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중앙도서관, 6천900여 점 수집해 디지털화 작업 중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한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정전협정의 제1조 1항은 경기 파주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는 예로부터 물류 중심지로 번영했으나, 이제 냉전의 최전선으로 DMZ와 민간인통제선을 갖게 된 것이다.

파주중앙도서관은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디지털기록관의 문을 열고 파주와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고 있다.

특히, 판문점을 포함한 DMZ 일대의 냉전문화유산을 평화유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 등 해외에서 자료 수집 사업을 해왔다.

현재 사진과 문서, 영상 등 6천900여 점을 수집해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전협정일을 하루 앞둔 26일 연합뉴스는 파주중앙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기록물을 살펴봤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진은 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상이다.

대성동 마을은 정전협정에 따라 DMZ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민간인 거주 마을이다.

사진 속 대성동 마을은 한국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주민들이 병원 대신 의무대에서 군의관의 진료를 받는다는 것과 마을 공회당에 일반적인 크기와 비교하기 어려운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는 것뿐이다.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모습. 마을 공회당의 대형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모습. 마을 공회당의 대형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의관 진료받는 대성동 주민=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 마을 주민이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의관 진료받는 대성동 주민=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 마을 주민이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주민의 생활상= 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 마을 주민들이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주민의 생활상= 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 마을 주민들이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주민의 생활상=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으로 주민들이 콩을 털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주민의 생활상=1967년 주한미군이 촬영한 대성동 마을의 생활 모습으로 주민들이 콩을 털고 있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눈길을 끄는 사진은 DMZ 밖에도 있다.

1980∼1981년 파주군수와 함께 했던 카메라에는 냉전의 최전선 파주 지역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열린 반공단합대회= 한국반공연맹 파주군지부와 학생들이 반공단합대회를 열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냉전의 최전선에서 열린 반공단합대회= 한국반공연맹 파주군지부와 학생들이 반공단합대회를 열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멸공'이라고 적힌 머리띠와 '도전하면 박살낸다', '적화망상 포기하라'가 적힌 띠를 두른 군민과 학생들이 단상에서 발언을 이어간다.

사진 속 왼쪽의 '국가보위비상대책 절대지지 협력하자'라는 문구는 이 단합대회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열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뒤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했다.

국보위는 냉전 구도를 이용해 사실상 국무회의를 통제하고 국가행정기능 및 헌법기관의 권능을 무력화시켰던 임시 행정기구다.

냉전 구도는 DMZ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파주 지역 주민들에게 반공단합대회를 열게 했던 것이다.

파주지역 봉사활동 나선 주한미군=경기도 파주지역의 주한미군 장병이 주민들의 도색작업을 돕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주지역 봉사활동 나선 주한미군=경기도 파주지역의 주한미군 장병이 주민들의 도색작업을 돕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페인트 붓을 든 흑인 병사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도 눈길을 끈다.

자유로운 복장의 주한미군 병사들이 민가 외벽의 도색작업을 돕고 있다.

서부전선의 요충지인 파주 지역에는 정전협정 직후부터 곳곳에 주한미군 기지가 많았다.

대표적인 곳은 1953년 임진강 이북 민통선 지역에 자리한 캠프 그리브스다.

이곳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주한미군 2사단 101공수 506보병연대가 주둔했다.

지난 2004년 이들 중 절반이 이라크로 파병되고, 절반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캠프 그리브스는 한국 정부에 반환됐다.

미군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이곳은 이후 관광지로 개발됐으며,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나머지 미군기지들도 2000년대 대부분 반환됐으며, 현재 경기도와 파주시는 캠프 에드워드·자이언트·게리오웬·스탠턴·하우즈 등의 개발 사업을 계획 중이다.

TV가 귀하던 시절의 접경지 풍경=흑백 TV를 군부대 위문품으로 들고 온 당시 권귀태 파주군수(오른쪽)와 1군단 김윤호 중장(왼쪽에서 두번째)이 TV를 앞에 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TV가 귀하던 시절의 접경지 풍경=흑백 TV를 군부대 위문품으로 들고 온 당시 권귀태 파주군수(오른쪽)와 1군단 김윤호 중장(왼쪽에서 두번째)이 TV를 앞에 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확한 장소는 현재 확인할 수 없으며, 촬영시기는 1980∼1981년으로 추정된다. 2020.7.26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위장무늬로 도색된 벽 앞에서 단정한 복장의 남성 4명이 흑백 TV를 앞에 두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은 금성(현재의 LG)의 '샛별 텔리비젼'을 군부대 위문품으로 가지고 온 당시 권귀태 파주군수 일행과 1군단장 김윤호 중장이 기념촬영하는 모습이다.

군단장과 군수가 TV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은 당시 최전방에서 TV가 매우 귀한 가전제품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로부터 40여년 뒤인 2020년 현재, DMZ에서 약 8㎞ 떨어진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양산하며 프리미엄 TV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냉전의 중심에서 프리미엄 TV 생산의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접경지 파주가 냉전에서 빠져나와 점차 평화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글 = 임병식 기자, 사진 =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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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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