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와 실의 교묘한 운용

수도 없이 강조해왔지만 ()이란 궤도(詭道).’ 따라서 허허실실도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은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전쟁에서는 각종 수단으로 적을 현혹하고 속인다. 허점이 있으면서도 튼튼한 척, 튼튼하면서도 허점이 있는 척한다. 또 허점이 있을 때 그 허점을 그대로 보여 적으로 하여 오히려 튼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고, 튼튼할 때 튼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적으로 하여 오히려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그 운용의 묘미란 실로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자치통감155에 나오는 역사적 실례를 보자. 북위 효무제 때인 532, 고환(高歡)은 이주조(爾朱兆)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허허실실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주조는 수용(秀容-지금의 산서성 삭현 서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환의 대군이 진양(晉陽)을 떠나 멀지 않아 수용에 이를 것이라는 급보를 받았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식으로 서둘러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고환의 군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고환은 이미 군영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었다. 헛물만 켜고 만 이주조는 맥이 빠졌다. 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염탐꾼으로부터 다시 지난번과 똑같은 소식이 전해져왔다. 의심하고 있을 수만 없는 노릇이라 이주조는 다시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 차례 긴장된 분위기가 이주조의 진영을 휩쌌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고환이 다시 출병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이주조 자신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대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이주조는 설마 또 같은 상황이 일어나겠느냐며 긴장을 풀었다. 며칠 후, 또 고환의 군대가 진양을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주조는 다시 허겁지겁 군을 정비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허탕이었다. 이에 이주조는 고환이 관중과 조정의 반대 세력에 맞서 병력을 집중하기 위해 고의로 허장성세하는 것, 이라 판단했다. 이주조는 고환에 대한 우려를 씻고 경계 태세를 완전히 늦추었다.

이주조가 경계를 늦추었다는 정보를 접한 고환은 자신의 계책이 성공했음을 알고 일거에 진군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때는 마침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이었다. 고환은 이주조가 분명 밤에 잔치를 베풀 것이라, 판단하고 새해 첫날 이주조를 습격하기로 했다. 533년 정월 초하루, 고환은 정예병을 이끌고 이주조를 습격했다.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던 이주조 군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이주조는 적홍령(赤谼嶺-지금의 산서성 이석현) 까지 도주했다.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직감한 이주조는 부하에게 자기 목을 베어 투항해서 상을 타라고 했다. 부하들이 참아, 하지 못하자 이주조는 자신이 타던 말을 찔러 죽인 후 큰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했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적과 나 쌍방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에서는 늑대다!’라는 거짓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전략 현상이다. ‘허허실실을 운용한 계략은 실제로는 늑대다!’의 현상이다. 이 계략을 어떻게 운용하고 간파하느냐는 책략가들이 중시하는 문제다. 적에 대해서는 허허실실을 구사하되 내 쪽에서는 한시라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 계책을 실시할 때는 있는 힘을 다해 적을 마비시키고 경계심을 늦추게 하여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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