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潛龍)은 물 밑에서 하늘로 오르기를 기다리는 용이다. 보통 웅지를 품고 도약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나라 정치 무대에서는 대권, 즉 대통령을 꿈꾸며 청와대 입성을 노리는 유력 정치인을 지칭하는 대명사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자천타천으로 잠룡이라 불리웠으나, 실제 그 뜻을 이룬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그 과정이 어렵고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변화무쌍하다는 얘기다.

시민활동가, 인권변호사, 첫 3선 서울시장 등 드라마틱만 삶을 살아온 박원순 시장도 차기 대권을 노린 잠룡 중의 하나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의 죽음마저도 극적이었다. 갑작스런 실종에 이은 사망소식은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에 마지막 길 앞에는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넘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그가 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모양새다.

여기서 가만, 박원순 시장이 생을 마감한 곳이 어디인지 짚어 보자.

한양도성 성곽길의 와룡(臥龍) 공원이다. 와룡이 뭔가. 길게 누워 있는 용으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을 말한다. 중국 삼국시대 때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촉나라 제갈량의 호가 와룡이기도 하다.

박 시장이 이런 의미를 알고 그의 마지막 장소로 이 장소를 택했을까. 오직 박 시장만이 알겠지만 그가 살아온 삶을 사뭇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75학번인 그는 유신 정권 치하에서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사법시험을 거쳐 1980년 검사로 임용됐지만 사형 집행 현장을 참관하지 못해 스스로 그 직을 버렸다. 그 푸르던 청년 시절의 그의 기개와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는 이후 1986년 고 조영래 변호사 등과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에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1년 서울시장 취임 뒤 3연임을 하는 동안 이른바 '박원순표 정책'이라 불리는 일을 해냈다.

서울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를 지키느라 중앙정부와 대립하기도 했고, 시청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청소부 아줌마들의 공무직 전환을 위해 기존 기득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재개발 대신 청년주택· 행복주택 등의 공공주택 보급을 통한 공급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잘 포장해서 드러내는 것보다는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일에 팔 걷고 나섰다는 게다.

지난 며칠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다산콜에 박 시장의 죽음을 확인하는 전화가 많았다고 한다. 시민들로서는 그만큼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다른 잠룡들에 비해 어젠다를 만들고 자기 세력을 규합하는 데에는 미숙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 여론 조사 지지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는 더 큰 꿈을 준비하는데 몰두해서다.

박 시장은 왜 스스로 그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 무엇이 그를 그토록 압박했는지. 아직은 모든 게 물음표 투성이다.

다만,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그의 유언은 이제 우리에게 숙제가 되었다.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바를 우리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박원순 시장의 발인을 앞두고 있다. 영영 우리 곁을 떠난다. 그의 명복을 빈다.

혹 기회가 되면 와룡공원에 올라 그의 마지막 행적을 쫓아 보련다. 길게 누워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를 지켜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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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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