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0일 100세로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의 유해가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미래통합당 등 보수진영은 백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안장하지 않는 것은 ‘홀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충원 안장이 적절치 못하다며 보훈처장을 상대로 현충원 안장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양자가 이런 상반된 주장을 펴는 이유는 그의 삶과 공과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보수진영은 백 장군의 6.25 당시 전공을 들어 ‘전쟁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반면, 민족진영은 그의 간도특설대 경력 등을 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양측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 특히 친일행적과 관련된 사안은 백 장군 자신이 쓴 회고록 등에 자세히 나와 있다. 또 생전에 그가 특별히 이에 대해 반박한 적도 없어 사실 여부를 두고는 더이상 다툴 것이 없다.

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인들이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인들이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진보당 대전시당 등이 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故)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결정 취소를 주장하는 시민대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진: 진보당 대전시당 등이 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故)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결정 취소를 주장하는 시민대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선엽 회고록,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이이제이였다,  필자가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던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이같은 사실에 기초하여 2009년 백 장군을 군 부문의 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한 바 있다)

2. 국립묘지의 또 다른 명칭이랄 수 있는 국립현충원은 서울과 대전 두 곳에 있다. 1955년에 ‘국군묘지’로 출발한 동작동 서울현충원은 조성된 지가 오래돼 대부분의 묘역이 이미 만원이어서 더이상 묘를 쓸 자리가 없다. (물론 이장해 간 자리에 빈 묫자리가 다른 묘역에 몇 군데 있기는 하다) 만약 백 장군이 몇 년 전에 타계했다면 서울현충원에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타계한 그의 후배 장군들 가운데 더러는 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공간문제로 장군묘역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보수진영에서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공세이거나 아니면 서울현충원의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3. ‘민족의 성지’요, 국가가 관리하는 국립현충원에는 어떤 분들이 묻혀야 할까?
관련규정이 있겠지만, 굳이 그걸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고 본다.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헌신한 분들이 묻히는 것이 당연지사다. 따라서 그분들은 한 줌의 허물도 없는, 지고지순한 인물이어야 마땅하다. 만약 현충원 안장자 가운데 반민족, 반인륜, 반사회적 범죄자나 가짜유공자가 묻혔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이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나 호국영령들에게 누가 됨은 물론이요, 현충원의 이름을 더럽히는 처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오명을 얻었거나 공과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인물은 현충원 안장이 온당치 못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진보간의 진영다툼이나 특정 정권을 향한 정치공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현충원 설립.운영의 본래 취지에 얼마나 충실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현충원 내 친일전력자 묘지 철거(이장)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애당초 부적격자를 안장한데서 비롯됐다. (물론 안장 당시에는 이들의 친일행적이 거론되거나 논란이 되진 않았다) 최근 민주당의 김홍걸.이수진 의원은 현충원 내 친일경력자 묘지 파묘법을 발의했다. 최종 결과는 단언할 수 없지만, 만약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이장이 불가피한 셈이다. 몇몇 논란의 인물 때문에 ‘민족의 성지’인 현충원이 시비의 대상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4. 서울과 대전에 있는 현충원의 묘역은 크게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대통령 포함), 전몰군경 묘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특정 직군 출신들의 묘역이 하나 있다. 바로 장군묘역이다. 일반사병의 묘는 크기가 1평인 반면 장군 묘는 8평이다. 현충원에 호국용사나 전몰군경의 묘를 조성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장군 출신들의 묘를 조성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특혜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친일논란이 일고 있는 인물들의 대다수는 장군묘역에 묻혀 있다.

최근 미래통합당의 김성원 의원은 국회의원을 현충원에 안장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비판과는 별개로 법안 발의는 충분히 나올 법한 측면도 없지 않다. 단지 장군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충원 안장이 가능하다면 국회의원들이 현충원에 묻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 이런 식이라면 장·차관이나 판·검사 묘역을 조성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국립대학 총장들이라고 묻히면 안된다고 할 근거도 없다. 또 장군들의 공로가 이들보다 크다고 분명히 단언하기도 어렵다.

미국 앨링턴 국립묘지에는 남북전쟁을 비롯해 미국이 참전한 각종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들이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크기의 묘에 묻혀 있다. 예비역 장성들을 위한 별도의 장군묘역은 없다. 이 경우에 비춰보면 현충원에 장군 출신들 위한 장군묘역을 조성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 하다. 장차 합리적인 논의와 절차를 거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장군묘역은 철거하는 것이 현충원의 합리적 운영, 형평성 차원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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