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 '기획미투' 보도 당사자 강진구 기자가 밝힌 기사 삭제 전말

강진구 "경향신문은 박재동 화백 가짜 미투의혹 기사 삭제에서 보여지듯 현재 소위 ‘후배권력’에 의해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다... 후배권력에 맞설 유일한 힘은 독자권력이다. 부디 애정어린 죽비로 경향신문이 다시 정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

경향신문이 지난 7월  29일 오전 보도했다 삭제한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
경향신문이 지난 7월 29일 오전 보도했다 삭제한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지난 7월 31일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에 매우 의미 있는 답글이 하나 달렸다. 바로 [단독 박재동 화백 치마 밑으로 손 넣은 사람에 또 주례 부탁하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가 바로 삭제당해 버린 경향신문 탐사전문 강진구 기자의 답글이다.

강 기자에 따르면 한때는 진보계열로 칭해졌던 경향신문의 내부사정이 말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후배권력'으로 인해 편집국 간부는 물론 경영진도 손을 못 쓰는 위기에 처해있는 모습이다. 그는 김민웅 교수를 향해 자신이 29일 써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된 박재동 화백 '기획미투'를 두고 "김 교수의 페이스북을 통해 큰 힘을 얻는다"라며 서두를 꺼냈다.

앞서 강 기자는 지난달 29일 자신이 쓴 박재동 화백 관련 기사가 SNS 등으로 확산하면서 금방 포털 인기 기사 상위에 올랐지만 이날 오전 10시쯤 갑자기 삭제됐다. 강진구 기자는 당시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자세한 삭제 경위는 모른다"라면서 "오전 6시쯤 해당 기사를 출고하고 지방 출장 중인데 오전 10시쯤 편집국장이 전화를 걸어, 후배들이 찾아와 기사에 '2차 가해' 우려가 있다고 문제 제기해 기사를 삭제해야겠다고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편집국 관계자는 이날 오후 "이번 기사가 성폭력보도준칙 기준에 비춰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삭제했다"라고 했다. 이후 강 기자는 "기자의 본분은 진실을 찾아 보도하는 것이고 미투 운동도 진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라면서 "구체적인 팩트(사실관계)에 기반한, 피해자에 대한 합리적 의심까지 '2차 가해' 우려라고 하면, 미투를 빙자한 언론 탄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강 기자는 김민웅 교수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장문의 답글을 달았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큰 힘을 얻는다"라며 "경향신문은 박재동 화백 가짜 미투의혹 기사 삭제에서 보여지듯 현재 소위 ‘후배권력’에 의해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다. 오죽하면 ‘조중동경’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음에도 위기의 심각성을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강 기자는 "사내 게시판에 여러차례 문제를 제기해봤지만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고참기자들은 공연히 후배권력에 저항해봐야 ‘꼰데’소리 듣고 나만 피곤해진다며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얼마 전 진혜원 검사 개인 페이스북 글에 경향신문이 집단성명으로 과잉대응할 때도 마찬가지다"라며 "조국사태 때 검찰수뇌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찍힌 검사에 대검이 감찰을 계획하고 있다면 ‘보복성 감찰’에 초점을 맞추고 취재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더불어 강 기자는 "하지만 경향신문 집단성명은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개인비리로 감찰을 받으면 그 자체로 보도 가치가 있다’였다"라며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 검사의 표적이 된 후배 개인이 상처를 받을까 봐 대놓고 말은 못 하고 사내게시판에 '집단성명에서 제 이름을 빼달라'고 소심한 저항을 해봤다. 그러나 유일하게 고참기자 1명이 동조의견을 밝혔을 뿐 아무런 반성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돌아온 것은 치졸한 보복이었다"라며 "진혜원 검사 사건 후 KT&G가 신약사기 보도와 관련해 제 급여에 가압류를 신청해온 사건이 이었다.이때 편집국장이 마찬가지로 경향신문 이름으로 집단성명을 발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하루 만에 취소했다"라고 했다.

강 기자는 "이유는 첫째가 법원에서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둘째가 후배들이 반대한다는 거였다"라며 "후배들이 반대한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죠. 진혜원 검사 사건 때 동료 고통 모른척한 사람 위해 회사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할 수 없다는 것 아니었겠나"라고 했다.

이어 "기자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법원이 내린 결정이라는 이유로 순응적 태도를 보인것도 그렇고 후배권력의 치졸함과 저열한 인식 수준을 확인한 씁쓸한 시간이었다"라며 "그후로도 후배권력의 전횡은 중단될 줄 모른다"라고 강조했다.

강 기자는 "KT&G 신약사기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편집국장은 후배들 의견이라는 이유로 취재 및 기사작성 권한을 후배기자들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라며 "KT&G와 소송 진행 중인 저는 소송 당사자기 때문에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거다. 알고 보니 ‘강진구는 소송당사자가 때문에 후속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KT&G 홍보실에서 개발한 논리와 동일하다"라며 한탄했다.

아울러 "안타깝게도 KT&G 신약사기 사건은 이런 연유로 경찰이 수사 진행 중임에도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경찰수사를 취재하시겠다는 후배기자님들에게 사건을 설명해주겠다고 제안한 지 두 달이 넘어가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강 기자는 "그 후로도 제가 발제한 기사는 번번이 ‘킬’이 되고 있다"라며 "검사 6명이 진범이 따로 있다는 피의자 진술을 무시하고 진범을 바꿔치기한 사연은 근 1년 동안 공을 들인 기사였고 윤석열 항명파동 정국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 얘기를 너무 길게 썼다’는 이유로 킬이 되고 결국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내보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재동 가짜 미투의혹 기사는 어차피 지면에는 반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아예 처음부터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전송했다"라며 "그랬더니 이번에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기사를 전송했다고 타박이다. 뭘 어쩌라는 건지. 이제는 후배권력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인터넷 기사마저 삭제당한 현 상황에서 기자로서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4년 전 제가 탐사보도팀장을 맡으면서 후배들과 ‘안봉근 대출외압’ 기사를 놓고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당신들은 완성된 기자가 아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라며 '후배권력 앞에서 큰 ‘실언’을 한 셈이다. 저는 그 사건을 계기로 후배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결국 탐사보도팀장을 내려놓고 지금은 혼자서 1인 탐사기자로 뛰고 있지만 지금도 그때 발언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당신들은 완성된 기자가 아니다’는 제 호통에 불만을 가졌던 후배는 그후 조국사태 당시 가장 많이 1면에 단독보도를 했다"라며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다"라고 꼬집었다.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진혜원 검사 건도 그렇고 가장 먼저 유희곤 기자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마지막으로 강 기자는 "아테네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내리는 광경을 보고 민주정 대신 철인정치를 고민한 플라톤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가 되는 요즘"이라며 "하지만 희망은 남아있다. 오래된 TV광고를 통해서도 밝혔듯이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이 오직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다. 후배권력에 맞설 유일한 힘은 독자권력이다. 부디 애정어린 죽비로 경향신문이 다시 정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한겨레' 시사만화가로 활동했던 박재동 화백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8년 2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당시 SBS에서 박 화백이 지난 2017년 5월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온 후배 작가를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박 화백은 SBS를 상대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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