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탈세·뇌물 세무대리인 방치..감사원 지적사항 퇴직 앞두고 세무사 '투잡'..부가세까지 환급 '먹튀'

국세청 탈세·뇌물 세무대리인 방치..감사원 지적사항 퇴직 앞두고 세무사 '투잡'..부가세까지 환급 '먹튀' [비즈니스워치] 임명규 기자 seven@bizwatch.co.kr

최근 드러난 국세청 비리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연급 조연'이 있다. 바로 세무대리인(세무사와 회계사)이다. 그들은 기업체의 청탁을 받고 뇌물을 국세공무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납세자를 대신해 세금 신고를 도와줘야 할 세무사나 공인회계사들이 '뇌물 브로커'로 둔갑한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세청에 대한 감사를 통해 세무대리인을 중심으로 한 비리의 사슬을 밝혀냈다.

◇ 탈세 대리인 절반 '묵인'

복잡한 세법을 감당하기 어려운 납세자에게 세무대리인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세무대리인은 약 2만여명이다. 경제활동인구(2600만명)를 감안하면 세무대리인 한 사람이 1000명이 넘는 잠재적 납세자를 책임져야 한다.

만약 한 명의 미꾸라지 같은 세무사가 납세자의 탈세를 도왔다면 다른 납세자들까지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납세자의 탈세 사실이 적발되면 조력자인 세무대리인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 징계위원회에 넘겨 처벌을 요구한다.

그런데 국세청이 탈세에 나선 세무사들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억원 이상 세액 탈루에 가담한 세무대리인 37명은 아무런 징계 조치도 받지 않았다. 이는 전체 징계대상 가운데 절반에 달한다.

국세공무원에게 뇌물을 전달한 세무대리인 2명과 탈세를 도와준 7명은 버젓이 국세청 소속 민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뇌물과 탈세 경력이 있는 세무대리인들이 납세자의 중대한 세금 문제를 놓고 국세청에 침투해 심사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별다른 확인도 하지 않아 감사원의 호된 지적을 받았다.

◇ 퇴직 앞두고 개업 '뒤통수'

세무서에서 명예퇴직을 앞둔 국세공무원들은 저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가장 빈번한 행선지는 자신이 몸 담은 세무서 관내에서 세무사 사무소를 개업하는 것이다. 지역 사업자의 세금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다, 국세공무원 '짬밥'으로 취득한 세무사 자격증도 있으니 새출발에는 안성맞춤이다.

국회에서는 세무서 출신 세무사의 '전관예우'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세무사 개업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일부 세무공무원들은 욕심이 과했다. 퇴직도 하기 전에 공무원 신분으로 사무소를 차리고, 수십년간 몸 담아온 국세청으로부터 부가가치세까지 빼먹고 나왔다. 공무원의 영리 목적 '투잡'은 엄연히 금지돼있는데도 편법이 유행처럼 번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세무서 공무원 6명이 퇴직 전에 사무소를 개업했다. 북부산세무서에서 근무하던 한 공무원은 2012년 퇴직하기 석 달 전부터 부동산업으로 사업자등록 신청을 하고, 180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환급 받았다. 퇴직 후에는 세무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금천세무서 출신 공무원은 같은 수법으로 2700만원의 세금을 돌려받고, 서인천세무서에서 퇴직한 공무원도 140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가져갔다. 서초세무서와 고양세무서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속출했다. 해당 세무서에서도 현직에 있는 직원의 개업 여부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거나, 알고도 눈 감아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지난 달 30일 세종청사에서 지방국세청장들을 불러 모아 공직 기강을 바로잡자고 주문했다. 대기업 세무조사 결과는 국세청 본청 감사관실에서 다시 한번 정밀 검증하기로 했다. 국세청 간부가 대기업의 로비를 받고 세금 추징액을 낮춰주는 악습을 끊겠다는 의미다.

세무대리인을 통한 뇌물수수와 탈세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임 청장은 "앞으로 세무비리 사건에 연루되거나 탈세를 조장하는 세무대리인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사정당국의 집중 포화 속에 국세청 스스로 비리 척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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