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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칼럼] 그리움이 머물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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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칼럼] 그리움이 머물던 자리
  • 김병호 논설주간
  • 승인 2020.07.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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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논설주간.
김병호 논설주간.

새벽에 일어나 장작불 지펴 막내아들 밥 지어 도시락에 하얀 쌀밥 꾹꾹 눌러 싸주시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몹시 그립습니다.

무쇠 솥에 가장자리는 쌀, 주변은 보리쌀로 밥 지어 양은 도시락에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았는지 어떨 때 는 밥이 떡처럼 덩어리가 되어 먹어도 쉽게 줄지도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비포장도로 20리길을 자전거로 통학하면서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길거리에 마중 나와 우두커니 서 계시던 아버지, 너무 그립습니다.

부모님 무덤에 통곡하며 오열해봐야 모습은 오간데 없고 여윈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칠 줄 모릅니다.

이제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에 멀지 않아 부모님 곁으로 갈 운명이고 보니 살아온 궤적이 너무 처량할 뿐입니다.

당시 면장 아들과 양조장집 아들은 까만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어머니는 없는 돈 쪼개가며 막내아들 기 죽을까봐 까만 운동화 한 켤레 사줬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걸어보니 발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신던 운동화가 떨어질까 봐 양손에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 배가 고프면 논둑 옆에 곱게 자란 찔레나무 순을 꺾어 먹기도 하고 밭 부근 뽕나무에 달린 ‘오디’를 따 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줄행랑을 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생존해 계실 때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고 길 가다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지금 제가 허리가 아파 그때 어머니처럼 길 가다 주저앉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속 썩이면, “야 이놈아! 너도 나중에 자식 길러봐라. 그때 어미 맘 알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아버지 밥상을 보면 쌀밥은 아들 도시락 싸주고 아버지는 쌀과 보리가 혼합된 밥을 드셨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세상 살아보니 아버지 드실 쌀이 없어 보리와 혼합된 밥을 드신 것을 알았습니다.

보릿고개 넘을 때면 ‘초근목피’ 하시던 분들도 여러분 봐 왔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성장하면서 그 과정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때 부모님은 그나마 형편이 좋아서 아들 교육이라도 시켰지만 국민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으로 더 이상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한반에 절반이상 정도였습니다.

어쩌다가 돼지라도 한 마리 잡는 날이면 그 마을 잔칫날이고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고깃덩이 몇 개 떠 있으면 그날은 운 좋은 날이며, 국물 맛은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꿀맛 같았습니다.

그런 고기를 어머니는 막내아들 배고파 허기질까봐 간장에 조려서 도시락에 밥과 함께 반찬으로 싸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오늘 돼지갈비를 구워먹으면서 어머님이 싸주시던 고기 생각하며 눈물과 고기를 같이 먹습니다.

불과 50년 전 일입니다. 까만 운동화 대신 너무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손수 운전도 하고 다닙니다. 쌀밥 먹고 자란 막내아들이 대학도 졸업하고 글쎄 소고기도 구워먹고 다닙니다.

어머니! 너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 묘소에 그렇게 귀하던 고기를 놓고 갑니다. 어머니 묘소에 하얀 쌀밥도 놓고 갑니다. 어서 일어나서 배불리 드세요.

어머니! 그리움이 머물던 자리에 그렇게 키우고 사랑했던 막내아들이 통곡하며 갑니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갑니다. 3살 난 손녀와 풍선 축구하러 자리를 떠납니다.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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