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죄송합니다.

지난 7월, 서울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아버지께 편지쓰기』 수기공모 시상식에서 김경연 씨(여33, 성남시)의 <아버지! 죄송합니다>가 대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그녀의 눈물 수기를 읽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 때문에 모두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김주영 씨는 “딸의 수기는 골방 한 구석 편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그 위대한 부성애(父性愛)에 정당한 이름표를 달아준 것”이라며, “우리들의 모든 아버지가 이와 같지 않더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김경연-

『불가에서는 현세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천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거늘, 그렇다면 부모님과의 인연은 전생에 몇 억겁의 인연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런데도 내 가슴에 각인된 불효의 죄스러움이 너무 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난 제가 남편과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부모님의 가슴에 처음으로 피멍을 들게 했습니다.

“엄마, 아빠! 딱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철썩!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아있던 오빠한테 뺨까지 얻어맞았지만 저는 단호할 만큼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 행여나 흉잡힐까 봐 잔뜩 주눅 들어 있었는데 ‘꼽추 등’을 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걱정 말그래이…. 요즈음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아파오니, 내…. 그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그라….” 행여나 시집가는 딸이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 봐 거짓말까지 하신 아버지!

상앗빛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오신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순간부터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 오열로 결혼식 내내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덩그러니 골방에 홀로 남아 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저는 또다시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햇볕 따스한 일요일 오후, 화사하게 치장한 채 시어른들을 모시고 바깥 나들이하기 위해 승용차에 몸을 싣고 골목 어귀를 빠져나갈 무렵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얼굴을 잔뜩 숙인 채 꼽추 등에 보자기를 들고서 건너편 슈퍼에서 두리번거리는 한 노인네는 분명 나의 아버지 같았습니다.

‘아버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신데, 설마… 하면서 아버지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무렵,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후 슈퍼로 물건 사러 나갔던 남편이 슈퍼 아줌마가 전해주더라 며 조그만 보따리를 내밀었습니다.

「야야! 너거 어미가 올라카다가 일 나가서 모도고[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대이.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거쩔이[겉절이]다. 배골찌[배곯지] 말고 마싯게[맛있게] 먹그래이.」 맞춤법도 틀리게 어렵싸리 쓰셨을 쪽지를 보면서 사돈댁에게 흠 잡힐까 봐 들어오지도 않고 전해만 주고 가실 생각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장인어른도 참! 여기까지 오셔서 왜 그냥 가셨지?” 남편도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만 올 수 있는 길을, 언젠가 한 번 들린 적이 있는 큰 언니한테 묻고 또 물어서 찾아오셨던 아버지! 딸네 집이 눈앞이면서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렸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시집가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 반이나 깨 닫는다고 했던가요…. 늦게나마 철이든 저는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저지른 불효는 그 어떤 효도로도 깨끗이 치유될 수 없는지 날이 갈수록 한스러워 집니다.』

어떻습니까? 불효자가 아무리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부모님의 은혜를 만분지 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의 수많은 은혜 가운데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그리고 동포의 은혜와 법률의 은혜 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큰 은혜를 우리는 《사은(四恩)》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것도 크나큰 효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은혜 한 가지만 보답하는 효도뿐만이 아니라 우리 이 네 가지 큰 은혜! 《사은》님께 올리는 효도를 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8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키워드
#아버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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