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별’이라는 경영자는 누구나 선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얼마나 허무한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경영자의 일생을 매미의 그것에 비유하는 것은 그 허무한 마감 때문일 것이다.
긴긴 애벌레시절을 천신만고로 견디고 자라 날개를 달았어도 매미는 겨우 한 여름을 살고 죽는다. 아무리 온 여름을 노래하며 살았어도 그 일생의 마감은 지극히 짧고 허무할 뿐이다.

경영자 중에는 매미와 같은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엔 ‘영원한 해병’ 같은 경영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신분의 보장은 철저하게 쓸모와 업적에 의해 좌우된다. 통치기관인 이사회가 허수아비 꼴인 우리네 소유경영체제에선 경영자 목숨이 ‘파리 목숨’이다. 소유경영주 눈 밖에 나면 임기와 상관없이 끝장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법이나 원칙, 도리가 통하지 않는다.

경영자 자리는 최고든 초임이든 보통 수십 년 각고의 노력 끝에 치열한 승진경쟁을 뚫고 차지한다. 경영자 자리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오죽이나 높고 좁으면 ‘별 따기 경쟁’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는 어이없게도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조차 걸리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과 군 장교, 은행의 임원 등 사회 어느 기관의 고위 간부도 경영자처럼 실적이 부진하다 해서 허무하게 쫓겨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물러난 후에도 체면 유지에 실속 있는 자리로 낙하산이라도 타지만 기업의 경영자는 퇴직하는 그날로 ‘화려한 백수’라는 <화백>이 될 뿐이다. 사회 어느 제도와 기관을 들여다봐도 저들처럼 재직 중에 신분보장이 허술하고 퇴직 후 생계보장이 불안한 데가 없다.

누군가 ‘기업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자!’고 호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 경영자들을 존중하자!’는 구호로 바뀌어야 한다. 경영자들의 지위와 장래를 먼저 안정시키고 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고서는 좋은 경영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존중 받는 경영자가 많아야 기업이 좋은 경영을 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진실이라면 경영자를 가신쯤으로 여기는 기업 풍토는 기업을 망치는 것이다

청백리의 가난한 말년은 칭송이라도 받지만 청렴하게 일에만 매달리다 퇴직한 경영자의 말년은 막막하고 힘겹다. 특히 어중간한 나이에 그것도 갑자기 퇴직당한 경영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선, 중역으로 새 직장을 잡는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스카우트니 헤드 헌트니 그럴 듯해 보이는 재취업의 장치가 있다지만 실제로는 별 소용이 없다.

뛰어난 경영능력이나 특수한 기술을 인정받지 않고서는 타 기업에 중역으로 발탁되기란 지난하다. 기업마다 임원으로 승진하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후보 간부들이 줄을 서고 있는 실정인데 외부에서 발탁한다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이다. 설사 새 기업에 둥지를 튼다 해도 우리네 기업생리상 신뢰받는 중역으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재취업에 실패할 경우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잊고 몸을 낮춘 다음 살아갈 궁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실화나 도산 때문에 퇴직한 경우는 퇴직위로금은 고사하고 규정에 의한 퇴직금이나마 제대로 받는다는 보장이 확실치 않다. 정상적인 임원퇴직금이란 게 밖에서 보통 상상하기보다 적다.  때문에 많지도 않은 퇴직금을 야금야금 헐어 모자라는 생계비에 보태노라면 바닥이 나는 건 정말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닥친다. 

상황파악이 예민한 그들은 짓누르는 생계부담의 무게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자금을 바짝 뒤따라오는 암담한 그림자를 바라보며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들은 그 위협적인 그림자에 쫓겨 분수에 맞게 생활하자며 굴리던 승용차를 팔고 골프와 외식을 중단하며 종국엔 큰집을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등 ‘낮춰 살기’의 길을 간다.

그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긴 하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길이다. 그때 그들은 재직시절 왜 궂은날에 대비하여 충분한 건초를 말려 쌓아 두지 않았든가 후회하거나 또는 재직 중에 적당 적당히 떳떳치 못한 돈이라도 챙겨 실속을 차릴 것을 하고 아쉬워하게 된다. 힘없는 정의란 게 힘 있는 불의만 어림없다는 현실에 화가 나고 슬픈 것이다. 그 고통은 재직시절 일하느라 치렀던 것보다 훨씬 쓰라리고 황당해서 떨어진 별들을 시도 때도 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기업이란 임원이 정직하고 유능하게 일하려면, 가정보다 회사를 우선해야 하며 개인적 안일과 쾌락을 접고 이재와 치부를 멀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경영자가 퇴직 후 궁색하게 사는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이상하고도 불가사의한 것은 퇴직 경영자보다 퇴직 공무원이나 장교, 은행 임원이 더 부자이고 더 풍족하게 사는 것이다.

기업의 것이긴 하지만 돈 버는 일에 평생을 바친 기업 경영자가 보수에만 의존하여 청렴하게 살면 살수록 그 말년이 곤궁하며 여생이 고달프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기업과 경영자가 함께 대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다.

경영자는 장래가 불안할수록 더욱 벼락출세와 무리한 자리 유지와 부정한 치부에 집착하게 된다. 불안은 희망과 신념을 부패시키기 때문에 손님 같은 경영자는 자신의 장래를 기업에 걸지 않으며 아무런 비전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경영자들이 많을수록 그 기업은 발전이 더디고 병들기 쉬워서 경영자의 노후 설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경영자의 경영철학이나 비전의 유무에 따라 허무한 퇴직과 궁색한 여생을 살게 될지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다. 유능하면서도 깨끗한 경영자가 기업 발전의 필수요건이라면 기업주는 마땅히 경영자가 자신과 가정의 장래에 불안을 품지 않도록 정당한 인사를 통해 신분을 보장하고 재직 중 땀 흘린 공로만큼 퇴직 후 여생을 보상하는데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제반 조치를 강구해 제공해야 한다.

기업마저 경영자를 가치가 있는 동안만 써먹다 쓸모가 없다 마음대로 버리고 그들의 퇴직 후 삶이 얼마나 고달플 지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로는 너무나 허무하고 가엽다. 그러고서 그 기업의 말로가 허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착각이다. 경영자가 유감없이 명예롭게 퇴직하여 생계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며 떠난 회사를 늘 그리워하고 발전을 축원하면서 기꺼이 그 회사 주식을 살 수 있을 때 그 경영자의 일생은 멋있고 행복하게 마감되는 것이다. 그런 게 다 기업한테도 이롭고 보람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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