자를 확인하는 ‘이상한’ 전화가 있었다”고 ... 전화를 건 남자는 “여기는 전화국이다. 그곳이 702-53XX 맞느냐”고 ... 아파트 동 호수와 전화받은 사람의 이름, 김장현 씨와의 관계, 다른 동거인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 “왜 그런 것까지 묻느냐”고 짜증을 내자 상대방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고 ... 경찰은 이 당시 전화를 건 사람이 사건 당일 이 씨의 귀가 여부를 전화로 확인한 범인과 동일 인물로 보고 ... 남 씨는 이 전화를 받은 것이 사건 발생 10일 쯤 전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경찰은 황 씨가 망명을 요청한 12일보다 7일 앞선 지난 3일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사건 10일 전 거주자 확인 전화”<매일경제> 1997.2.18)

이한영 살해 공작이 최후 실행 단계에 들어갔음을 드러내는 첫 징후가 바로 의문의 전화였다. 그 전화가 처음 걸려 온 날이 “사건 발생 10일 쯤 전” “황장엽이 망명을 요청한 12일보다 7일 앞선 지난 3일 전후”다. 그렇다면 황장엽 망명 공작 마무리 단계에서 안기부가 그의 망명 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기 약 10일 전, 이한영 살해 공작도 실행 단계로 전환됐다는 말이다.

결어

앞에서 이한영 사건 목격자들에게 날라 온 협박편지를 보낸 조직이 안기부나 정보사 대공조직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유가 있다. 1960년대 <동아일보> 기자들을 두들겨 패고 <동아방송> 간부의 집 대문을 폭탄으로 날려버린 자들, 1980년대 김영삼 민추협 의장과 문익환 목사 집에 몰래 들어가 문서를 훔치고, 국회의원 양순직과 김동조를 두들겨 패고 이를 부러뜨린 자들, 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일꾼들을 테러하고 강간한 자들이 바로 정보사 조직원들이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이 1980년대 ‘내수공작(테러) 전성시대’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시절의 안기부는 박정희 시절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시절의 안기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안기부가 김영삼 정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악명 높은 ‘안기부’라는 이름조차 바꾸지 않은 것을 보면, 김영삼 정권을 잉태한 3당 합당 때 ‘안기부 존치’ 내약(內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은 추락하는 비행기’라고 떠벌린 때가 1995년 12월 1일이었다. 안기부가 이한영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고 그와 <월간조선>을 붙인 뒤 성혜림 자매 망명 공작에 급피치를 올릴 때였다.

당시 안기부는 김일성 주석 사망(1994.7.8)에 이어 끔찍한 한해를 당한 북측이 곧 망할 것이라고 보고했을 것이고, 멍청한 청와대 권력의 묵인 아래 북녘의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망명 공작을 가속화했을 것이다. 그 전리품들이 바로 잠비아 주재 3등 서기관 현성일 부부(1996.2 망명)와 황장엽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1997.4.20 서울 도착)였다. 또 성혜림 자매를 데려오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의 청와대와 안기부가 이한영을 시켜 성혜림 자매의 망명 공작을 펼 때인 1996년 초는 우성건설과 한영건설 부도를 시작으로 우리 경제에 암운이 드리울 때였고, 저들이 황장엽 망명과 이한영을 살해 공작에 여념이 없던 1997년 2월은 한보 사태를 시작으로 국가부도의 서막이 오르는 때였다.

그렇게 청와대와 안기부가 대북 적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곧 북한을 집어먹을 것 같은’ 망상에 도취돼 있는 동안 미국 자본은 서서히 우리 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엉뚱한 데 눈이 멀어 발등의 불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1996-1997년 2년 동안 김영삼 정권이 보인 대북적대의 언동은 미국이 조작하는 분단체제 아래서 키워진 위정자라는 부류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무리들인 지 여실히 보여줬다. 국가의 안전을 지켜야 할 자들이 동족인 북녘에 대한 적의에 눈이 멀어 국가의 재난을 방치한 것이다. ‘헬조선’의 문을 연 것은 바로 이 자들이었다. 지금은 다를까?

불과 3년 전, 이한영이 살해된 지 꼭 20년이 지난 2017년 2월,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대공(대북) 조직이 보인 행태는 2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 내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을 납치하다시피 해 데려오고(2016.4), 두 달 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태영호를 불러들인(2016.8) 뒤 대통령 박근혜에게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박근혜가 비서관회의에서 ‘북한 점령 후 시장화 방안’을 지시한(2016.10 ‘안종범 수첩’) 지 넉 달 뒤 김정남이 살해됐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김정남의 이종사촌(형)으로 김정남이 살해되기 직전 이한영의 이름이 자주 거론됐고, 김정남이 살해된 직후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한영을 살해한 조선(북한)의 ‘최순호 공작조’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가짜뉴스!

이한영 살해 배후를 그렇게 조작해 놓은 터라 똑같은 작업방식(modus operandi)으로 벌인 사건의 배후를 그렇게 몰고 가려 했을 것이다.(이한영과 김정남 살해가 동일 조직의 소행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김정남 사건의 조작’에 대해서는 졸고 「[김정남 사건] 조작+억지+허위의 ‘꼴라보’ : 박근혜 정권, 정보당국과 언론의 공모」 <진실의 길>(2018.8.13) / 유튜브 「[초하사랑방 대담]“김정남 살해 ‘박근혜 국정원’+CIA의 소행이다!”」  (2020.6.19) 참조)

적어도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이런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행정부(청와대) 권력은 외세(미국)와 연결된 ‘군사-정보 권력’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 숨은 권력은 자신들과 결이 다른 이들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은 몸을 사릴 것이다.

그러다 외세와 결탁해 동족을 적대시하고 자국민의 일부마저도 적으로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들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이 ‘숨은 권력’은 ‘북한의 테러’를 빙자한 또는 그와 유사한 국가조작사건들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이 ‘숨은 권력’을 들어내지 못하는 ‘국정원 개혁’은 말짱 도루묵이다).<끝>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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